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한’로 시작해 ‘반한’으로 끝, 희생자 기억 전시물 찾아볼 수 없어…취지 잃은 산업유산정보센터에는 우익세력의 발길만

도쿄 신주쿠(新宿)구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위치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입구 모습
도쿄 신주쿠(新宿)구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위치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입구 모습

“2015년 유네스코에 군함도가 등재될 당시 한국이 얼마나 방해 공작을 했는지 모릅니다”

(센터 입구 판넬 앞에서의 자원 봉사자 안내 중에서)

“한국인 차별 같은 게 있을 수가 없었죠. 날조된 증언을 갖고 주장하는데 말도 안되는 얘깁니다”

(센터 마지막 섹션에서의 자원 봉사자 안내 중에서)

산업유산정보센터는 ‘반한(反韓)’으로 시작해 ‘반한’으로 끝나 있었다. 자원봉사자의 안내를 들으며 견학을 마친 후, 이곳이 현재 완벽히 강제징용 문제를 제기하는 한국에 대항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메이지(明治) 시기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의 전체상을 소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는 본래의 취지는 퇴색해 있었다.

규슈(九州)를 비롯한 8개 현에 산재된 23곳의 시설 정보를 취합해 소개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된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올해 6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관람이 시작됐다. 지난 9월 10일, 한일 양국의 언론에 그 실상이 공개되며 양국 사이에 또다른 분쟁거리가 된 이곳을 직접 방문했다.

산업유산정보센터 전경. 홈페이지에는 센터가 ‘세계유산인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 제철・제강 조선・석탄산업’의 인터프리테이션(2017년 11월 유네스코세게유산센터에 제출) 전략에 근거해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유산”인 8개현 11개시에 입지한 방문센터의 중핵 센터로서 각지와 연계한 인터프리테이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산업유산정보센터 전경. 홈페이지에는 센터가 "세계유산인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 제철・제강 조선・석탄산업’의 인터프리테이션(2017년 11월 유네스코세게유산센터에 제출)’ 전략에 근거해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유산’인 8개현 11개시에 입지한 방문센터의 중핵 센터로서 각지와 연계한 인터프리테이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방문을 통해 일차적으로 느낀 감정은 분노 보다는 안타까움이었다. 일본의 산업화를 일구는 과정에서 탄광 등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일했던 일본인과 한국인 등의 ‘희생’과 같은 부(負)의 역사가 철저히 도려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2015년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의지에 반해 끌려와 열악한 환경에서 노역을 당한 많은 한반도 출신자들이 있었다”는 점을 언급했고, 시설을 설치해 “희생자를 기억에 남기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을 표명한 바 있다.

이곳에서는 산업화의 주역인 ‘노동자’들의 스토리는 어색할 만큼 한 방향으로 치우쳐 있었다. 시설의 전시물에서도, 나눠준 팜플렛에서도 출신지를 막론하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이 주장하는 ‘차별’이 일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증언’들만이 당시 노동자들의 목소리로서 전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증언’들은 마치 이 시대의 역사를 대변하는 양 포장되어 벽면 글귀와 비디오 음성을 통해 관람객을 세뇌시키고 있었다.

다만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와 일본이 약속한 조치가 엄연히 존재하는 이상, 세계 유산으로 등록될 당시 일본 대표의 발언과 징용의 제도적인 경위 등을 표시한 판넬도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약속을 어겼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안내를 도와준 자원봉사자 스스로가 “일본 정부가 당시에 왜 이런 약속을 해가지고….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표시는 해 두고 있다”라는 설명까지 친절히 곁들여 줄 정도였다.

무엇보다 방문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우경화하고 있는 실상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이었다. 센터를 방문했던 12시반부터 14시반 시간대에 함께 견학을 한 나머지 일곱명의 방문객들은 모두 중장년층 일본인 남성이었다.

이들은 마지막 섹션을 둘러보던 도중 “아니, 이렇게 차별이 없었다는 것이 명백한데 한국은 왜 자꾸 시비를 거는 거냐”며 자원봉사자에게 물었다. 해당 섹션의 자원봉사자는 나가사키(長崎)현 출신으로, 일본이 패전한 이후인 45년부터 군함도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경험이 전부인 사람이었다. 그는 “차별도 없었고 강제 징용도 없었다”고 맞장구 치며 관람객들과 한국에 대한 비판을 주고 받았다.

관람객 가운데는 혐한 방송으로 알려진 ‘도라노몬 뉴스’를 보고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찾았다는 이들이 상당수 있었다. 해당 뉴스에 센터가 소개되기 전 이곳을 찾은 적이 있는 한국인은 “당시엔 방문객이 시간대당 한 명 정도 수준이었다”고 했다. ‘도라노몬 뉴스’를 보고 센터를 찾은 이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어하는 ‘사실’을 이곳에서 ‘확인’하며 만족감을 느끼는 듯 했다.

일본의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혐한 및 혐중 서적 코너
일본의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혐한 및 혐중 서적 코너

충만한 자신감으로 무모한 침략주의로 치달았던 한 때 시절과는 달리, 현대에 이르러 버블 경제의 붕괴에 따른 장기 내수 침체, 빈번한 자연재해, 부상하는 한국 및 중국과의 영유권 및 역사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많은 일본인들의 자신감을 상실하게 했다. 그러다 최근 우경화의 분위기를 타고 잃어버린 자신감을 우편향된 사고로 무장해 한국과 중국에 대한 헤이트로 자위하는 일본인의 수는 안타깝게도 꾸준히 늘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유산정보센터는 본래의 취지를 잃은 채 그렇게 일본 우익세력들의 놀이터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함께 전시물을 관람한 방문객들과 이들을 안내하는 자원봉사자의 설명을 통해, 오히려 센터측이 이같은 상황을 반기고 있다는 인상마저 들었다. [프레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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