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 디자인=김승종기자 ⓒ프레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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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5명, 882명, 828명.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최근 3년간 산업재해 사고로 인해 사망한 근로자 수다. 사망한 근로자들 중 건설업의 비중은 절반을 넘었다. 사망 요인은 떨어짐, 부딪힘, 끼임 세가지가 약 60%에 육박했다. 오는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앞서 많은 건설사들이 안전 경영에 박차를 가한다고 선언했지만 정작 지표는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11일 발생한 HDC현대산업개발 시공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로 중대재해처벌법은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이에 <프레스맨>은 건설업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재 구조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 벌어질 법적 논란들과 실효성을 심층 취재했다. 또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이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대안도 함께 짚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일이 이제 열흘도 남지 않았다.

제정 이후 1년의 유예기간이 있어온 만큼 건설업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대비하기 위한 각종 안전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산재 사망자 지표는 시행 예고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특히 지난 18일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한 광주 화정동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로 1명의 사망자, 5명의 실종자가 발생하자 일각에선 건설사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대한 준비가 덜 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현재 건설업 구조가 산재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안전과 관련한 경영 방침을 근본적으로 바꿔야한다고 한 목소리로 촉구했다.

1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건설사들은 지난해부터 안전관리팀을 신설하거나 전담 이사를 임명, 안전 경영 선포식을 갖는 등 안전 경영 전략을 잇따라 발표하고 나섰다. 

표면적으로는 안전경영을 내세우고 있지만 속내는 27일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지난해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기업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최고경영자가 직접 처벌받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산재 사망사고의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되며 민사상 손해액의 최대 5배의 범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예고한 지난해에도 산재 사망자 지표는 사실상 큰 변화가 없는 실정이다. 지난 3개월간 고용노동부 발표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19년 산재 총 사망자는 855명이었고 2020년엔 882명 지난해는 828명이었다.

특히 건설업의 경우 지난 2019년 사망자 428명으로 50.1%, 2020년 458명으로 51.9%로 총 사망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의 산재 사망자를 취합한 자료에서도 건설업은 340명의 사망자를 기록해 50.1%를 기록했다. 전체 사망자수엔 미미한 차이는 있지만 산재 사망 사고의 절반 이상이 건설업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바뀌지 않은 것이다.

사망 사례를 살펴봐도 ‘떨어짐’이 2019년 347명으로 40.6%, 2020년 312명으로 35.4%로 나타났고 지난해 9월까지의 지표에서도 295명으로 43.5%에 육박한다. ‘끼임’은 106명(12.4%), 98명(11.1%), 77명(11.4%)를 기록했고 ‘부딪힘’이 84명(9.8%), 72명(8.2%), 77명(11.4%)으로 나타났다. 떨어짐과, 끼임, 부딪힘 세가지 원인의 순위는 견고한 상황으로 사망 사고가 가장 자주 발생하는 경우에도 불구하고 이에 따른 대책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

특히 50인 미만 사업장의 산재 사망률이 70%에 육박했다. 2019년의 5~49인 사업장 산재 사망자수는 359명으로 42%, 2020년엔 402명으로 45.6%, 지난해엔 351명으로 42.4%를 기록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지난 2019년 301명으로 35.2%, 2020년 312명으로 35.4%, 지난해 317명으로 38.3%다. 5인~49인 사업장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이 3년간 더 유예되며 5인 미만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에서 제외된다.

▲'위험의 외주화' 만연한 건설현장… "안전 조치 무시되는 경우 많아"

노동계에선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대부분이 영세 하청업체라고 설명한다. 건설 현장에선 시공사인 대기업들이 위험한 업무를 하청업체 노동자 등 외부에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이 만연하다고 지적한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는 "영세 하청업체는 안전보건조치가 미흡할 수밖에 없다"며 "이번 HDC현대산업개발 사고에서도 하도급에 따른 비용절감 때문에 미숙련 외국인 근로자 사용 등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계단 공사는 통상적으로 가장 정밀한 형틀 공사가 수반돼야 하지만 이번 사고 현장에서 근무한 근로자 제보에 따르면 대부분 작업을 미숙련 외국인 근로자들이 수행했다”며 “당시 만들어진 계단은 설계안보다 오차범위가 커 사고가 수반될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장의 반응"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하도급과 관련해 “안전 보건 조치 비용이 생각보다 커 대기업 입장에선 비용 절감을 위해 하도급을 진행하는 면 때문에 안전에 큰 돈을 들여 쓰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영세 하청업체 입장에선 안전 관리 비용 자체가 부담"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건설업에선 대부분 위험한 업무를 발주받아 하청업체가 이를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상황에서 전체 공사기간 단축에 대한 압박도 들어오기 때문에 동시에 수행할 수 없는 위험한 작업을 함께 처리하는 등 무리한 작업 지시가 내려오는 경우가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즉 많은 인원을 투입해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아닌 무리한 노동 지시를 통해 공사기간을 맞추게끔 하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또 하청업체 입장에선 원청인 대기업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여야하는 상황.

지난 2019년 12월 태안화력에서 컨베이어 벨트 점검을 하다 사망한 김용균씨와 지난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작업 중 숨진 노동자 '구의역 김군사건'이 일어나자 이러한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산업재해가 빈번하거나 사고 가능성이 높은 업종들은 도급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는 주장이 커졌다. 이를 반영해 지난 2018년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다.

그런데 개정 산안법이 포함하는 도급 금지 및 승인 조건에 관한 조항엔 건설업 관련 내용은 쏙 빠져있다. 개정 산안법의 도급 금지 규정인 58조는 도금작업, 수은·납·카드뮴의 제련·주입·가공·가열 작업, 디클로로벤지딘, 비소, 염화비닐 등 12개 허가대상물질의 제조·사용작업만을 대상으로 꼽고 있다. 산재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발생한 건설업은 제외된 셈. 당시에도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에 따라 건설사들이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산재 사망 예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018년 산안법 개정 당시에도 도급과 관련한 별도의 금지 규정을 비껴간 만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앞서 산재 사고에 노출된 현장 근로자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건설현장에서 공사기간 단축과 수주 기간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압축적인 노동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 과정에서 여러가지 필요한 제반 조치나 절차가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손 활동가는 “현장의 안전과 관련해선 1차적으로 작업자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작업자의 문제의식을 청취하고 이에 맞게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대부분은 미연에 예방할 수 있었던 일들인 만큼 현장 직원들의 주장을 경청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프레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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