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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프로포즈’가 웬말?
‘올림픽 프로포즈’가 웬말?
  • 도쿄=최지희 기자
  • 승인 2018.03.03 2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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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 결혼 장려 동영상에 미혼남녀, 결혼 강요 불쾌
'안심하고 결혼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이 우선’ 등 비난 쇄도

젊은층의 비혼, 만혼, 저출산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에게 짝을 찾아주는 일은 일본 사회 전체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기도 하다. 일본은 1975년을 기점으로 결혼하지 않는 사람이 늘고 있다. 현재는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4명 중 1명, 결혼 후 이혼한 사람이 4명 중 1명 꼴이다. 미혼율이 4명 중 1명, 이혼율이 4명 중 1명이니 어림잡아 일본 국민 둘 중 하나는 독신으로 고령을 맞이하게 된다는 얘기가 된다. 

그 가운데서도 도쿄도의 상황은 가장 심각하다. 2015년 조사 결과에 의하면 도쿄도의 생애미혼율은 남성이 26%로 전국 3위, 여성이 19%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또한 한 명의 여성이 생애 출산하는 자녀수의 평균치인 합계특수출산율은 일본 전체 평균이 1.44명(2016년)인데 비해 도쿄도는 1.24명으로 전국 최하위다. 해결책을 고민하던 도쿄도는 급기야 ‘결혼 희망자들이 올림픽이 개최되는 2020년을 구체적 목표로 삼아 한발 앞으로 나아가도록 사회 전체가 응원한다’는 설명과 함께 2월 2일 결혼장려동영상을 공개했다. 3000만 엔의 예산이 투입된 이 동영상은 3월까지 도내 지하철 차량 내부와 영화관, 변화가의 대형 전광판을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그런데 ‘결혼 분위기 조성을 위한 동영상(結婚に向けた気運醸成のための動画)’이라는 제목의 이 1분짜리 영상이 인터넷에서 공개되자마자 네티즌들의 비난이 끊이질 않고 있다. 스토리는 대략 이러하다. 1964년, “도쿄 올림픽 같이 볼래요?”라는 프로포즈로 결혼에 성공한 조부모가 흑백 화면을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태어났다. 배경은 현대로 바뀌어, 아버지 자식 세대의 커플이 등장한다. ‘돈 없다’고 노래를 부르던 친구도, ‘혼자가 편하다’고 손사래 치던 친구도 결국 결혼해 자식을 낳고 즐겁게 산다. 조부모는 두 번째 도쿄 올림픽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를 바라보며 ‘그리고 우리도...’ 라며 커플은 결혼을 결심한다. 대미는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지사의 낭랑한 내레이션이 장식한다. “2020년 도쿄올림픽, 당신은 누구와 함께 볼 건가요?”

‘결혼 분위기 조성을 위한 동영상’의 전반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함께 보자는 프로포즈로 조부모가 결혼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영상 캡쳐>
‘결혼 분위기 조성을 위한 동영상’의 후반부. 결혼을 망설이던 커플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결혼을 결심한다. <동영상 캡쳐>

이를 본 미혼남녀들은 각종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촌스럽다’, ‘3000만 엔이나 예산을 들여서 만들 필요가 있나’, ‘결혼을 강요당하는 것 같아 불쾌하다’, ‘세금 들여 이런 영상 만들기 전에 안심하고 결혼할 수 있는 경제 정책을 마련해야’ 등의 의견이 주를 이뤘다. 자신 역시 독신인 고이케 지사는 2월 2일 기자회견에서 동영상을 공개하며 “결혼 할지 말지는 자유이며, 자신의 인생관에 근거해 결정하는 것”이지만, “9할의 젊은이들이 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나서지 못하고 있다. 결혼을 원하는 분들의 내일을 향한 일보 전진을 응원하고 싶다”며 영상의 제작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

한편 ‘올림픽’이라고 하는 사실상 국가 주도의 초대형 이벤트를 계기로 결혼을 결심할만한 ‘애국적’인 젊은이들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꼬리를 잇는다. 분명 1964년 도쿄 올림픽은 패전의 늪에 빠져있던 국민이 하나로 힘을 합쳐 국가 재건에 성공했음을 만방에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반세기 이상이 흐른 지금,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애국심 보다는 스포츠를 즐기는 차원에서 올림픽을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다시 말해 홍보 영상의 ‘국가주의적’ 요소에 거부 반응을 느끼는 이들이 대다수이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기념하여 조성된 고마자와(駒沢) 올림픽 공원의 현재 모습. 봄을 맞아 가족단위의 나들이객이 눈에 띈다. <사진=최지희 기자>

이달 2일 열린 도의회에서 고이케 지사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자민당의 시바자키 미키오(柴崎幹男) 의원이 “다양한 삶을 선택하는 지금 시대에 왜 이런 사업을 시행하느냐”며 동영상 제작을 비난하고 나섰다. “행정부가 결혼을 강요하지 말라는 도민의 비판이 커지고 있다”는 연이은 지적에 대해 고이케 지사는 “응원도 중요하다. 국가도 (결혼) 분위기 조성 예산에 20억 엔 정도를 책정하고 있다”고 반론하며 “개인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충분히 배려하며 진행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결혼율 및 출산율은 경제 구조 자체의 변화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보편적이다. ‘곤카츠(婚活, 결혼활동의 준말)’, ‘파라사이트 싱글(Parasite single, 경제적으로 부모와 독립하지 못한 자녀)’ 등의 유행어를 낳은 사회학자 야마다 마사히로 교수(山田昌弘)는 “결국 일본에서도 남성의 고용격차 확대가 현상의 근본 원인”이라며 이유를 짚었다. “파견직・비정규직・일용직의 증가에 따라 수입이 높고 생활이 안정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로 점차 양분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고용 안정이야말로 결혼과 가장 직결된 문제임을 강조했다. 결혼장려동영상의 ‘돈 없다고 노래를 부르던 사람도 결혼하면 행복하게 산다’는 식의 시대착오적 설득이 일본의 청춘을 뿔나게 한 것이 쉬이 납득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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