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D 고집 샤프, 결국 홍하이그룹 산하로

<디자인=김승종 기자 / 이미지출처=Getty Image Bank>

'종합' 간판 뗀 히타치 제작소, 실적 고공행진
소니, TV사업 축소·PC 매각…올 흑자 기대

일본 전자업계의 자존심인 104년 역사의 샤프가 30일 오랜 협상끝에 드디어 대만의 훙하이정밀공업(鴻海)에 팔렸다. 이튿날인 31일 오전에는 경영재건 중인 도시바가 백색가전 사업을 중국의 가전업체 메이디(美的)에 매각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20세기 세계 전자기기 시장의 절대 강자이며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일본의 전자기업들이 하나 둘씩 외국기업에 매각되거나 사업부문이 해체 되는 등 일본 전자업체의 몰락이 이어지고 있다.

한때 전세계를 석권하던 일본의 전자업체들이 이렇게 까지 추락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과거의 영광에 얽매여 변화에 편승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전자기기의 특성 상 '혁신'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지만, 일본 전자업체들에게 더이상 '혁신성'을 기대할 수 없다"

20세기 일본의 전자업체들은 워크맨(1979년), 노트북(1985년), DVD플레이어(1996년) 등 혁신적인 제품을 잇따라 선보이며 세계 시장을 선도해왔다. 

그러나 2000년대 들면서 기술력과 원가 면에서 경쟁력을 높인 삼성전자 등 아시아 업체들에 밀리기 시작했고 2008년 가을 리먼 쇼크 이후에는 많은 전자업체들이 거액의 적자에 빠져 위기에 봉착했다. 

이후, 혹독한 구조조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변화에 편승하지 못한 샤프, 도시바 등은 결국 외국기업에 매각되는 등 수모를 겪고 있다. 그렇다면 다시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는 없는 것일까?

그 해답은 오히려 일본 내부에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변화를 받아들이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치밀한 구조조정에 성공한 히타치. 히타치는 2008회계연도에 일본 제조업계 사상 최대 규모인 7,800억엔의 적자를 냈다. 적자를 감수하고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종합'이라는 간판에 매달리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의 삼성전자 등 선두 업체에 밀린 반도체, 디스플레이, PC, TV사업 등을 줄줄이 정리했다. 정보기술(IT) 시스템과 전력 등 사회 인프라 구축사업에 전문화된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서였다. 2013회계연도(2013년 4월~2014년 3월)와 2014회계연도 연속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낸 히타치는 2015회계연도에도 사상 최대 규모인 6800억엔의 영업이익을 예상하고 있다.

미쓰비시전기는 2014회계연도에 매출 영업이익 순이익 모두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미쓰비시는 좀 더 일찍 구조조정에 나섰다. 2003년 반도체사업에 이어 2008년엔 휴대폰사업을 접었다.

이후 산업기기와 산업용 전자제품, 가전으로 ‘3각 편대’를 구성했다. 최근 효자사업은 공장자동화(FA) 설비가 속한 산업기기 부문이다. 2014회계연도에 10% 이상 영업이익률을 내며 전체 영업이익(3,176억엔) 중 절반(1,459억엔)을 이 부문이 차지했다.

파나소닉도 간판이었던 플라즈마 TV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자동차와 주택 관련 사업 등에 주력하며 부활을 서두르고 있다. 2015회계연도에는 지난해 대비 13% 증가한 4300억엔의 영업이익을 예상하고 있다.

일본 전자업계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소니도 실적 부진의 터널을 벗어나고 있다. 2014회계연도에 영업이익이 685억엔으로 159% 증가한 소니는 2015회계연도에 1,400억엔의 당기순이익을 올리며 3년 만에 흑자전환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TV 사업을 축소하고 PC 사업을 매각하는 등 전자부문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서 수익성 개선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2014년에 TV 인력 감축, 스마트폰 관련 손실 등에 들어간 3,300억엔 규모의 구조조정 비용도 지난해에는 450억엔으로 줄어들었다.

구조조정기를 끝내고 성장궤도에 재진입한 후지쓰, NEC 등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20% 이상 증가했다. 

과거 일본에는 동일한 제품 라인업을 보유한 종합전자 메이커가 너무 많았다. 좁은 일본 시장내에서 다수의 종합전자기업이 동일한 제품으로 제살깍아 먹기식의 경쟁을 벌인 결과, 오히려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 것이다. 이들 '종합'전자기업들이 각각 경쟁력이나 수익성이 낮은 사업부문을 매각함으로써 독자색을 띈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IT시스템과 전력 등 사회 인프라 사업에 전문화한 히타치, 주택 설비나 국내가전에 특화한 파나소닉 등 '종합'이라는 간판을 내리고 자신의 강점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기업들이 경영개선 효과도 뚜렷하다.

이제는 전자기기 제조업체가 종합전자 메이커가 아닌 시대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전자업체가 과거의 영광을 되돌릴 수 있는 필요조건인 셈이다.

구 산요전기의 하이얼 아시아, 홍하이그룹 산하에 들어가는 샤프, 백색가전사업을 중국 메이더에 매각하는 도시바 등을 바라보며 더이상 한탄을 할 필요는 없다. 

경제 활동의 글로벌화가 진행되어 부품의 국제조달과 기업 간 연계가 당연하게 된 오늘, 수직 통합의 잔재인 종합전자기업은 핵심역량 부족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전자나 전기 등의 모든 사업부문에 핵심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면서 전분야를 망라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상품 진열대식의 '종합' 전자기업에서 벗어나는 것이 부활의 첫발을 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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