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경제 대책 ‘10만엔 급부’도 서류에 도장 찍어 우편으로…전문가 “정부와 업계 개혁 조치 이뤄지지 않고 있어”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마련한 핵심 경제 대책인 ‘10만엔 특별정액급부금’ 신청서 견본. 상단 좌측에 서명과 함께 도장을 찍는 란이 존재한다. 인터넷신청과 우편신청을 동시에 받고 있지만, 각 지자체들은 되도록 우편으로 신청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미지: 일본 총무성 홈페이지)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마련한 핵심 경제 대책인 ‘10만엔 특별정액급부금’ 신청서 견본. 상단 좌측에 서명과 함께 도장을 찍는 란이 존재한다. 인터넷신청과 우편신청을 동시에 받고 있지만, 각 지자체들은 되도록 우편으로 신청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미지: 일본 총무성 홈페이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일본 내에서는 특유의 ‘도장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재택 근무를 확대해도 서류에 도장을 찍기 위해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약 20년전부터 추진되어 온 ‘전자 정부’ 구상이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도장 때문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4월 22일 IT종합전략본부 회의에서 각료들에게 “민간 경제활동에서 종이나 날인을 전제로 한 업무관행을 개선하도록 전면적으로 점검하면 좋겠다”며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같은 달 27일 열린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도 아베 총리는 도장 날인이 재택 근무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소프트웨어개발회사 ‘드림아트’가 1천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조사를 실시한 결과, 텔레워크 시행 중 불편함을 겪었다고 답한 비율이 90%에 달했다. 원인의 1위로 꼽힌 것은 ‘보존서류의 확인 및 입수가 불가능한 점(46%)’이었으며, 2위가 ‘서류에 사인 및 날인을 받지 못하는 점(28%)’이었다.

내각관방에 따르면 인감증명서가 필요한 행정 절차는 100종류가 넘는다. 법인의 인감증명서 발행은 연간 약 1,300만건에 이른다. 기업 뿐 아니라 학교 둥 수많은 조직에서 결제 절차 등에 도장을 사용하는 빈도는 매우 높다.

한편 일본에서 도장이 정착하게 된 것은 메이지시대로 알려져 있다. 서적 ‘도장 문화사(ハンコの文化史)’에 따르면 이 시기부터 위조가 쉬운 도장보다 사인이 더 낫다는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인이 불가능할 시 도장으로 대용할 수 있다는 법률이 성립된 것은 1900년 경이다. 다수의 문서에 사인을 해야하는 번잡함을 피하고자 오쿠라성(大蔵省・현 재무성)과 은행이 도장 사용을 밀어붙인 결과다. 서양을 모방한 근대화의 진행 과정에서 사인문화는 채용하지 않은 것이다.

도장문화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지금까지도 시도되어 왔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정권은 2001년, 전자서명에 날인과 같은 효력을 인정하는 ‘전자서명법’을 시행했다. 아베 정권은 2019년에 행정 절차를 원칙적으로 전자화하는 ‘디지털 퍼스트법’을 성립시켰다. 그렇지만 도장 문화는 여전히 굳건히 남아 있다.

다케모토 나오카즈(竹本直一) 일본과학기술담당상. 자민당 내 ‘일본 인장제도・문화를 지키는 의원 연맹’ 회장이다. (이미지: 수상관저 홈페이지)
다케모토 나오카즈(竹本直一) 일본과학기술담당상. 자민당 내 ‘일본 인장제도・문화를 지키는 의원 연맹’ 회장이다. (이미지: 수상관저 홈페이지)

무엇보다 자민당에는 도장문화를 존중하는 ‘일본 인장제도・문화를 지키는 의원 연맹’이 존재한다. 다케모토 나오카즈(竹本直一) 일본과학기술담당상은 이 연맹의 회장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도장 문화의 변혁은 과연 일어날까. 현재 일본 경제 대책의 핵심인 ‘10만엔’ 현금 급부는 온라인으로 신청이 가능하지만, ‘날인란’이 있는 서류에 필요 사항을 기재해 우편 신청을 요구하는 지자체가 훨씬 많다.

이와 관련해 정보사회학에 정통한 무사시대학 쇼지 마사히코(庄司昌彦) 교수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제도상 날인이 필요 없어져도 실태로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정부와 업계에서 개혁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프레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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