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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최대 유흥가 한복판에 책방···"사랑을 읽고 가세요"
도쿄 최대 유흥가 한복판에 책방···"사랑을 읽고 가세요"
주말에는 현직 '호스트'의 책 추천도
  • 도쿄=최지희 기자
  • 승인 2018.04.2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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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신주쿠구(新宿区) 가부키쵸(歌舞伎町). 도쿄 내에서 가장 큰 유흥가로 손꼽히는 이곳에서 낯선 실험이 시작됐다. 실험 무대가 된 곳은 작년 10월 가부키쵸 한복판에 들어선 사랑을 테마로 한 책방. '가부키쵸 북센터'라는 이름의 이곳 책방은 각종 바와 패션호텔, 호스트 클럽 등과 어우러져 술집 일색이던 거리 풍경에 새로운 색을 칠하고 있다.

'가부키쵸 북센터'는 무심코 걷다보면 지나쳐버릴 만큼 전형적인 책방과는 외관을 달리한다. 이날 책방을 방문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볍게 커피 한잔하기 위해' 들어왔다가 진열된 서적들을 꺼내 읽는 경우가 많았다. '북카페'의 컨셉을 띄지만, 저녁에는 주류를 위주로 판매하는 '바(bar)'로 바뀐다. 

신주쿠 가부키쵸에 자리한 책방 ‘가부키쵸 북센터’의 모습 (사진=최지희기자)

이곳만이 가진 특징이라면 가부키쵸에 자리한 책방답게 ‘사랑’을 테마로 한 서적들을 위주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홍보를 담당하는 소노다 마유미(園田真弓) 씨는 "가부키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테마는 역시 ‘LOVE’라고 생각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어떤 책이든 ‘사랑’이 포함되지 않은 책은 없지 않냐”며 손님이 원하는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들여오기도 한다고 했다.

벽면 한쪽을 가득 메운 책장으로 눈을 돌리자 책들이 하나같이 ‘검정’, ‘빨강’, ‘분홍’의 띠를 두르고 있었다. 소노다 씨는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점에 착안해 크게 세 가지로 분류했다"고 소개했다. 검정 띠를 두른 책은 ‘어두운 사랑, 즉 애증과 분노’, 빨간 띠를 두른 책은 ‘정열적인 사랑, 혹은 가족애’, 분홍 띠를 두른 책은 ‘순수한 사랑, 혹은 관능’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사랑을 테마로 한 약 200여권의 책들이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다. (사진=최지희기자)

현재 이곳에서 보유하고 있는 책은 약 200여권으로, 기본적으로 진보쵸(神保町) 책방 거리에 있는 가모메북스(カモメbooks) 오너가 ‘가부키쵸 북센터’에 어울리는 책을 선정해 공급하고 있다. 이밖에도 책방의 직원과 손님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책을 정하기도 한다. 소노다 씨는 "손님들 대부분은 식사를 하거나 음료를 드시면서 책을 구경하는 편"이라며 하루에 실제로 팔리는 책은 "2-3권 남짓"이라고 밝혔다.

시선을 바 테이블로 돌리자 가부키쵸 거리의 간판에서나 봤을 법한 남성들이 앉아 음료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은 벽에 기댄 채 ‘승인을 둘러싼 병(承認をめぐる病)’이라는 어려운 제목의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린타로(예명) 씨는 호스트 클럽으로 출근하기 전인 오후 5시까지 이곳에 나와 좋아하는 소설책을 읽는다. 책방을 찾는 손님들에게 재밌게 읽은 책을 권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의 일이다.

현직 호스트 린타로 씨는 한국에서는 어떤 소설이 인기가 많냐며 물어왔다. (사진=최지희기자)

책방이 생긴 직후부터 주말마다 나오고 있다는 린타로 씨는 "가부키쵸에 대해 대부분 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가부키쵸, 나아가 호스트 전체의 이미지를 바꾸고자 하는 발상으로 이곳이 생겨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호스트 일에도 지식이 필요”하다며 "책을 읽으면 손님과의 대화 소재도 되고, 은퇴 후 새 직업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된다"며 웃었다. 이처럼 주말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에 이곳을 방문하면 이른바 ‘호스트’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들 가운데는 본인의 자서전을 출간한 전직 호스트도 있다. 

신주쿠 가부키쵸 거리 모습 (사진=최지희기자)

특별한 컨셉의 이곳 책방을 처음 기획한 사람은 데츠카 마키(手塚マキ) 씨로, 호스트바와 주점을 합쳐 10개의 가게를 인근에서 운영하고 있다. ‘호스트’이면서 ‘독서’를 좋아하는 데츠카 씨는 "가부키쵸에 책방을 만들면 호스트들도 책을 읽게 되지 않을까"하는 바람으로 가게 문을 열었다고 했다. 그는 “이곳이 거점이 되어 다양한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가부키쵸’로 인식을 전환하는 게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가부키쵸의 작지만 이색적인 실험이 이곳 책방에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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