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한명, 연간예산 150만엔···가와사키초급조선학교 방문기

“한국분은 거의 없었는데... 정말 반갑습니다.”

집합 시간인 9시 15분까지는 10분 이상 남아있었지만, 가와사키(川崎)역 시계탑에는 일찌감치 도착한 무리들이 익숙한 듯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 조선학교 방문 참가자는 약 서른 명. 가나가와(神奈川) 네트워크 등의 시민단체 주도 아래 일반인, 전 조선학교 출신자, 가나가와 도의원 등 신분은 다양했다. 그들에게 다가가 첫 참가임을 밝히고 인사하자 ‘한국 사람이 와준 것은 처음’이라며 반겼다. 전원이 모이자 곧바로 버스를 타고 약 15분 거리에 위치한 가와사키초급조선학교로 향했다.   

정류장에서 내려 학교로 향하는 길 양옆으로 한적한 주택가가 펼쳐졌다. “예전엔 이 근방에 한국사람, 조선사람이 많이 모여 살며 부락을 이뤘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흩어져 살고 있다”며 참가자 중 한명이 말했다. 부락을 이룰 만큼 많은 수의 한반도 출신자들이 모여 살던 이곳에 1946년 가와사키조련초등학교가 설립된 것을 시작으로, 1970년 현재의 교사인 가와사키 유치원, 초・중급학교가 세워졌다. 그러나 2005년, 학생 수 감소 등으로 중급학교는 가나가와조선중고급학교와 통합되어 지금은 유치원과 초급학교만이 남았다. 현재 이곳의 학생수는 유치원생과 초급생을 합해 44명(전임교원 7명). 쌀쌀한 봄 날씨에 단단히 옷깃을 여미며 교문으로 들어섰다.

가와사키조선초급학교 전경 <사진=최지희 기자>
체육관 전경. ‘학교창립 71돌을 축하해요’라는 붉은 글자가 눈에 띈다. <사진=최지희 기자>

“안녕하십니까!”

학교 건물 앞마당에서 줄넘기를 하던 3학년 학생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우리를 향해 인사했다. 짙은 감색 바탕에 남학생은 반바지, 여학생은 치마로 된 교복을 입고 줄넘기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여느 일본 초등학생과 다르지 않았다. 줄넘기를 멈추고 인사하는 아이들에게 ‘춥지 않냐’고 묻자 “좀 춥습니다!”라며 까르르 웃었다. 교문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체육관 벽면에 붙은 ‘학교창립 71돌을 축하해요’라는 붉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교사 안으로 들어서자 ‘잘 오셨습니다!!’라고 한글로 쓰인 게시판이 참가자들을 반겼다. 학년 당 교실은 하나씩으로, 유치원생과 1학년생은 2층, 2・3학년생은 3층, 4・5・6학년생은 4층 교실을 사용했다. 건물은 언뜻 보기에도 상당히 낡아 벽 곳곳에 연녹색 페인트가 벗겨져 흰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복도에 걸린 한반도 지도에는 남북군사분계선인 38도선은 그어져있지 않았다.

‘잘 오셨습니다’라고 쓰인 게시판이 방문자들을 반겼다. <사진=최지희 기자>
교실이 있는 복도의 모습 <사진=최지희 기자>

"예전엔 여기에 커다란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걸려있었어요”

2000년대 중반부터 조선학교들을 방문해오고 있다는 일본인 남성은 2007년부터 학교에서 초상화를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2층에 자리한 1학년 교실로 들어서자, 6명의 학생들이 한복을 입은 선생님의 지도아래 국어(조선어) 공부에 한창이었다. 벽에 걸린 1학년 시간표에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1교시는 모두 ‘국어’ 시간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일본어’ 시간은 화・수 3교시로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커리큘럼에는 조선어의 비중이 월등히 높았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일본어 시간은 주 5시간까지 늘어나며, 5학년부터는 영어 수업도 시작된다. 일본어 수업을 제외하면 수업은 모두 조선어로 진행되고 있었다. 교실 뒤편의 ‘주요 기념일표’에는 4월 15일 태양절(김일성 생일), 9월 9일 국경절(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일), 2월 16일 광명성절(김정일 생일) 등이 표기되어 있었지만, ‘조선학교’하면 먼저 떠오르던 김일성・김정일의 초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1층 로비 벽면의 모습 <사진=최지희 기자>

3층 5학년 교실로 들어서자 8명의 학생들이 연극 수업에 한창이었다. 학교에서 있는 시간 이외에는 다른 또래 일본 친구들이 그렇듯 일본어를 쓰며 생활하는 환경이지만, 학교의 철저한 조선어 수업의 영향으로 학생들의 대사를 알아듣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수업을 참관하던 일본인 참가자는 “(일본어가 아니라서) 대사를 이해할 순 없지만 두 개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다”며 놀라워했다.

곧이어 옆 반인 6학년 교실로 이동했다. 게시판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미국의 시리아 공습을 비판하는 조선신보(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기사를 스크랩하여 붙여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곳 학생들은 5학년이 되면서 조선의 역사와 정치를 공부하기 시작한다. 6학년 박미향 양은 가장 좋아하는 과목으로 ‘영어’를 꼽았다. “잠비아에서 온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영어 시간이 제일 재밌어요”라며 웃어보였다.

과거 조선학교 교원을 지냈다는 남성은 “이전에는 아이들이 일본한테는 뭐든지 이겨야한다는 정신이 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런 것이 전혀 없다. 그저 밝고 솔직하다”며 소개했다.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 학생들의 60~70%는 한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국적의 자녀를 조선학교에 보내는 경우의 대부분은 “일본인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민족의 언어와 풍습을 익히게끔 하기 위해서”라고 남성은 설명했다. 

조선학교는 과거 북한으로부터 막대한 교육원조비를 받으며 교과서 편찬부터 교원 육성법까 다방면에서 북한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 일본 내의 특수한 교육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국제정세의 변화 등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한 기존의 정치사상교육은 재일조선인들 사이에서도 점차 조선학교를 기피하게끔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특히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일본인 납치 인정’은 재일조선인 사회에 결정적인 타격을 안겨다주었고, 조선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수의 급감으로 이어졌다. 결국 2003년에 개편된 조선학교 초중급학교 교과서에는 개인숭배적 내용은 모두 삭제되기에 이르렀다.

조선학교의 ‘민족교육’은 2016년에 70주년을 맞이했다. 조선학교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는 “현재 조선학교 교육은 일본 정착을 전제로 하는 교육, 즉 ‘일본에서 조선민족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교육’으로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재일조선인들은 오랫동안 북한의 영향을 받아 온 것이 사실이며 지금도 유대관계를 무시할 수 없지만, 재일조선인을 둘러싼 주변 환경이 바뀌면서 총련 역시 북한과의 관계보다 재일조선인의 요구에 중점을 맞추어 활동방침을 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방문 일정의 마지막은 학생들과의 대화의 시간이었다. 장래희망이 스무 개가 넘어 고르는 것이 힘들다며 새침하게 웃는 6학년 차세리 양은 재일교포 4세다. 조선 국적과 한국 국적의 부모님을 둔 차양은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서도 개근상을 위해 한 번도 결석하지 않을 만큼 똑 부러진 성격의 소유자다. 하지만 “일본도 좋고 일본인 친구도 정말 좋은데 일본 정치인들은 싫어요”라고 말할 때는 입가의 미소가 옅어지기도 했다.

1층 현관 입구에는 조선학교 무상교육 권리를 주장하는 홍보물이 붙어있다. <사진=최지희 기자>

행사의 종료에 즈음하여 강문석 교장은 “지원이 끊겨 어려운 상황이지만 일본과 한국의 시민단체와 조선학교 OB들이 도와주고 있어서 그나마 학교를 유지할 수 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가와사키조선초급학교에 올해 1학년으로 입학할 예정인 학생은 단 한명. 연간 800만 엔씩 받던 보조금도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을 계기로 끊겨 현재는 다른 명목으로 150만 엔 정도의 지원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은 1970년대부터 각 지자체의 판단에 의해 이뤄져오고 있는데, 문부과학성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조선학교가 있는 28개 광역지자체 중 조선학교에 보조금을 지급한 곳은 14곳뿐이었다. 일본 정부와 자민당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일본인 납치문제를 배경으로 지자체에 보조금 지급을 중단할 것을 압박한 데 따른 것이다.

학교 방문을 끝내고 1층 현관으로 내려오자, 짧게 깎은 머리에 축구공을 차며 운동장에서 놀던 남학생이 달려왔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우렁차게 외치더니 이내 운동장으로 쌩하니 달려갔다. 이곳의 학생들 역시 언젠가는 성인이 되어 일본 사회를 받쳐나갈 중요한 구성원이다. 더 이상은 정치적, 사상적 이유로 차별받거나 상처받는 아이들이 생겨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교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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