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프레스맨) 김민정기자 = 회사원에게 술자리를 동반한 회식은 꼭 필요한 것일까? 회식이 상하관계를 돈독히 하며, 원활한 회사 생활의 기초로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거품경제 붕괴 후 일본 회사들은 사원들의 회식 비용을 아끼기 시작했고, 그 횟수는 저절로 줄어 들었다. 최근에는 일본정부가 ‘일하는 방식 개혁’의 일환으로 장시간 노동에 경보를 울리고 있는 만큼 술자리를 갖는 횟수는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회식자리를 줄이는 노력을 기울이는 기업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주쿄 텔레비전(中京テレビ)의 고마츠 노부오(小松伸生)사장은 업무와 관련된 회식은 원칙적으로 1차로 종료하는 ‘음주 개혁’ 등 불필요한 술자리 근절을 위한 다양한 제도를 검토키로 했다.

이토추 상사(伊藤忠商事)도 2014년 술자리 규칙을 만든 회사다. 이토추의 술자리 법칙은 ‘110운동’이라고 불리는데 술자리는 1차에서 마무리짓고 시간도 밤 10시까지로 정했다. 영업 중심의 상사의 경우, 술자리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토추 상사가 ‘110운동’을 전개하자, 거래처들도 반기고 있다고 한다.

‘110운동’ 도입 당시 사장이었던 오카후지 마사히로 현 회장은 “술자리에서 평소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제는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시대는 끝났다.”고 지적한다. 이토추 상사는 2013년 출근시간을 앞당겨 야간 잔업을 줄이는 아침형 근무를 도입하는 등 일하는 방식 개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사원들은 물론 회사들도 술자리 회식을 피하는 경향이 점점 커지고 있는 가운데, 반대로 술을 사내로 끌어들여 원할한 소통을 도모하는 회사도 등장했다. 오사카의 IT기업 클로버 랩은 회사 밖 술자리를 줄이는 대신 사내에 사원들을 위한 ‘바’를 마련했다. 위스키, 사케, 소주 등이 마련되어 있어 무료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고야마 리키야(小山力也)사장은 “알코올의 힘을 빌리면, 가끔 부딪힐 때도 있지만, 평소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털어놓기를 바란다”며 ‘바’를 마련한 경위를 설명한다.

회식비가 회사 재정에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일하는 방식 개혁'으로 야근을 줄이도록 하는 정부의 방침이 내려지면서 회식자리는 점점 줄고 있다. 사외 회식보다 사내에 '바'를 마련해, 일이 끝나고 술을 한 잔 마시며 소통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회사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사진:클로버랩 홈페이지)

의료기기 제조사 아크레이도 사내에 ‘바’를 마련한 회사다. ‘논담 바’라 이름붙인 바는, 평소 묵묵하게 일하는 연구직 사원들이 활발한 토론을 하도록 마련한 것이다. 아크레이는 술자리 참석 여부를 보너스 책정에 반영하고 있다. 상사가 참석하는 술자리에 참석하면 한번 참가할 때마다 1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게 되며, 이 1포인트가 보너스를 받을 때 1000엔으로 환산된다고 한다. 

히타치 솔루션은 술자리에 참석하는 사원들을 위해 1인당 3500엔의 음식비를 보조해준다. 회사를 벗어나 다른 공간에서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배려다. 히타치 솔루션의 경우, 회식비의 일부를 회사가 부담함에 따라 회식이 증가했고, 더불어 이직률이 감소하고, 사원들의 우울증도 줄고 있다고 한다.

술문화 연구소 가노 타쿠야( 狩野卓也)대표는 “IT계 기업 등 중도 입사 사원이 많은 회사들은 술자리를 줄이기보다 추천하는 추세라고 말한다.”고 말한다. 

일본 회사원들은 정말로 술자리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일까? 올해 취업서비스 회사 ‘마이나비’가 회사원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상사와 술을 마시러 가고 싶다고 답한 사람은 53.3%,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은 47.7%로 나타났다. 절반쯤은 긍정적인 반응이며 절반쯤은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술자리에 가고 싶은 이유로는 '깊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어서'가 1위를 차지했고, 술자리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로는 '주위에 신경을 써야 해서'가 가장 많았다. 메이지 대학 홋타 슈고(堀田秀吾)교수는 부하들이 원하는 깊은 인간관계 맺기에 상사들이 제대로 응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홋타 교수는 "일본 생산성 본부의 조사에 나타난 바와 같이 89%의 임원이 혼을 내서 부하를 성장시킬 수 있다고 믿는 반면, 약 57%의 일반사원이 혼이 나면 일할 의욕이 사라진다고 답하고 있다"며 "술자리 자체에 대한 거부감보다 술자리에서 따뜻한 인간관계를 원하는 부하직원과 자신의 영웅담을 이야기하고 부하를 질책하는 상사 간에 괴리가 있는 만큼 부하 직원을 술자리에 부를 때는 이런 점에 유의하거나 아예 술자리를 가지지 않는 것이 더 좋은 해결법"이라고 제시한다. 

한편 스마트폰 앱 ‘스트레스 스캔’의 조사에 따르면 일주일간 술자리에 간 회수가 많을수록 스트레스 수치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일본의 회식 자리는 거품 경제 때의 흥청망청 밤을 새던 시기를 지나, 점차 새로운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완전히 사라질 수 없는 '술자리', 원활한 소통을 위한 자리로 거듭나기 위한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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