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부문 1위···혐한·혐중 배경에 ‘일본우월주의’ 깔려있어

지난 한 해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논픽션 서적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1위 자리를 수성한 것은 미국인 변호사 켄트 길버트(Kent Gillbert)가 쓴 ‘유교에 지배된 중국인과 한국인의 비극’이었다. 그가 올해 대망의 2탄으로 들고 나온 ‘중화사상을 맹신하는 중국인과 한국인의 비극’ 역시 지난주 새로 나온 논픽션 부문 3위에 올랐다. 이번 주에는 일본 최대 서점 기노쿠니야(紀伊國屋)에서 전체 장르를 통틀어 ‘새로 나온 책 랭킹’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혐한 서적 붐이 사그라들었다고 생각한 것도 착각이었나 싶을 정도다.

미국인 저자가 쓴 ‘유교에 지배된 중국인과 한국인의 비극’은 지난 한 해 일본 논픽션 부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기록됐다. <사진=최지희 기자>

책은 관련 지식 없이도 쉽게 읽을 수 있게끔 단순하고도 직설적인 문장들로 기술되어 있다. 한중 양 국가에 대해서는 ‘유교 정신 때문에 도덕심과 윤리관을 잃어버려 자기중심주의가 나타났다’고 지적하는 한편, 일본인에게는 ‘높은 도덕규범인 이타정신이 있다’는 등의 독특한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인의 ‘높은 도덕규범’을 칭찬하면서, 한국인과 중국인은 ‘금수(禽獸)이하의 사회도덕’을 가졌으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한다’는 등의 낯 뜨거운 표현으로 독자들을 현혹했다.

또한 일본이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22명 배출한 것에 비해 한국은 아직까지 한 명도 받지 못했다고 하면서, 일본인은 ‘인류를 위해’ 연구하는 반면 한국인은 ‘무조건 노벨상을 타기위해’ 연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일본의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발간 당시부터 ‘혐한・혐중책이다’, ‘차별의식이 깔려있다’는 비판이 잇따르기도 했으며, 출판을 담당한 고단샤(講談社)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지난 해 2월에 출판되어 발행 부수 47만부를 넘는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저자인 켄트 길버트는 일본의 인기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린 인물로, 최근에는 우익・보수계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헌법과 일본인에 관한 저작이 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일본인만 모르는 세계에서 존경받는 일본인’이라는 이전 저작 역시 인기를 얻은 바 있다. 

기노쿠니야 서점의 ‘새로 나온 책 랭킹’ 코너에 2위를 차지한 켄트 길버트의 후속작이 진열되어 있다. <사진=최지희 기자>

일본에서는 10여 년 전 부터 본격적인 혐한・혐중 관련 서적이 출판되기 시작됐으며, 서점에는 이와 관련한 코너가 생기기도 했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방문으로 반한 감정이 극에 달해 한일 관계가 최악을 달리던 시기에는 ‘혐한책은 쓰기만하면 팔린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이러한 혐한 서적 붐은 2015년께부터 한풀 꺾이기 시작했는데, ‘차별주의’와 ‘배척의식’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우후죽순으로 출판된 혐한 서적이 서점 입구를 장식하던 모습은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언뜻 보기에 있어 보이기도 해서 손에 들어도 부끄럽지 않은 책’으로 모습만 바꾸어 일본인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혐한 관련 서적이 이처럼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일본 언론인은 ‘책을 산 사람들 모두가 한국과 중국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일본이 이만큼 우월하다는 것을 통해 안심하고 싶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직접 책을 사서 읽어봤다는 40대 회사원 남성은 ‘미국인이라고 하는 제3자의 눈을 통해 본 한중일의 모습이 궁금했다’고 구매 이유를 밝혔다. 일본인은 동양인보다 서양인의 평가에 민감한데, 미국인이 한중일을 평가한 것은 그만큼 설득력이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70대 남성은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사실만으로도 일본은 위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중국 때리기를 통해 일본인의 우월감을 맛보고 싶은 것’이라며 비판했다.  

‘외국인이 본 일본’을 컨셉으로 자화자찬하는 내용들로 꾸려진 정기 간행물 ‘재팬 클래스’

혐한・혐중 서적 인기의 배경에는 이처럼 ‘일본 우월주의’가 바탕에 깔려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 사회에서 이러한 우월주의가 강조되는 분위기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현재 방영중인 일본의 오락 프로그램 중에는 ‘외국인의 눈에 비친 일본’을 주제로 ‘일본에서는 당연한 것도 세계인의 시각으로 보면 대단하다’는 자화자찬식 방송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급증하는 외국인 관광객들 가운데 주로 서양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여 ‘일본인은 모르는 일본의 우수성’을 소개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그 밖에 일본이 세계에서 평가받는 것들을 모아 소개하는 정기 간행물 ‘JAPAN CLASS’를 비롯한 자화자찬 출판물도 꾸준히 발간되고 있다.이러한 일본 우월주의의 이면에는 일본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국과 중국의 부상으로 세계적인 입지가 이전만 못해지면서, 더 이상은 ‘우위의 위치에서 봐주는’ 관계가 아닌 외교・경제적으로 ‘대등한 관계 속에서 경쟁해야하는’ 상황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패전 이후 일본인의 정서에는 민족주의에 대한 경계심이 강했으며, 주변국에 저자세로 임해야한다는 의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반대 상황”이라고 현상을 분석했다.

일본 언론 관계자는 “올림픽을 앞두고 주변국과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하는 일본으로서는 혐한책이 또다시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것은 생각해야할 문제”라며 “국민들의 의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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