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내 저가격대 브랜드 공존···카니발리제이션 영향 커

디자인=김승종 기자 /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 불황 시대의 흐름을 타고 태어나 영원할 것 만 같았던 저가형 상품의 대명사 유니클로의 성장세가 위태롭다. 최근 2년간 단행했던 가격인상이 소비세율 인상과 겹쳐지면서 저렴함을 무기로 내세웠던 유니클로의 강점이 사라져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왜 유니클로는 명분도 없는 가격인상을 단행했던 것일까?

지난 13일 패스트리테일링(유니클로의 모기업)은  2016년 연결 결산(2015년 9월~2016년 8월) 순이익이 전년(2014년 9월~2015년 8월)보다 56% 줄어든 480억엔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액은 전년동기 대비 6.2% 늘어난 1조 7864억엔이었지만, 영업이익은 22.6%나 줄어든 1272억엔을 기록했다. 

온난화 영향으로 수익성이 높은 겨울의류의 판매부진도 둔화의 한 요인으로 꼽을 수 있지만, 업계에서는 매년 가격 인상이 거듭되면서 ‘단골’ 소비자가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니클로는 실제로 2014년 추동상품을 평균 5% 인상한데 이어 2015년 추동상품도 평균 10%인상한 바 있다. 게다가 2014년 4월에 실시된 소비세율 인상까지 겹쳐지면서 소비자들이 발길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소비자들이 가격부담을 느끼면서 거부반응을 일으킨 셈이다.

이에 따라 2016년 상반기(2015년 9월~2016년 2월)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대비 33.8%나 줄어든 결과를 보였다. 야나이 타다시 회장 겸 사장마저도 부진의 요인으로 가격인상을 꼽았을 정도다.

이후 가격대를 원래수준으로 되돌리고 주말 세일을 자제하면서 통상가격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한 결과, 2016년 하반기(2016년 3월~8월) 고객수는 전년동기대비 2.6% 감소했지만, 상반기 6.3% 줄어든 것과 비교해선 감소폭이 크게 줄어들며 회복경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상황이 개선되었다고 하더라도 낙관할 수만은 없다. 일본내 유니클로의 성장둔화세가 이미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의 매출액을 살펴보면, 2012년 6200억엔, 2013년 6833억엔, 2014년 7156억엔, 2015년 7801억엔, 2016년에는 7998억엔으로 증가하고 있긴 하지만, 성장률은 계속 낮아져 2016년엔 전년대비 2.6%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렇듯 매출액 성장율 하락의 주요인은 가격인상임에 분명하지만, 패스트리테일링의 완전자회사인 '지유(GU)'의 성장세를 보면 조금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이지만, '지유'는 유니클로의 모회사인 패스트리테일링이 유통업체 다이에이(DAIEI)와 업무제휴를 통해 2006년 탄생시킨 브랜드다. 

'더욱 자유(自由의 일본식 발음은 '지유'다)롭게 입자'라는 컨셉트를 가진 지유는 출범 당시 유니클로와 같은 SPA업태가 아닌 OEM상품 중심이었다. 브랜드 출범 후 첫 2~3년간 이렇다 할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던 지유는 2008년부터 패션성을 추구하기보다 기본제품에 철저한 저가격제를 도입하는 등 SPA화를 추진하면서 회복세를 띄기 시작했다.

지유를 유명하게 만든 간판 상품은 2009년 상반기 선보인 ‘990엔 청바지’다. 연간 판매목표의 두 배를 웃도는 100만장을 판매했을 만큼 일본 내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유니클로 청바지의 반값 이하인데도 가격 대비 품질은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지유는 프린트 티셔츠, 컬러 바지, 아우터 웨어 등 품목을 바꿔가며 990엔 시리즈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지유는 일본 내 매장을 공격적으로 늘려 2016년 9월말 기준 341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며 년간 40~50개 수준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지유는 유니클로와 비슷하게 품목을 다양화하기 보다 히트상품 위주의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하고 있고, 가격도 유니클로보다 저렴한 편으로 두 브랜드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그다지 커다란 차이를 느낄 수 가 없다.

두 브랜드간의 '카니발리제이션(Cannibalization·동족상잔)' 요인은 여기서 발생한다.

지유는 당초 의도적으로 유니클로 매장에 근접 출점하는 전략을 세웠는데, 심지어 신주쿠 매장의 경우 유니클로와 지유가 같은 건물에 입점해 있다. 이외에도 두 브랜드가 서로 마주보고 있거나 바로 옆건물에 위치하고 있는 사례도 많다.

유니클로에 비해 인지도가 낮았던 지유는 근접 출점을 통해 유니클로 계열 브랜드라는 점을 내세워 시장에 쉽게 뿌리 내릴 수 있는 전략을 구사한 셈이다. 또한 두 브랜드간 인력을 서로 융통할 수 있다는 점도 메리트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유의 인지도가 높아감에 따라 이같은 근접 출점 메리트는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왔다. 지유의 가파른 성장이 오히려 유니클로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룹내 두 브랜드가 저가격대 상품을 중심으로 소비자를 뺏고 뺏기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모회사인 패스트리테일링 입장에서는 못내 아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패스트리테일링 상품 라인업 중, 중가격대 브랜드는 진공지대다. 패스트리테일링 그룹의 사업은 크게 국내유니클로사업, 해외유니클로사업 그리고 글로벌브랜드사업의 3가지로 나뉜다. 

국내와 해외유니클로 사업과 글로벌브랜드사업에 속하는 지유는 저가 브랜드 인 반면, 글로벌브랜드사업 중 '세오리', '콘토와데코토니에', 'J브랜드' 등 '지유'를 제외한 모든 글로벌브랜드사업은 고가격대의 상품 일색이다. 게다가 '세오리' 등의 고가격대 상품은 각각 다른 취향의 브랜드인 반면, 저가격대 상품인 유니클로와 지유는 취향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끝났지만, 패스트리테일링이 소비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번씩이나 유니클로의 가격인상을 단행한 이유는 위와 같이 그룹내 저가격대 브랜드가 중복돼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가격인상을 통해 유니클로를 중가격대 브랜드로 격상(?)시켜 지유와의 브랜드 차별화를 시도함과 동시에 상품라인업을 추가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두 브랜드간 품질이나 패션성 등 명확한 차별화를 위해 노력하기 보단 가격이라는 손쉬운 수단을 쓴 셈이다.

야나기 회장은 당분간 유니클로의 가격인상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두 브랜드간 카니발리제이션을 가격인상으로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3일 결산 기자회견에서 “2020년도 연결매출 목표 5조엔을 3조엔으로 낮춘다”며 “세계 넘버원이 되려면 매출 5조엔이 돼야 하지만, 지금 현실적인 판매규모로 생각하니 목표는 3조엔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유니클로는 일본 내 매출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5% 수준으로, 일본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에 실적이 크게 좌우된다. 가격인상과 같은 꼼수(?)로 차별화를 시도했다간 차칫 그룹의 뿌리가 뽑힐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프레스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Tag키워드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