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 창시자 '안도 모모후쿠'

얼큰한 자라육수 컵라면 하실까요?

왼쪽부터 자라맛 컵라면, 닛신의 대표 컵라면, 최초의 인스턴트라면인 치킨라면/김정욱 특파원

최근 닛신에서 “자라 컵라면”이 등장했다. 스테미너 음식으로 알려진 자라로 육수를 우려낸 스프가 들어간 컵라면이다. 이뿐 아니라 상어지느러미 맛, 태국 전통음식인 똠양꿍 컵라면 등 종류가 다양하다. 일본인 친구들과 만나 술 한잔 하고 입가심은 언제나 라면으로 마무리한다.

이처럼 라면은 일본인들에게 떼놓을 수 없는 생필품이다.

라면의 종주국은 중국이지만 인스턴트라면의 종주국은 일본으로 개발자인 대만 출신 안도 모모후쿠(1910~2007)의 성공 스토리는 50대 중반에 회사를 그만 두고 사회생활을 접어야 하는 대한민국 현실에 내몰린 은퇴자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스토리다.

오사카 라면 뮤지엄에 있는 닛신라면 자판기/김정욱특파원

대만에서 건너와 여러 가지 사업을 하던 안도 씨는 신용조합 이사장에 취임하지만 1957년 자금난으로 도산하게 된다. 모든 것을 다 잃고 오로지 전세집밖에 없던 그는 라면을 개발하기로 마음먹고 1년 넘게 연구를 들어간다.어느 날 아내가 튀김 만드는 것을 보고 면을 기름에 튀겨 건조시키는 “순간유열 건조법”을 개발해 “치킨라면”을 만들며 닛신식품을 세우게 된다. 그의 나이 48세 때다. 이후 수출을 위해 유럽과 미국 출장 길에 올라 바이어가 치킨라면을 종이컵에 부어 포크로 먹는 장면을 보고 컵라면을 개발하게 된다. 56세 때 세계 최초로 컵라면을 개발하는 순간이다.

안도씨는 자택 마당 창고에서 인스턴트 라면을 1년간 연구해 치킨라면을 완성했다.(오사카 라면 뮤지엄)/김정욱특파원

재미있는 사실은 이때까지만 해도 널리 알려지지 못해 매출이 크지 않았으나 1972년 2월 “연합적군조직의 인질사건” TV중계방송에서 출동한 기동대원들이 한겨울 추운 산속에서 범인들과 대치한 가운데 김이 모락거리는 따뜻한 컵라면을 먹는 모습이 텔레비전 카메라에 비쳐지면서 시창자들로부터 문의가 쇄도했고 이후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사건 전 1971년 컵라면 매출이 2억 엔에 불과했으나 사건이 일어난 1972년 33배 성장한 67억 엔의 매출을 올렸다. 그의 나이 62세 때의 얘기다.

2007년 96세로 생을 마감한 그는 사망 3일 전에도 간부직원들과 골프 18홀을 돌며 행복한 노후를 즐겼다.

장수 비결을 묻는 언론의 질문에 “주2회 골프와 매일 점심으로 먹는 치킨라면이 장수의 비결”이라며 자신이 개발한 라면에 자부심을 가졌다.

40대 후반 창업, 60대 대박을 이뤄 96세까지 행복한 일생을 살아온 그의 인생 여정을 볼 때 회사 퇴직은 지금까지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 후반전”을 시작하는 진짜 인생의 시작임을 안도 모모후쿠를 보며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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