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본 따 지난해 9월 설립했지만 엄격한 관료주의문화에 젊은 인재 집단 퇴사…직원들 “출근하기 싫다”, “같은 서류를 몇 번이나 만든다” 불만 토로

지난해 말 디지털청이 도입한 백신접종증명스마트폰용 앱. 10만명의 정보가 잘못 기입되거나 누락되는 등의 오류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미지: 디지털청 홈페이지)
지난해 말 디지털청이 도입한 백신접종증명스마트폰용 앱. 10만명의 정보가 잘못 기입되거나 누락되는 등의 오류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미지: 디지털청 홈페이지)

 

202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도쿄 기오이초(紀尾井町) 고층 빌딩 안에 위치한 디지털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직원들의 컴퓨터에는 국장급 간부 전원의 이름과 함께 도미야스 다이치로(冨安泰一郎) 디지털청 전략・조직단장으로부터 메일이 전달됐다. “새로운 가스미가세키 문화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혼란을 사죄하는 내용이었다.  “책임 분담이 애매하고 정보 공유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자평도 담겨 있었다.

디지털청은 지난해 9월, 일본의 관료주의 문화로부터 탈피해 프로젝트 별 팀을 꾸려 유연한 조직 운영 방식을 지향하며 출범했다. 전자정부시스템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등을 모델로 행정절차의 온라인화를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일본은 낮은 캐시리스(신용카드 및 모바일페이 결제) 이용률과 좀처럼 확대되지 않는 ‘마이넘버카드(주민등록증)’ 보급, 정부부처와 1,700여개 지자체가 제각각 다른 행정정보입력시스템을 사용하는 문제 등 숱한 과제들을 안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 시절 당시 신설된 디지털청은 “아날로그 국가인 채 쇠퇴 기로에 선 일본이 경제 사회 전체를 디지털화 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니혼게이자이신문)”로 여겨졌다. 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권에서도 ‘디지털 전원도시국가구상’ 실현이라는 정책 목표를 내걸고 있어 디지털청은 일본의 국가 전략에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설립 당시에는 총 600명의 인력 가운데 민간에서 약 200명의 전문가들이 대대적으로 동원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그러나 디지털청이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20~30명의 이른바 ‘일 잘하는’ 관료들이 겸무의 형태로 모든 안건에 관여하는 형태로 업무가 흘러갔다고 보도했다. 한 민간 출신 직원은 “회의가 너무 많다. 더이상 출근하기 싫다”, “같은 서류를 몇 번이나 작성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애초에 책임 소재가 애매한 조직의 형태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료주의적인 엄격한 사전 논의 및 보고가 요구됐다. 불필요한 업무의 수위는 “다른 부처와 비교해도 심각한 수준”에 달했다. 지난해 말 디지털청 내에서 업무 방식 만족도에 대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5단계 가운데 3을 밑도는 부서도 나왔다.

혼란으로 인한 부작용은 작지 않았다. 2021년 연말에 걸쳐 디지털청에서 일하던 직원 10명 정도가 동시에 퇴사해 통신 대기업과 외국계 컨설턴트 회사로 이직했다. 모두 우수한 젊은 인재들이었다. 한 중견 직원은 “이곳에 있어도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위기는 디지털청 설립 후 약 반년 만에 찾아온 것이었다. ‘디지털청’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국장급 간부들은 업무 중 이메일을 사용하는 것이 전부였다. 얼마 뒤 ‘비지니스 채팅’ 기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 정도였다.

각 지자체가 코로나19 백신 접종 대상자에게 우편으로 발송하는 백신 접종권 (사진=최지희 기자)
각 지자체가 코로나19 백신 접종 대상자에게 우편으로 발송하는 백신 접종권 (사진=최지희 기자)

올 봄에는 약 100명 가까운 직원이 새롭게 디지털청에 합류했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는 지자체에서 파견된 인원들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가스미가세키’의 중앙관료문화와 민간의 인식차에 더해, ‘지방’의 감각까지 융화시켰다며 “장대한 조직 설립 실험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단계로 돌입하고 있다”고 혹평했다.

한편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지난 20일, 자민당 디지털사회추진본부가 디지털청의 업무에 대해 정책을 입안하는 기능 강화 등을 요구하는 제언안을 마련했다. 본부장은 디지털청 창설 당시 ‘디지털청’이라고 쓴 종이팻말을 들고 사진을 찍은 히라이 다쿠야(平井卓也) 전 디지털청장이다. 그의 주도로 이뤄진 제언안은 설립 당시 목표로 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디지털청의 현실에 쓴 소리를 담은 내용이 메인이다.

제언안은 “관료주의가 강하게 남아있다”며 프로젝트 단위의 업무 관리를 철저히 할 것을 요청했다. 인력 및 예산 확보가 유연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환경 마련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지독한 아날로그 중심의 관료주의 문화가 가스미가세키 전체를 뒤덮고 있는 상황에서 디지털청 만이 효율적이고 유연한 업무 방식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쌓여가고 있다. [프레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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