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가 나타났다

일본에서 자취를 시작할 때의 일화다. 미닫이문을 여는 순간 필자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부동산 중개인이 보여준 방에는 다다미가 깔려있었다. 다다미! 결국 인연을 하게 됐다는 말인가. 그도 그럴 것이 식물로 만든 저 바닥재는 관리하기가 까다로울 것이 분명했다. 습기에 약할 것이며 방충에도 신경을 써야할 것이니, 일본 고유의 인테리어 소재를 보고도 감탄사가 나오지 않았다. 평소에 덜렁이처럼 액체를 금방 쏟아버리는 필자였으니 더더욱 걱정이 앞섰다. 인터넷에서 읽었던 다다미와 관련된 온갖 눈물의 체험담들이 스쳐갔다. 순식간이었지만 바닥으로 쫙 퍼진 찌개 국물이 결코 보고 싶지 않은 한 장면으로 다가왔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태평하게 방을 둘러보는 중개인에게 조금은 절박하게 물었다.

“다다미 말이에요. 어떻게 관리해야 해요?”
“관리요?”

잠깐 고민을 하던 중개인이 입을 열었다. "관리라고 할 게 있나 싶은데요, 그냥 쓰고 있어서..." 오히려 경악한 사람은 내 쪽이었다. 이런 섬세한 것과 함께 살면서도 무심할 수가 있는지. 어렸을 때부터 적응을 했기 때문인지 이런 귀찮은 바닥재를 쓰면서도 걱정 한 점 없는 일본인이 조금은 무신경해보였다. 이 집 정말 마음에 들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볼게요. 결국 나는 이사를 보류해야 했다.

기어코 인연이 닿았다

다다미에 우려를 하면서도 집을 선택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사택이라 집세가 저렴하고 회사와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혼자 살기에는 평수도 넉넉해서 집을 꾸미겠다는 욕심을 부리기에도 적당했다.

일을 하면서도 다다미에 대한 고민이 걷히지 않았다. 다다미 관리법을 검색하자 ‘바루산’이라는 약품이 나왔다. 연기를 피워 다다미 내에서 기생하고 있는 벌레들을 깡그리 없앤다는 약품이었다. 다다미뿐만이 아니라 집안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해충 제거에 탁월하다고 하였다. 인터넷을 믿어도 될까? 현지인에게 물어보는 게 정확하지 않을까. 결국 일본인 선배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이번에 이사하는 집에 다다미가 있어서요. 관리 차원에서 ‘바루산’을 사서 터뜨려보려고 하는데요. 그러자 선배가 웃었다.

“바루산? 하하하. 오랜만에 들어보네.”

뭐라고요? 무신경한 대답에 또다시 경악했다. 고대 유물을 접한 사람 같은 반응은 무엇인가. 대체 일본인들은 다다미에 대해 이다지도 무심한가.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건가? 살짝 소심해져서 인터넷을 검색했지만 역시나 나의 걱정은 예민함이 아니었다, 다다미는 정말로 사람의 손이 가는 바닥 소재였다. 생각에 과부하가 걸리다보니 단순무식한 길로 빠졌다. 장판을 깔아버리지 뭐! 그러나 통풍이 안 되는 장판에서 다다미가 무사할리 없었다. 심지어 장판을 판매하지도 않았으니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했다. 바로 카펫이었다.

카펫을 깔아놓고도 사소한 걱정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카펫 아래로 습기가 차는 건 아닌지, 그랬다간 새로운 문제와 당면하게 되는 건 아닌지 염려하게 되었다. 때문에 쉬는 날에는 베란다에 카펫을 열고 조금이나마 환기를 시켰다. 에어컨을 틀어서 습기제거를 유도하기도 했다. 피곤함에 부아가 치밀었다. 왜 이런 귀찮은걸 바닥재로 쓰는 거냐!

다다미? 네가 뭔데

출처=위키백과 일본

일본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다미가 그리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으레 등장하는 바닥재가 다다미이기 때문이다. 볏짚을 엮어 만든 이 소재는 우리나라로 비교하자면 대나무 돗자리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플라스틱 다다미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식물 소재인 만큼 병충해에 약할뿐더러 재료를 구하기 힘들다는 현실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 위키백과에 따르면 다다미가 중요 소재로 인식된 것은 에도시대부터이다. 오래전에는 다다미를 손바느질로 만들기도 했으니 대단한 정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다미는 바닥에 깔리는 매수에 따라서 크게는 12조까지 있다. 유통되는 다다미를 기준으로 88cmX170cm가 1조인데, 12조면 제법 넓은 사이즈의 방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 부동산 공정 거래 협의회 연합회에서는 1.62 평방미터 이상의 규모를 1조로 지정하고 있다. 실제로 다다미의 장수로 그 집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주문생산으로 맞춰진 다다미도 있을뿐더러, 지역에 따라서 부르는 단위도 다르기 때문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다다미의 경우 정확한 사이즈가 안내돼있다.<br>
시중에 유통‘되는 다다미의 경우 정확한 사이즈가 안내돼 있다.(사진=한미림기자)

사실 다다미의 가격은 까다로운 관리에 비해서 그리 경제적이지 않다. 인테리어 전문 회사의 경우, 얇은 이구사 다다미 한 장에 2,000엔에 가까운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 그것도 1조를 다 채우지 못하는 사이즈이니, 보통 크기인 6조 방이라면 적지 않은 자금이 들어갈 것이다. 디자인이 훌륭한 카페트가 6,000엔인 것을 감안해도 결코 경제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일본인들이 다다미를 찾는 이유는 습하디 습한 더위와 관련이 있다.

무더운 일본을 달래는 무해한 친구

집 전체를 달구어버리는 일본의 무더위, 바닥이라도 시원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을 정도다. 장판위에 눕는다면 그대로 습기와 맞닿아 피부병에 걸려버릴 것이다. 반면에 다다미는 땀을 흡수할 수 있으니 습기로 꽉 찬 더위에는 최적일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었다.

이사를 하기 전에 알고 지내던 일본인들에게 다다미에 대한 감상을 차례대로 물어보았다. “여름에 누워있으면 시원한 기분이 들어요.” 시원하면 시원한 거지, 시원한 기분이 드는 건 또 뭐란 말인가. 애매한 말은 직접 다다미를 체험하자 실감이 났다. 슬슬 몰려오는 무더위, 집으로 대피해 에어컨을 틀기도 전에 다다미가 깔린 카펫 위에 앉아있으면 더위가 식어갔다. 잠들기 전에도 바닥으로 시원한 기운이 올라왔다. 직접 닿는 것이 아닌 어디에선가 닿아오는 시원함이었다. 관리가 까다로울 뿐이지, 무더위를 물리치기에는 훌륭한 방법임에 틀림이 없었다. 과연 오랜 시간동안 일본인에게 사랑받는 인테리어 소재다웠다.

확실히 대부분의 일본인은 다다미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대형 마트의 인테리어 코너에 방문하면 여름을 맞이해 다다미 카펫이 전시돼있다. 외국인에게는 낯선 다다미의 냄새가 일본인에게는 향긋함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다다미를 구경하는 일본인마다 ‘이 향기가 좋아.’ 기분 좋게 말하면서 다다미의 향을 맡았다. 특이하면서도 중독성이 있는 다다미의 향기란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다다미가 시원한 이유

그렇다면 어째서, 다다미가 특유의 시원함을 품을 수 있을까? 교토에 위치한 다다미 전문점인 사타케 상점에 따르면 다다미의 특징은 이러하다. 다다미의 재료는 ‘이구사’ 라고 하는 다년생 식물이다. 원래 습지에서 자생하는 이 식물은 현재 다다미 생산을 목적으로 재배종이 육성되고 있다. 한 장의 다다미를 만드는 데 대략 사천 개의 이구사가 들어가며, 추운 한겨울에 심은 것을 한여름 햇빛에 건조하여 엄선된 것만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다다미의 재료로 선택할 때의 기준은, 잔디의 길이와 차이 등 여러 분류가 있다. 다다미의 토대는 본래 짚으로 만들었으나 그것도 옛 이야기, 지금은 인공품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토대는 그대로 사용하고 다다미만을 바꿀 수도 있다.

대형마트의 다다미 코너. 여름을 맞아 다양한 형태의 다다미 관련 상품이 진열돼 있다. (사진=한미림기자) 

다다미에는 진흙 염색 또한 들어간다. 수확한 잔디를 진흙으로 염색하는데, 덕분에 다다미 특유의 색조와 독특한 향기가 만들어진다. 변색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다다미를 만들 때 가공하기 쉬운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다다미가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따뜻함을 주는 이유는, 다다미가 품고 있는 공기 덕분이다. 다다미에 구성된 짚의 내부에는 스펀지처럼 공간이 있다. 이 공간 틈에 있는 공기 덕분에 다다미는 훌륭한 바닥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름에는 더위를 차단하고, 겨울에는 바닥으로 내려오는 추위를 차단해준다. 단열성과 보온성 모두 우수한 것이다. 

실제로 다다미방에서 잠을 자면 여름 새벽에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온도 조절뿐인가, 다다미 한 첩은 약 500ml의 습기를 흡수할 수 있어 습도 조절 또한 가능하다. 또한 다다미는 탄력이 있어 척추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오랫동안 그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인 것 같다.

좋은 다다미는 다다미가 촘촘하게 튼튼하게 짜여있는 것이 상등의 상품이라고 한다. 실을 엮어 만드는 이상 직물에 해당되기 때문에 짜임새가 중요한 것이다. 틈새가 없으면 먼지가 들어가기 어려우므로 다다미를 보존할 수 있다. 관리가 잘 된 다다미는 50년부터 길게는 100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굉장한 생명력이다.

그래서, 바루산은 어떻게 됐냐고?

다다미속에 기생하는 해충 제거제 '바루산' 연기를 피우는 방식이다. (사진=한미림기자)

결국 시원하게 터뜨렸다. 화학재료가 마찰하자마자 연기가 피어올라 방을 가득 채웠다. 기사를 써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숨을 참고 사진을 찍었다. 연기는 순식간에 방을 넘어서 거실까지 채우게 됐다. 이러다 사람인 내가 먼저 쓰러지겠다. 당장 집밖으로 나가서 숨을 돌렸다. 바루산을 터뜨린 뒤 3시간에서 5시간정도 경과 후에 돌아와 환기를 하면 되지만, 필자는 다음 날 오전에야 환기를 시켰다. 마른 행주로 다다미를 닦았더니 새카만 것이 묻어나왔다. 범인은 바루산이 아니라 워낙 먼지를 잘 먹는 다다미가 원인인 것 같았지만, 혹시 살고 있는 집에서 바루산을 이용할 계획이라면 불을 붙이기 전에 옷이나 이불 등은 비닐 포장을 하는 것을 권유한다. 더욱 꼼꼼한 다다미 관리를 원한다면 전용 살충 스프레이를 다다미 아래로 살포하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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