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기업들, 오히려 가격인하…물가상승률 2%는 신기루?

<디자인=김승종기자 / 이미지출처=Getty Image Bank>

일본에서는 '인상의 봄'이라는 말이 있다. 주로 봄철에 물가가 오르는 것을 반영하는 말이다. 하지만, 2016년 봄에는 이와는 반대로 물가가 떨어지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상품 가격을 오히려 인하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배경에는 소비심리 위축이 자리잡고 있다. 가격을 낮춰서라도 소비자들의 구매심리를 자극하려는 목적이 있는 셈이다. 가격인상을 단행하는 기업들도 보이고 있지만 경기는 불투명하고 지금이 인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보는 기업들이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일본은행이 목표로 하고 있는 물가상승률 2% 달성은 오히려 멀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패스트리테일링이 운영하는 캐주얼 의류체인 '유니클로'의 웹사이트 톱 페이지에는 "평일이나 주말에도 매일 구입 가능한 가격으로 조정했습니다"라는 문구가 걸려있다.

평일 매장을 제외하면 1,290 엔(세금 별도)이었던 '에어 리듬 크루넥 T'의 판매가는 990엔. 2,490엔이었던 '옥스포드 셔츠'는 1,990엔에 판매되고 있다.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사장이 2년 연속 가격인상을 단행한 것은 2015년 봄이었다. "현재의 품질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격 인상이 필요하다"며 이해를 호소했지만, 궤도 수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가격인상에 따른 고객수 감소를 객단가의 증가로 보충해 매출을 확보하려는 구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2015년 후반부터 고객수 감소가 두드러지고 매출도 전년에 미치지 못하는 등 상황이 녹록치 않은 것이다.

불과 1년전인 2015년에는 엔화 약세로 인해 원재료비가 급등했고 경기전망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가 많아 많은 기업들이 가격인상을 단행했지만, 2016년 들어 정반대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기업들의 고민은 깊어져만 가고 있다.

도넛 전문 체인 '미스터 도넛'도 유니클로와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스터도넛은 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있는 '100 엔 세일' 등의 캠페인을 줄이는 대신 인기 상품 '퐁드링'과 '올드패션' 등 스테디셀러 상품의 가격을 10~20% 할인해 판매한다. 운영회사인 다스킨에 따르면 점포개장과 동시에 가격인하를 진행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편의점의 도넛 판매 경쟁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규동 전문점 '요시노야'도 저렴한 제품을 투입해 경제성을 부각시켜 고객들의 방문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주력 상품인 '규동나미모리'보다 50엔 싼 330엔의 '부따동'을 주력상품으로 부활시킬 예정이다. 재료가 야채 중심인 '베지동' 시리즈의 가격도 50~60엔 내렸다. 

이처럼 최근 가격인하 정책을 통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느낌을 강조하는 기업이 잇따르는 배경에는 경기전망이 불투명하다고 느끼는 소비자가 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본소비자청이 발표한 2016년 3월 물가 모니터 조사 결과 (속보치)에 따르면 향후 3개월간 전년 동기보다 지출을 줄이겠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을 57.5%로 전월 대비 3.5 포인트 상승했다. 소비 증세 직후 2014 년 4 월 조사의 59.3 %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비자가 지갑을 닫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영향을 뒷받침하듯 전국 슈퍼마켓 판매정보를 바탕으로 산출하는 '닛케이 나우캐스트일차(日次)물가지수'(7일 이동평균)도 지난 11일 기준으로 전년 같은 날에 비해 상승률이 0.72%로 9개월만에 가장 낮았다. 3월에는 1.2∼1.4% 상승했지만 급제동이 걸렸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카레, 아이스크림, 컵라면, 우유 가격은 작년 4월에는 3∼8% 올랐지만, 올해는 거의 전년과 같은 수준이다. 전체 지수가 약해진 배경이다. 가격이 오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매출도 둔화하고 있다고 한다. 가계의 수요가 약한 것이다.

일본은행은 지난 1월 마이너스 금리가 물가상승 효과를 낼 것이라며 2017년도 전반에 물가상승률 목표 2%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지금으로선 목표 달성이 점점 어려워지는 분위기이다.

민간 이코노미스트들의 2017년도 물가상승률 예상치 평균도 0.87%로 3개월 전보다 0.26%포인트 하향조정했다. 물가상승 전망이 크게 떨어지면 추가 금융완화 필요성이 증가하지만, 마이너스 금리정책 이후에 기대와는 반대로 엔고가 되고 주가는 하락함에 따라 추가 완화를 둘러싼 우려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국채 매입을 늘리면 도리어 완화 한계론에 직면할 위험도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필요할 경우 양과 질, 금리 3개 차원에서 추가적인 금융완화 조치를 강구한다"고 되풀이하지만,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쉽게 추가 완화정책을 가동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일본은행 발표에 따르면 일본의 3월 기업물가지수(CGPI·도매물가지수와 유사)는 전년 동기 대비 3.8% 내려 12개월 연속 하락했다. 지난해 전체도 전년보다 3.2% 내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도 이래 하락폭이 컸다.

이는 소비자물가 하락으로 연결되기 쉬운데, 최근에는 수입품 가격을 내려가게 하는 엔고까지 겹쳐 물가하락 압박 요인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는 27~28일 열리는 일본은행의 금융정책결정회의가 더욱 주목받고 상황이다.

저작권자 © 프레스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Tag키워드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