83일만에 돌아온 ‘보행자천국’에도 거리 한산…비싼 임대료 감당 못한 매장들 속속 떠나

긴자 미쓰코시 백화점 정문 앞 조형물에 씌워진 마스크
긴자 미쓰코시 백화점 정문 앞 조형물에 씌워진 마스크 (사진=최지희기자)

도시의 공허함을 이보다 더 잘 드러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텅 빈 거리. 과거 ‘모던’의 상징에서 부유층이 모이는 품격높은 거리를 거쳐, 근래엔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집결로 다양한 계층으로부터 사랑받던 도쿄 긴자(銀座)의 최근 모습이다.

수도 도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숫자가 급증함에 따라 ‘동경의 거리’ 긴자는 곧 ‘기피해야 할 거리’가 되어 버렸다. 미쓰코시(三越)를 비롯한 대형 백화점은 물론 샤넬, 까르띠에, 루이뷔통, 에르메스 등 긴자 거리를 수놓던 해외 유명 명품점들은 굳게 문을 걸어 닫았다. 152년 역사를 자랑하던 가부키좌(歌舞伎座) 앞의 도시락 전문점이 폐업을 했다는 소식은 많은 일본인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8월 15일 오봉 연휴 속 긴자 대로의 모습. ‘보행자천국’이 시행되고 있지만 이곳을 거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8월 15일 오봉 연휴 속 긴자 대로의 모습. ‘보행자천국’이 시행되고 있지만 이곳을 거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사진=최지희기자)

이달 2일로 50주년을 맞은 긴자의 ‘보행자천국’도 코로나19의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주말과 공휴일의 특정 시간대에 차 대신 보행자들이 도로위를 마음껏 거닐 수 있도록 한 ‘보행자천국’은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3월 말부터 일시 중단됐다.

원래 긴자는 메이지(明治)시대에 문명개화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거리다. 긴자 벽돌거리는 메이지 초기에 발생한 긴자의 대화재 이후, 타버리지 않는 도시 건설을 목표로 대로의 건물을 벽돌로 만드는 영국풍 건축물로 개조함으로써 서양식 거리의 풍모를 갖춰갔다. 1923년 간토대지진으로 그 대부분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유서 깊은 가게들이 늘어선 거리는 고전적인 정취를 지니고 있었다.

이후 1990년대 초 일본의 거품경제 붕괴 후 불량 채권을 안은 대형 은행들이 재무 개선을 위한 통합과 합병을 반복하면서, 긴자 대로의 일등지가 비게 됐다. 여기에 풍부한 자금을 가진 해외 브랜드가 대거 진출하면서, 오늘날의 긴자 명품 거리를 탄생시켰다.

리먼 사태 이후에는 유니클로 등의 패스트패션 업체들이 대형 매장을 내면서 긴자의 모습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2010년대들어 급증한 방일외국인 관광객으로 인해 ‘부유층 거리’로서의 개성보다는 각종 브랜드들의 집결지로서 쇼핑객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긴자에 입점한 가게들도 주요 타켓층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맞추면서, 관광 거리로서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었다.

긴자2쵸메(丁目) 주오도리(中央通り)의 샤넬과 까르띠에 매장. 긴자의 대표적인 명품거리다.
긴자2쵸메(丁目) 주오도리(中央通り)의 샤넬과 까르띠에 매장. 긴자의 대표적인 명품거리다. (사진=최지희기자)

하지만 긴자는 올해 봄부터 본격화한 코로나19로 인해 급격한 침체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인바운드 의존도가 특히 컸던 매장들은 값비싼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긴자를 떠났으며, 오랜 세월 터를 지켜온 가게들도 하나 둘 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한 부동산 저널리스트는 “지금까지 폐점하거나 도산한 긴자의 매장들은 코로나 이전부터 실적이 좋지못했던 곳이 많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비교적 경영이 순조로웠던 가게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국토교통성이 발표한 공시지가에 따르면 긴자의 평단가는 평균 9302만엔(약 10억 4천만원)에 달한다.

장마가 물러간 후 폭염이 찾아온 이달 15일, 오봉 연휴를 맞은 긴자 거리를 다시 찾았다. 83일만에 돌아온 ‘보행자천국’ 거리에는 연휴 기간 타지역으로 휴가를 떠나는 대신 긴자를 찾은 도쿄도민들이 제법 되어 보였다. 하지만 작년 이맘때만 해도 널찍한 도로 위를 가득 메우던 인파를 떠올리면 여전히 쓸쓸한 풍경이었다.

8월 15일 오봉 연휴에 찾은 긴자 거리
8월 15일 오봉 연휴에 찾은 긴자 거리 (사진=최지희기자)

긴자 마쓰야 백화점의 화장품 매장으로 가봤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이곳저곳에서 들려왔을 중국어는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지하 1층의 식품 매장을 제외한  플로어에는 손님의 발길이 뜸했다. 대형 쇼핑몰 ‘긴자식스’와 ‘도큐플라자’도 사정은 비슷했다.

긴자의 한 매장 직원은 “(긴자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과 유럽권역에서 관광객들이 다시 이곳을 찾아와 주는 수 밖에 없다. 코로나 수습 여부에 달렸다”고 했다.

경제 상황 변화를 가장 빨리 체감할 수 있어 일본 경제의 바로미터 역할을 해 온 긴자.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긴 터널 속을 걷고 있는 가운데, 긴자의 미래 역시 좀처럼 앞을 가늠하기 힘들어 보였다. [프레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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