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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와리깡'이 대세
우리도 '와리깡'이 대세
  • 이승휴 기자
  • 승인 2017.12.17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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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남대문 시장에 가면 어음할인이란 간판이 많이 있었고 그 밑에 함께 적혀있던 와리깡이란 단어가 눈에 띄었다. 일명 어음 와리깡은 선이자를 떼고 현금으로 바꿔주는 일을 통칭해서 할인의 의미가 크다 하겠다.

일본어에서 할인은 와리비끼이고 나누다는 와루이다. 와리깡은 와루(나누다)와 칸조우(셈, 계산)의 합성어로 각출해야 할 부분만큼 나누어낸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할인의 의미가 강한 우리나라에서의 와리깡은 잘못 쓰인 표현인 셈이다.

와리깡은 일본어 사전을 찾아보면 ‘몇 사람이 금액을 등분하여 같이 부담해서 셈을 치르는 것’으로 되어있다. 금액을 ‘등분하여’ ‘같이 부담해서’라는 점이 중요하다. 반면 우리나라 일한사전을 보면 와리깡을 ‘각자 부담’으로 영어의 ‘더치페이’의 개념으로 설명되어 있다.

‘각자 부담’과 ‘몇 사람이 금액을 등분하여 같이 부담해서 셈을 치르는 것’은 의미가 조금 다르다. 즉 와리깡은 ‘공동적 균등부담’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와리깡 문화는 일상적인 개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일본과 우리나라 문화의 차이로 와리깡 문화를 꼽았지만 지금은 우리 문화도 와리깡이 대세다. 더 나아가 직장인들 점심 문화는 한 테이블에서 식사는 함께 해도 계산은 각자 카드로 하는 풍경으로 바뀌고 있어서 놀랍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낯설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서로 부담스럽지 않고 당연한 것이 되어 서먹서먹하다거나 치사하다는 인상을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부담스럽지 않고 서로 평등하고 대등하다는 이유로 좋아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성세대에서는 조금은 정 없어 보이고 낯설기도 한 와리깡 문화다. 우리네 정서는 가끔씩 서로 내겠다고 계산대에 먼저 달려가 상대방 카드를 집어던지는 모양이 더 친숙하다.

‘밥 먹자’고 제안하는 사람이 밥값을 내거나 ‘한턱 쏠게’ 호기롭게 지갑을 여는 선배나 언제나 계산할 때쯤이면 구두끈을 천천히 매는 만년 과장님 이야기가 옛 추억으로 사라지는 모양새다. 한사람이 계산하던 때도 무언의 와리깡 법칙은 존재했다. 오늘 내가 샀으면 다음엔 얻어먹은 쪽이 내고 해서 각자 계산하지 않아도 사이클이 정해져 골고루 부담하며 생활했다.

사회생활 하면서 어느 일방만 부담하는 관계는 곧 깨지기 때문에 규칙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아도 눈에 안 보이는 규칙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거기에 융통성이 함께 하면서 우리네 특유의 정이 싹터 마음을 나누는 관계로 이어진다.

후배를 만나면 선배가 쏘고 친구들끼리 만나면 잘 나가는 친구가 밥값 정도는 기쁜 마음으로 베풀고 직장 상사는 부하 직원들의 회식비를 담당하는 게 자연스러운 인지상정이었는데 요즘은 n/1로 공동 분담하는 것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고만고만한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모임에서는 와리깡 문화가 편하다. 서로 간 큰 부담이 없어야 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큰 사회의 변화를 받아들이면서도 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들의 눈에는 각자 카드 들고 줄 서있는 풍경이 생경스럽기만 하다.

IMF 시대 금모으기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장롱 속에 잠들어있던 아이들 돌 반지, 팔찌며 결혼식 예물이던 금가락지, 직장에서 받은 황금열쇠 등등이 모두 쏟아져 나왔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특유의 십시일반으로 도울 수 있으면 보태겠다는 개념이 통했다. 기적을 이룬 것이다. 지금 다시 금모으기 운동을 벌인다면 통할까? 답은 ‘아니다’ 싶다.

중산층이 무너진 지 오래고 빈부격차가 점점 커지고 개인의 삶이 중시되어지는 시대에 더치페이나 와리깡은 당연시되어질 수밖에 없는 커다란 문화적 흐름이라는 것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세적 흐름에 장점을 바라보고 변화에 익숙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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