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경제 시기 이후 증시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린 일본에서 이번에는 사상 최대의 임금 인상 움직임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곧 있을 일본 중앙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해제 가능성에 대비한 움직임으로도 볼 수 있다. 한편 일본 경제가 회복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통큰 임금 인상이 중소기업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되고 있다.

13일 정오 무렵, 금속노조가 2024 춘투 집계대상조합의 임금 인상 상황을 화이트보드에 기록하고 있다. (이미지:  TV도쿄 보도화면 캡쳐) 
13일 정오 무렵, 금속노조가 2024 춘투 집계대상조합의 임금 인상 상황을 화이트보드에 기록하고 있다. (이미지:  TV도쿄 보도화면 캡쳐) 

도요타, 25년 만의 최대 임금인상, 일본제철도 11.8%로 사상 최대

14일 일본 매체에 따르면 일본 주요 대기업들이 노동조합(노조)의 전례 없는 높은 임금 인상 요구에 응하거나 이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인상에 합의했다.

올해 일본 최대 노조인 렌고(連合·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가 봄철 임금협상인 ‘춘투(春鬪)’에서 1994년 이후 30년 만에 최대인 5.85%의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많은 수의 대기업들이 사상 최고 수준의 임금 인상률로 화답하고 있다.

일본제철은 기본급 인상액을 노조 요구액인 월 3만엔(26만 7천원)을 넘는 월 3만 5천엔(31만 2천원)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평균 임금의 11.8%에 해당하는 액수다. JFE스틸과 고베 제철소는 노조의 요구대로 월 3만엔을 인상하기로 했다. 이들 기업 모두 사상 최대치의 인상폭을 제안했다.

히타치제작소와 도시바, 파나소닉홀딩스 등 전기 분야 대기업 12개 사는 노조 요구액인 월 1만 3천엔(11만 6천원)에 대해 샤프를 제외한 11사가 응했다. 이 역시 199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자동차 분야 대기업도 노조의 요구에 속속 응했다. 도요타는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지 않았지만 노조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 도요타 노조는 월 급여 최대 2만 8440엔(25만 3천원) 인상과 사상 최대 규모의 보너스 지급을 요구해 왔는데, 이는 1999년 이후 25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임금 인상 요구다.

닛산은 노조의 요구 금액인 월 평균 1만 8천엔(16만원)을 그대로 받아들여 역시 사상 최대폭의 임금 인상에 응했다. 도요타와 닛산 모두 노조의 요구에 전액 응하기로 한 것은 4년 만이다.

혼다는 노조 요구보다 높은 5.6%를 올려주면서 1990년의 6.2% 이후 가장 높은 인상률을 기록했다. 마쓰다도 노조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6.8% 인상하기로 했다.

히타치, 도시바  등 전기 분야 대기업 12개 사는 노조 요구액인 월 1만 3천엔(11만 6천원)에 대해 샤프를 제외한 11사가 응했다.  (이미지:  TV도쿄 보도화면 캡쳐) 
히타치, 도시바  등 전기 분야 대기업 12개 사는 노조 요구액인 월 1만 3천엔(11만 6천원)에 대해 샤프를 제외한 11사가 응했다.  (이미지:  TV도쿄 보도화면 캡쳐) 

문제는 중소기업과 비정규직…日정부 나서서 독려 예상

과거 춘투에서는 주로 철강과 자동차와 같은 주요 산업의 1위 기업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위 기업의 인상폭에 맞춰 다른 기업들도 임금을 인상했고, 다른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일본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제조업에서도 큰 폭의 임금 인상을 실현하기 어려워졌다. 특히 도요타자동차가 기본급 인상액을 2018년부터 비공개하기 시작하자 다른 자동차 기업들도 이를 모방하면서 기업들의 임금 인상폭을 가늠하기 힘든 구조가 됐다.

반면 일본 대기업은 그간 엔화 약세와 제로 금리로 큰 이익을 보아왔다. 그러나 이를 웃도는 물가 상승률 탓에 실질 임금은 하락세를 이어왔는데, 지난해 춘투에서도 임금 인상률이 3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지만 물가 영향을 고려한 실질 임금은 2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바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재계 지도자들에게 인플레이션을 초과하는 큰 폭의 임금 인상을 실현하도록 압박해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11일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에서 "임금 인상과 성장의 선순환을 만들어 가려면 춘투가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렌고는 15일 각 기업들의 임금 인상 결과를 모아 1차 집계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는 다음 주 18∼19일 있을 BOJ의 금융정책결정회의 결과를 부분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13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금융정책 변경과 관련해 "현재 본격화하고 있는 춘투 동향은 커다란 포인트가 된다"며 향후 발표될 임금 인상률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에 "적절히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문제는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에까지 여파가 미칠지 여부다.

후생노동성의 조사에 따르면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의 비율은 전체의 약 20%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의 약 70% 정도가 속해있는 중소기업 중에는 노조가 없는 곳도 많다. 이들이 임금 인상의 혜택을 보지 못하면 경기 활성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실제 도쿄의 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50대 여성은 “뉴스와 신문에서는 이번 춘투를 크게 보도하지만 아직 우리 회사에서는 그 어떤 이야기도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춘투 결과를 자료로 임금을 올리는 중소기업들도 많다. 또한 춘투 결과는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정해진 최저임금 심의에도 참고가 되는 만큼,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에도 파급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중소기업에게도 임금을 인상하도록 독려할 방침이다. 기시다 총리는 13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임금 인상 움직임이 중소기업까지 확산하는 게 중요하다. 정책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프레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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