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등의 통화정책보다 규제완화·개혁 등 종합적인 경제정책 운영 필요

<디자인=김승종기자 /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일본은행이 1월 29일 '마이너스금리'이라는 새로운 금융정책을 시행한지 4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아베노믹스의 결정판이라고도 할 이 정책은 엔화약세를 유도하고 주가부양을 통해 침체되어 있는 경기를 부양시키겠다는 일본 정부의 의도가 담겨있다. 하지만 이같은 의도와는 달리 엔화는 연일 강세를 나타내고 이에 따른 수출기업 채산성 악화 우려로 주가의 하락세는 멈출 줄을 모른다.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도 불구하고 경기는 좋아질 기미가 안보이는데 왜 일본은행은 이같은 정책을 도입했을까?

마이너스 금리 정책 도입의 목적은 일본의 모든 금리를 내리도록 유도해 돈을 쓰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 경제에 활력을 주고자 함이다.

예를 들어 금리가 크게 떨어지면 집이나 차를 사고 싶을때 대출받기 쉬워진다. 사업을 시작할때에도 은행의 대출 문턱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돈을 사용할 기회가 늘어나면 물가도 자연스럽게 올라 일본은행이 목표로 하는 디플레이션 탈피에 도움이 된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구체적으로 시중은행이 일본은행에 맡긴 돈에 이자를 지급하는 대신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금융상식으로는 은행에 돈을 예치하면 이자를 받지만 마이너스 금리 상태에서는 오히려 그 만큼의 이자를 수수료로 지불해햐 하는 것이다.

이렇듯 은행은 남은 돈을 일본은행에 맡기면 금리를 빼앗겨 버리므로 금리를 내려서라도 돈을 빌려주거나 국채를 사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금리 전체가 내려가게 된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은행은 예금과 대출의 증감으로 인해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돈의 과부족을 조정하기 위해 하루 혹은 수일 동안의 짧은 기간에 돈을 빌리거나 갚기도 하는데 이럴때 적용되는 금리가 개인이나 기업에 돈을 빌려주거나 국채등을 운용할 때 기준이 된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영향으로 단기 거래의 금리가 낮아지므로 수개월 혹은 수년 단위의 금리도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일본은행은 밝히고 있지 않지만, 마이너스 금리 정책 도입 목적은 엔화 약세 촉구 효과에 있다.

엔화 약세가 진행되면 일본이 수입하는 제품이나 소재의 엔 환산 구매 가격이 올라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자동차와 전기 등을 수출하는 기업에게는 엔화 약세가 되면 실적개선으로 이어진다. 엔화 약세를 통해 경기와 물가를 끌어 올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있는 것이다.

이렇듯 좋은 일 투성이로 보이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지만 악영향도 있다. 

은행 등의 경영이다. 은행은 예금과 대출의 금리차(마진)가 수익의 기둥이다. 하지만 금리가 전체적으로 크게 떨어지면 이윤이 줄어들어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은행은 예금 등으로 모은 돈을 기업의 생산과 가계 소비 등 경제 활동으로 흘려 보내는 중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만일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영향으로 은행 경영이 흔들리는 상황이 되면 실물 경제가 돌지 않게 돼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얄궂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개인의 소비심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것은 비단 일본 뿐만이 아니다. 덴마크 등 유럽에서 먼저 채용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물가를 끌어올릴 목적으로 도입을 완료한 상태다. 하지만 은행 경영에 대한 불안감도 팽배해 있어 마이너스 정책 효과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그렇다면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한 1월 이후 실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실생활에서는 플러스와 마이너스, 두가지 영향이 모두 나오고 있다.

우선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혜택은 집이나 자동차 등을 구입할 때 이용하는 대출 금리의 하락이다. 미쓰비시도쿄UFJ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10년 고정금리(최고우대요금)가 마이너스 금리 정책 도입 전, 연 1.1 %에서 0.9%까지 떨어졌다.

기업의 자금 조달 금리도 내려가고 있다. 도요타 파이낸스가 4월에 발행한 3년채 이율은 연 0.02%로 일본기업 사채 발행 역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기업 어음(CP)등 단기증권 발행 시장에서는 마이너스로 조달한 사례도 생겨났다. 돈을 빌리는데 이자도 받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한편, 자금 운용면에서는 부정적인 영향도 감지되고 있다. 미쓰비시도쿄UFJ 은행은 마이너스 금리 정책 이후 정기예금(기간 1년)금리를 0.025%에서 0.01%로 낮췄다. 100만엔을 1년간 맡겨도 이자(세전)은 100엔 짜리 동전 1개라는 이야기다. 다른 은행들도 일제히 금리를 인하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되는 것은 금융기관이 일본은행에 맡기는 돈의 일부분으로 개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지만 개인의 예금까지도 한없이 제로 %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예금 이자로 생활비의 일부분을 충당해왔던 연금 생활자들로부터 불만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이유다.

국채 수익률도 하락을 계속하고 있다. 은행은 일본은행에 돈을 맡겨두면 마이너스 금리로 돈이 줄어들기 때문에 국채를 사들여 더 낮은 이율로 판매하는 거래를 반복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10년 만기 국채의 수익률은 이미 마이너스가 됐다. 단 개인용 국채는 연 0.05%(세전)의 최저금리가 남아있어 오히려 인기를 끄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국내 예금이나 국채에 만족한 수익을 얻지 못해 해외 채권에 투자하는 사람도 늘었다. 재무부 통계에 따르면 3월 해외 중장기 채권 순매수 금액은 5조2000억엔으로 1월 대비 약 15배나 급증했다.

일본은행의 구로다 총재는 3월 기자 회견에서 마이너스 금리 정책에 대해 "모기지 금리와 대출 기준 금리가 하락하고 있어 금리면에서 정책 효과가 나타나고 있으며 향후 실물 경제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순조롭게 금리가 떨어지고 돈을 빌리기 쉽게 됐다는 인식을 나타냈지만 예상치 못한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첫째는 주택 담보 대출이다. 금리는 확실히 떨어졌지만 메가 뱅크 등 5대 시중은행의 3월 신규 신청 건수는 약 4만 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20%밖에 늘지 않았다. 한편, 더 낮은 금리로 차환하는 대출은 약 2만 건에 달해 전년 동월 대비 3.7배나 급증했다. 즉,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해도 신규로 주택을 구입하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는 뜻이다.

두번째로 중소기업 대출이다. 은행은 기업에 돈을 빌려줄 때 단기 프라임레이트라는 금리를 기준으로 한다. 은행이 재무 내용이나 실적이 좋은 중소기업에 돈을 빌려줄때 기준이 되는 금리이지만, 마이너스 금리정책 도입 후에도 기간 1년 미만의 단기 프라임레이트 조차 연 1.475%에서 더 낮아지지 않았다. 은행이 수익의 원천인 이자수입이 쪼그라드는 것을 꺼려해 금리를 내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의욕있는 중소기업이 돈을 빌려 신규 투자에 자금을 쓰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 메가뱅크의 CEO는 "돈을 빌릴 수 없는 문제보다 일이 늘어나지 않는 것이 더욱 고민이다. 대출금리가 아무리 내려가도 신규 투자를 할 곳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며 푸념섞인 목소리를 토해냈다.

많은 사람들이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투자와 소비가 활발해지고 물가도 완만하게 상승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경제는 작년 10~12월기에 마이너스 성장에 빠진 이후 소비·투자 모두 막혀있는 상황이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 뿐만 아니라 정부와 일본은행이 일체가 되어 규제완화와 구조개혁을 포함한 종합적인 경제정책운영을 진행하지 않는다면 구로다 총재가 주장하는 '금리 인하 효과가 실물경제와 물가상승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는 신기루일 뿐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도 '한국판 양적완화' 정책 도입 등 정부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하지만, 금리 등 통화정책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더 큰 위기에 봉착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지금은 일본경제와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반면교사 삼아 지금 한국경제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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