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의미 남다른 2022년…일본이 연말만 되면 찾는 '제9번' 찾는 이유는

22일,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을 듣기 위해 도쿄 신주쿠 오페라시티를 찾았다. (사진=최지희 기자)
22일,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을 듣기 위해 도쿄 신주쿠 오페라시티를 찾았다. (사진=최지희 기자)

2022년의 습하고 더운 여름을 지나 선선한 계절이 찾아올 즈음, 연말에 있을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공연 사전 예매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에선 송년 시즌에 '제9번'을 들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광경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일본 거주 6년차인 본인 역시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수년 전부터 연말 공연을 미리 체크해 예약해왔다.

22일, 공연 날에 맞춰 방문한 도쿄(東京) 신주쿠(新宿)구의 오페라시티 콘서트홀은 올해도 어김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역시나 9번 교향곡의 하이라이트인 ‘합창’은 수백번을 들어도 매번 전율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 독일 시인 실러의 시 ‘환희에 붙여’를 가사로 붙인 멜로디는 올 한해 유난히 힘들었던 국제 정세와 맞물려 특별함을 선사하기도 했다.

2시간 남짓 이어진 공연이 모두 끝났지만 관객석의 관객들은 좀처럼 박수를 멈추지 못했다. ‘브라보’와 휘파람이 끊일 듯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2022년의 끝자락에 선 이들 모두 저마다의 감상으로 저무는 한 해의 아쉬움을 그렇게 표현하는 듯 했다.

'제9번'에 대한 열기는 비단 공연장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2월의 어느 날, TV에서는 ‘1만명의 제9’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이 방영되기도 했다. 엄청난 수의 합창단이 참여해 웅장한 스케일의 ‘합창’을 연주해냈다. 일본인의 시청자들은 익숙한 멜로디를 들으며 생애 한번쯤은 참석했던 '제9번' 연주회를 떠올렸을 테다.

한편 17일 아사히신문의 ‘오피니언란’에는 ‘2022년의 제9악장’이라는 제목의 특집이 실렸다.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전쟁의 참상이 전해진 2022년 연말은, 제9번 ‘환희에 붙여’의 의미 또한 남다르게 만들었다는 점을 짚은 기획이었다. 인류는 전쟁 앞에서 또 한번 무력했지만 모든 인류에 대한 애정과 평화를 노래한 가사는 새로운 날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연말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울려퍼지는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 송년 시즌 ‘제9번’에 대한 일본인들의 사랑은 남다르다. (사진=최지희 기자)
연말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울려퍼지는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 송년 시즌 ‘제9번’에 대한 일본인들의 사랑은 남다르다. (사진=최지희 기자)

그런데 세계 각국 중에서도 일본은 유독 이 베토벤 교향곡 ‘제9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것 같다. 한국에서도 연말이 되면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기도 하지만, 일본처럼 ‘제9번’ 일색 분위기까지는 아니다. ‘제9번’이 연말에 연주되는 전통을 낳은 독일에서 조차 일본처럼 활발하게 연주되지는 않고 있는 것 같다.

일본에서 유난히 ‘제9번’이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타워레코드 온라인 페이지의 해설을 참고해봤다.

182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된 ‘제9번’이 일본에서 처음 울려 퍼진 것은 1918년 6월 1일, 도쿠시마(徳島)현에 있는 반도(板東) 포로 수용소 안에서였다. 영국 등 연합국 편에 서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일본은 독일을 상대로 승리해 독일군 4천 7백여명을 포로로 잡아 그 중 1천명 정도를 반도 수용소로 보냈다. 연주는 이들 독일군 포로들에 의해 이뤄졌다.

송년 레퍼토리로 ‘제9장’이 정착한 유래에 관해서는 몇가지 유력한 설이 존재한다. 하나는 1943년 도쿄 12월 우에노(上野)에서 열린 학도장행음학회에서 ‘제9번’이 연주된 데 따른 것이라는 설이다. 학도병 출진으로 졸업을 12월로 앞당긴 학생들이 출진 전 음악회에서 ‘제9번’을 연주했고,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학생들이 12월, 돌아오지 못한 학생들을 추모하며 또 다시 ‘제9번’을 연주했다고 한다.

다른 유력한 설은 전후 사정이 어려워진 오케스트라가 연말 보너스 획득을 위해 ‘제9번'을 연주한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당시에도 ‘제9번’은 인기곡이었으며, 아마추어 코러스를 합창단으로 불러오면 비용도 절감할 수 있고 합창단 멤버의 지인들에게 티켓도 판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득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프레스맨]

저작권자 © 프레스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