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 디자인=김승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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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뱅크가 연립ㆍ다세대 주택 시세 파악에 부동산 가치 자동산정시스템(AVM)을 도입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정부와 전문가, 감정평가업계가 한 목소리로 우려의 시각을 내비쳤다.

AVM이 감정평가사 영역을 침범할 수 있고 감정평가업무를 대체하기엔 관련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주요 골자다. 최악의 경우 프롭테크 스타트업 '빅밸류'의 사례처럼 카카오뱅크가 감정평가업계로부터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카카오뱅크는 20일부터 비대면 주택담보대출 취급 대상 범위를 기존 아파트에서 연립ㆍ다세대 주택까지 확대 시행했다. 대화형 인터페이스로 구성된 챗봇을 활용해 100% 비대면으로 서류 제출부터 대출 심사, 실행까지 가능도록 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AVM이 감정평가업무를 일부 대체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인공지능(AI) 기능에 필수적인 빅데이터 자체가 유효하게 구축되지 못한 상황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AVM은 단순히 부동산 매물 유무나 실거래가 정보뿐만 아니라 인근 시세와 유사 매물 거래 데이터를 AI가 조합, 부동산 추정가격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문제는 현재 정부가 공개한 공공데이터가 부동산 가격이 아니라 부동산의 현황(위치, 지목, 면적, 용도지역 등) 위주라는 데 있다. 그마저도 건축 당시 설계도와 완전히 달라진 실제 이용 현황 등까지 파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불법적으로 해당 부동산을 증축하거나 개축한 경우, 이를 인간이 사전에 따로 반영하지 않으면 AVM이 잡아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AVM이 참고할 수 있는 가격 관련 데이터도 공시가격과 실거래가격이 전부인데 이 역시 '정보의 비대칭성'을 기반으로 하는 부동산 시장의 특성상 늘 '정상 가격'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실제로 관련 서비스를 직접 입력해봤지만 감정평가를 받는 일이 쉽지 않았다. 건축 10년여가 된 서울 은평구 지역 다세대주택 담보가치 평가를 신청했지만 시세확인이 불가능했다. 심지어 입주한지 4년여가 된 경기 모지역의 아파트조차 시세를 확인할 수 없었다. 카카오뱅크 챗봇에 주소를 입력하면 '아쉽지만 해당 주택의 시세를 확인할 정보가 부족해 주택담보대출 신청이 어렵습니다'는 멘트가 뜬다. 두 곳 모두 KB부동산앱인 리브 부동산에서는 실거래가 확인이 가능한 곳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립과 다세대주택 현황을 보면 정부 통계에 잡히지 않는 무허가 건축물이나 구옥 등이 많다"며 "AVM을 쓰는 목적 자체가 기본적으로 인건비 등의 비용을 줄이려는 것인데, 불분명한 데이터를 쓰게 되면 오히려 비용이 배로 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현 시점에서 AVM 활용도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더 큰 문제는 업계 고유 영역 침범 논란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감정평가업계에서 AVM이 업계의 고유한 업무 영역을 침해하고 있다고 보는 상황은 맞다"면서 "실제로 한국감정평가사협회에서 유사 감정평가 행위 논란으로 빅밸류에 소송을 제기한 적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당시 협회에서 고소를 진행한 배경은 빅밸류 AVM이 적용한 시세를 은행권 담보대출 평가 자료로 활용됐기 때문인데 이 행위가 관련 법령에서 금지하는 ‘유사 감정평가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서 2015년 빅밸류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 시세를 평가하는 서비스를 제공한 바 있다. 이는 은행권 대출 평가 자료로도 활용됐다. 이에 대해 감정평가사협회는 감정평가법이 금지한 유사 감정평가 행위에 해당한다며 검찰에 빅밸류를 고발했다. 빅밸류가 사용한 실거래가 기반 시세 산정은 정확도가 떨어져 대출 부실을 유발할 수 있는 유사 감정행위에 해당한다는 게 협회 측 주장이다.

이는 1년여 간의 조사를 진행한 끝에 수사기관 선에서 ‘혐의 없음’으로 종결됐다. 그러나 이에 불응한 감정평가사협회가 2021년 10월 검찰에 항고, 재수사를 요구했다. 이후 지난 3월 검찰의 불기소 처분으로 종료됐지만 여전히 소송 불씨는 남아 있다.

감정평가업계의 관계자는 "AVM은 태생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법적 책임을 누가 지느냐’에 따른 리스크가 존재한다"며 "연립ㆍ다세대주택의 경우 등록 내용과 실제 거래 현황이 불일치한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불법 증축ㆍ개축 등으로 공식적으로 기록된(공부상) 지적도나 설계도와 내부 구조가 다른 경우도 종종 있다"면서 "이를 기계적으로 일괄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훈 박사(수원대학교 건축도시부동산학부 객원교수)는 "AVM 성능은 데이터의 순도에 따라 좌지우지된다"고 진단하며 "대부분의 AVM은 정부에서 제공하는 개방형 공공데이터를 활용하고 있지만, 이 데이터 대부분이 시장 왜곡 등의 '노이즈'를 제거하지 않은 '로우 데이터'"라고 지적했다. 데이터의 순도, 퀄리티에 따라 AVM 모델이 산출한 결과값의 정확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박사는 "무엇보다 실거래가 왜곡 등으로 오염된 데이터가 만연한 상황에서 AVM 결과를 그대로 믿고 의사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면서 "미국에서는 AVM이 도출한 결과값을 그대로 쓰지 않고 감정평가사가 검토한 후 가치의견이 들어간 경우 감정평가에 준하는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선 감정평가사 등 평가주체들이 각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감정평가사 관계자는 "AVM의 본격적인 영역 확장에 앞서 금융안전성과 책임소재가 확보 돼야 업계 관계자들의 부정적인 인식도 점진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며 "평가 주체들이 소극적으로 시장 위축을 두려워하기보다 부동산 가치평가 전문가로서 자신의 전문성을 토대로 AVM을 하나의 유용한 평가 도구로서 활용하며 시장 경쟁력을 키워나가면 좋겠다"고 의견을 표했다.

이 박사는 "AVM이 평가업계의 시장을 일부 잠식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AVM을 기반으로 업무 효율성을 높이면 감정평가사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면서 "AVM이 활용할 실거래 데이터를 정제하는 과정과 이후 AVM이 도출한 결과값을 검토하는 과정 등에서 감정평가사의 역할을 제도화하는 등 관련 법령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프레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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