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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누명 쓴 다섯 남자 이야기 '옥우(獄友)'의 김성웅 감독을 만나다
[인터뷰] 누명 쓴 다섯 남자 이야기 '옥우(獄友)'의 김성웅 감독을 만나다
  • 도쿄=김민정 기자
  • 승인 2018.06.11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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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십 년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들이 있다. 서른 살에 체포되어 2014년까지 무려 48년간 옥살이를 한 하카마타 이와오(袴田巌)가 풀려 났을 때, 일본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죄없는 사람이 인생의 절반 이상을 감옥에서 보냈다는 사실이 일본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겨준 것이다. 그는 1966년 방화살인용의로 체포됐으나, 자백을 강요받는 것과 시즈오카 검찰청이 당시 증거의 일부를 감추고 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용의는 거의 벗겨진 상태다. 현재 82세인 그는 자신의 명예를 위해 재심을 청구 중이며, 6월 11일 재심 청구 인정 판결이 나온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십 년을 감옥에서 살아야 했던 이는 하카마타 이와오만이 아니다.

스기야마 다쿠오(杉山卓男), 1967년 살인 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후, 유죄 선고로 29년간 옥살이를 하고 2011년 무죄 판결로 세상에 나왔다. 안타깝게도 그는 옥 밖으로 나온지 4년 만에 사망했다. 이시카와 이치오(石川一雄), 1963년 강도강간살인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그는 31년 7개월간 옥살이를 한 후, 1994년 가석방돼 현재 무죄 재심 청구 중이다. 1990년 여야 살인사건 용의자로 체포되어 17년 6개월간 옥살이를 한 후, DNA 감정을 받고 완전 무죄로 풀려난 스가야 도시카즈(菅谷利和). 1967년 강도살인으로 체포되어 29년간 옥살이를 하고 풀려난 후, 2011년에 무죄 판결을 받은 사쿠라이 쇼지(桜井昌司). 

이들의 옥살이 이후의 삶을 담은 다큐 영화 <옥우(獄友)>는 현재 일본 전국에서 상영 중이다. 영화 <옥우>의 감독 김성웅을 만나 보았다.

재일동포 2세. 티비, 광고 영상 제작을 거쳐, 최근에는 다양한 다큐 영화를 제작 중이다. 재일동포 뿐만 아니라, 부모가 없는 아이들, 누명을 쓴 이들 등 일본 사회의 저변에 있는 현실을 그려내는 감독이다. (사진=김성웅 감독 제공)

Q 어떻게 누명을 쓴 다섯 남자의 이야기를 영화화 하게 되었나?

가와사키의 인권센터가 매년 2편 씩 제작하는 인권계몽 다큐 영화 소재로 거짓자백을 강요받아 억울한 옥살이를 경험한 일본 피차별부락(被差別部落) 출신 이시카와 이치오 씨의 일생을 다루게 됐다. 영화는 원래 이시카와 이치오 씨의 일생을 통해 사법제도를 돌아보고, 인권에 대해 되짚어보자하는 취지로 시작했는데 제작 도중, 누명을 쓰고 복역한 다른 이들도 만나게 된 것이다. 범인으로 몰려서 거짓자백을 하는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나 믿을 수 없다는 이들도 있지만, 실제 수십 년간 누명을 쓴채 감옥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걸 영화를 만들면서 알게 됐다. 

Q 한 명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고 무려 다섯 명에 관한 이야기인데 다섯 명을 모아 영화를 찍는 일이 힘들지는 않았나?

이시카와씨 다큐를 찍으면서 스기야마, 스가야, 하카마다, 사쿠라이 씨와도 만나게 되었고, 이들이 함께 만나는 자리를 찾아가 지속적으로 카메라를 돌렸다. 무려 7년 가까이 찍어서 편집한 것이 이번 작품이다.

Q 왜 하필이면 누명을 쓴 이들을 조명했나?

살인범 다섯 명이 모이면 무슨 얘기를 할까? 얼마나 무서운 얘기가 오갈까? 사람들은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했다. 그들은 모이면 치바 형무소 공장에서 일했던 일, 자신에게 잘해줬던 간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지금도 옥살이의 후유증을 겪고 있지만 평범하게 살고 있다. 그 평범한 삶의 일부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카마다씨는 무려 48년간 옥살이를 했다. 정신적으로 타격이 얼마나 클지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그들은 이미 고령의 나이로 젊은 날들을 모두 감옥에서 보내버렸다. 나이든 억울한 이들의 현재의 날들, 그것을 감히 나는 청춘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런 청춘 그래프티를 찍어보고 싶어서 도전해 봤다.

한때 같은 형무소에 복역했던 감옥 친구 '옥우'들은 가끔 만나면 이렇게 장기를 두거나 노래방에 간다. (사진=김성웅 감독 제공)

Q <옥우>라는 타이틀이 무척 흥미롭다. 

이 다섯은 같은 형무소에 복역한 적이 있다. 같은 형무소에 복역한 이들끼리 서로를 감옥친구라는 의미에서 <옥우>라고 부른다. 치바 형무소에 같은 시기에 복역하던 누명을 쓴 죄수들은 나중에 무죄로 풀려난 후, 가끔 만나서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는 사이가 됐다.

Q 일본사회에서 반향이 큰 작품이다. 영화에 출연하는 이들은 피차별부락민 등 일본사회의 밑바닥에서 살았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사회적인 모순도 그릴 생각이었나?

나는 재일동포로 자랐지만, 오사카의 한인타운에서 자라서 내가 어릴 때 근처 초등학교에는 일반 공립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절반 이상이 재일동포였다. 그래서 차별을 받는 일도 없었고, 재일동포란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자랐다. 단지 내가 어린 시절엔 재일동포 지문날인 반대 시민운동이 일어났는데, 그런 걸 보면서 사회문제와 싸우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일본의 저변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며, 일본 사회의 현재를 작품에 담고자 노력했다.

Q 최근 일본에서는 ‘헤이트 스피치’라 불리는 한국인을 혐오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현재 일본의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어릴 때는 한국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어느날 ‘겨울연가’가 인기를 끌면서 한국에 호의적인 사람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한 나라에 대해 열광할 수 있다는 것은 또 쉽게 돌아설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에 대해 반발심을 가진 이들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동포 인권운동가 신숙옥 씨가 혐오로 인해 독일 망명까지 생각했다며 눈물을 흘리는 기자회견을 봤을 때, 가와사키에서 헤이트 데모 반대를 외쳐온 최강이자 씨 가족이 오래 협박에 시달려온 사실 등을 대할 때마다 암담한 기분이 든다. 현재 아베 정권처럼 헤이트 스피치에 관대한 정치가들이 윗선에 있는 것도, 혐오 세력을 더 키우는 원인으로 느껴진다.

왼쪽부터 17년간 복역한 스가야, 29년간 복역한 사쿠라이, 31년간 복역한 이시카와. 비교적 형법 체계가 안정적이라고 인정받는 일본 사회에도 누명을 쓴 이들이 하나둘이 아닌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본 열도는 충격에 빠져있다. (사진=김성웅 감독 제공)

Q 앞으로도 누명을 쓴 이들의 이야기를 계속 찍을 것인가?

물론이다. 이 다섯 명의 이야기를 계속 찍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시기가 되면 재일동포를 소재로 한 작품도 찍어보고 싶다. 이전처럼 차별을 받고 살아온 한스러운 스토리가 아니라, 현재의 일본을 살아가는 이들의 담담한 날들을 담고 싶다. 한국은 국민의 힘으로 정권을 바꿨다. 일본은 아베 정권 반대 시위에도 사람들이 수십 만명씩 몰려드는 일은 없어서 안타깝다. 그리고, 한국을 혐오하는 이들을 보면 암울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암울하게 가만히 지낼 수는 없다. 그것이 영화를 찍는 원동력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도 있었다. 스기야마 타쿠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고교시절 무면허운전으로 퇴학을 당했고, 홀어머니마저 사망하자 방황하던 중, 강도살인혐의로 체포되어 자백을 요구 받았다. 이시카와 이치오, 그는 피차별부락 출신이었고, 당시 경찰은 용의자로 피차별부락민들을 중심으로 수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만 24살이었는데 글도 잘 모를 정도였다. 고교 중퇴 후 여러 직장을 전전긍긍하던 사쿠라이 쇼지. 스가야 도시카즈, 하카마다 이와오는 경찰의 폭력으로 허위 자백을 했다. 
 
영화 <옥우>의 다섯 명의 주인공들은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자신들을 ‘불운했지만 불행하지는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정말 불행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그들은 자신들의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노래로 부르며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김성웅 감독은 말한다. 비록 재일동포의 처지로 선거권은 없을지라도, 혐오세력으로부터 재일동포는 일본을 떠나라고 욕을 얻어먹을 지라도, 이 세상의 밑바닥을 사는 이들의 인생을 영화로 지속적으로 표현해 나가겠다고, 그것이 이 세상에 작은 빛을 가져다 주리라 그는 믿는다.

영화 '옥우(고쿠토모)' 포스터. '인생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낸 남자들, 그들은 말한다. "불운한 인생이었지만 불행하지는 않았다."고'라고 적힌 문구가 마음을 울린다. (포스터=김성웅 감독 제공)
영화 '옥우(獄友·고쿠토모)' 포스터. '인생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낸 남자들, 그들은 말한다. "불운한 인생이었지만 불행하지는 않았다."고'라고 적힌 문구가 마음을 울린다. (포스터=김성웅 감독 제공)

김성웅 감독 : 티비 프로그램, 영화, 광고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는 영상작가로, 2013년 <SAYAMA 보이지 않는 수갑을 벗기까지>로 ‘키네마준보 문화영화’ 제3위, ‘마이니치 영화상’을 수상했다. 재일동포 2세로 재일동포 뿐만 아니라, 누명을 쓰고 살게 된 이들의 인생을 다큐로 조명하고 있다.

(포스터 왼쪽부터)

스기야마 다쿠오(杉山卓男) : 1967년, 사쿠라이 쇼지와 함께 강도살인 ‘후카와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29년간 복역 후, 2011년 무죄를 확정 받았다.

하카마다 이와오(袴田巌) : 1966년 ‘하가마다 사건’(4명 살해, 방화)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1980년에 사형이 확정되었다. 당시 그는 일본랭킹 10위권 의 권투선수였다. 48년간 옥살이를 한 후, 검찰이 진짜 증거를 감춘 사실이 드러나며 석방되었다.

이시카와 이치오(石川一雄) : 1963년 여고생 살인사건 ‘사야마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되어, 31년간 옥살이를 한 후 1994년에 석방되었다. 그는 과거 천민이라 불리던 피차별부락 출신자로, 당시 경찰의 수사가 피차별부락으로 집중됐었다. 그의 체포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피차별부락 해방운동과 피차별부락 출신자에 대한 차별 반대 운동 등이 벌어졌다.

스가야 도시카즈(菅谷利和) : 1990년에 일어난 유아 살인 사건 범인으로 17년간 복역했으나, 2009년 현대의 DNA검사를 통해 진범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2010년에 무죄가 확정되었다.

사쿠라이 쇼지(桜井昌司) : 1967년, 스기야마 다쿠오와 함께 ‘후카와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29년간 복역 후, 2011년 무죄를 확정 받았다. 최근에는 누명을 쓴 이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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