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정체성의 이유는 'Localization'이었다"

<디자인=김승종기자>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미국의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으로 출발해 전세계에 지사를 보유한 막강한 IT 글로벌 기업들로 전세계 사용자들 누구나 이들 기업이 미국에 뿌리를 둔 미국 기업이라는데 의구심을 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국민메신저라고 불리는 라인은 어느나라 기업일까?

라인은 7월 15일 미국과 일본 동시상장을 앞두고 있다. 라인이 모바일 메신저 사업을 본격 시작한지 5년 만이자 해외상장을 추진한 지 2년만의 일로 총 공모금액은 약 1조 1000억원 정도로 상장시 시가총액은 약 6000억엔(약 6조 5000억원)에 달한다. 올 들어 가장 큰 규모의 기업공개(IPO)이기도 하다. 

또한 라인은 일본의 국민메신저로 불리우는 만큼 일본내 시장점유율은 70%에 육박하고, 일본 국민 40%정도가 거의 매일 라인을 사용한다. 이렇듯 큰 규모의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라인의 정체성은 모호하다.

특히, 일본에서 라인 이용자들의 대부분은 일본 기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이 라인을 통해 서로 안부를 확인하면서 라인의 존재감이 부각된 것이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일본의 언론매체들도 '일본태생의 인터넷 서비스'라고 보도하길 꺼려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같은 보도에 힘입어 다양한 억측과 추측이 난무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모회사는 한국이지만 응용프로그램이 개발된 것은 일본이다", "개발팀을 지탱하고 있는 것도 前라이브도어의 엔지니어다", "라인은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만들어진 서비스다" 등등이다.

게다가, 브라운, 코니, 초코, 샐리, 문, 제임스 등 라인의 인기 캐릭터들은 한국인 디자이너 강병목씨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라인 사용자 대부분은 '메이드 인 재팬'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7월 2일 발매된 일본의 후소샤신서의 '한류경영 LINE(인터넷경제매체 NewsPicks취재반 著)'에 의미심장한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세계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라인'이 일본 태생이라는 이야기는 일본인에게는 매우 듣기 좋은 말일 것이다. 따라서 니혼게이자이신문을 비롯한 주요 언론도 '순수일본製', '일본發'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해 라인을 소개해왔다. 특히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등 미국 태생 서비스가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IT업계에서 자신의 나라에 이런 좋은 서비스가 태어난다면 일본인으로서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일본 사회나 국민들은 라인이라는 글로벌한 서비스가 한국 태생이라는 것을 애써 외면하려는 정서가 깔려있다.

과거, 기자 또한 좋은 일본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두고 "왜 한국에서는 이런 것을 못 만들까" 혹은 "한국 제품이나 서비스라면 좋을텐데"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국수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같은 모호한 정체성의 꽃은 달리 피어난게 아니다. 철저한 네이버의 현지화 전략에 있다.  

일본은 한국 기업들의 무덤이나 다름없는 시장이다. 특히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IT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일본 소비자들의 충성도는 남다르기로 유명해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에게도 LG전자에게도 일본은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이러한 일본 내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 의장과 신중호 라인 최고글로벌경영자(CGO)가 펼친 전략은 영리(?)하게도 라인의 진짜 뿌리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감추는 것이었다. 

일본의 모바일시장은 큰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독자적으로 발전해왔다. 훌륭한 개발자가 많았지만 글로벌 소프트웨어 제품에 매달릴 만큼 절박하지 않았던 셈이다. 한국에서 카카오톡 등 새 모바일 메신저가 나올 때도 일본은 무주공산이었다. 

이 의장과 신 CGO는 이러한 일본 시장을 간파하고 '일본의 자본과 한국의 값싼 노동력' 이라는 기존의 상식을 파괴해 좁은 국내 시장 때문에 글로벌 트랜드와 신규 서비스에 민감했던 뛰어난 한국적 기획력과 자본으로 일본 인재를 현지 채용해 제품을 개발하는 방식을 취했다. 즉, 라인은 기존 한국 기업들이 생각해왔던 ‘현지화’에서 몇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서비스로 우리가 진출한다’가 아닌 ‘같이 연구하고 같이 만들어간다’는 모델을 확립한 것이다.

실제 라인은 일본 법인에서 개발됐다. 네이버가 일본에 세운 법인이 개발했지만 엄밀히 보면 일본 라인 작품이다. 네이버 입장에서 중요 플랫폼의 개발을 일본에 맡긴 셈이다.  

대표적으로 당초 일본 내 개발진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라인을 기획했다. 그러나 2011년에 동일본 대지진으로 통신 환경이 나빠져 현지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자, 개발진은 이를 보고 SNS 대신 모바일 메신저로 다가서기로 방향을 바꿨다. 

지진으로 전화 연결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빈번한 일본에선 중요한 순간 온라인 기반 모바일 메신저의 필요성이 클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는 일본 현지인이 아니면 접목해 낼 수 없는 결과물이다. 결국 자국 중심주의가 강하던 일본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으며 일본시장에 무리 없이 뿌리 내렸다. 자국 중심주의가 강한 일본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물론, 이같은 현지화 전략이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은 아니다. 성공했던 한국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가져다가 현지에 맞게 변형하는데 그쳤던 과거의 현지화 전략을 정면에서 타파하고자 노력했던 결과다. 

라인의 모태인 네이버재팬이 일본에 진출한 것은 2000년 9월의 일로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이다. 이후 네이버재팬은 2003년 한게임재팬과 NHN재팬으로 합병통합했지만 해외 시장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2005년 검색서비스를 중단하고 네이버재팬 사이트를 폐쇄하기도 했다.

이후 네이버재팬은 2007년, NHN재팬의 출자를 받아 재설립 된 후, 2011년 6월에야 비로서 모바일 메신저인 '라인(LINE)'을 출시하며 새로운 도전을 알렸다. '라인'은 출시 이후 일본 시장에서 ‘국민 메신저’로 자리 잡으며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그 바탕에는 무늬만 현지화라는 과거의 실패를 경험삼아 진정한 의미의 현지화를 실현한 네이버의 숨겨진 전략이 숨어 있는 것이다.

라인은 2013.07.21글로벌 2억 가입자를 돌파했다. <이미지출처=라인 홈페이지>

2011년 6월 출시된 라인은 MAU 1억명 달성에 26개월이 걸렸다. 이는 라인이 경쟁 상대로 꼽고 있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MAU 1억명을 돌파하는데 걸린 시간의 절반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페이스북의 경우 MAU 1억명 달성에 56개월이 걸렸고, 트위터는 67개월이 소요됐다. 라인의 성장 속도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보다 2배 이상 빠른 셈이다.

한국에서는 "카톡한다"라는 말과 같이 일본에서는 "라인한다"가 똑같은 의미로 취급되고 있다. 대다수의 일본 사용자들이 일본 태생의 서비스로 믿고 있는 '라인'. 그 뿌리에는 철저한 'Localization'이 있다.

저작권자 © 프레스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Tag키워드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