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 디자인=김승종기자 ⓒ프레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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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어느날 금융감독기구 소속 모 고위 임원과 만찬을 했을 때다.

임원과 저녁 자리에서 나눈 대화의 주제는 돌고 돌아 삼성생명 요양병원 암환자 입원비 미지급 논란으로 좁혀졌다.

당시 금융당국은 삼성생명과 암보험 요양병원 입원비 지급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금융당국은 '보험금 전부 지급'을 요구했고 삼성생명은 약관을 들어 지급을 거절했다. 

삼성생명 약관에는 암의 직접치료에 한해 입원비 등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요양병원 입원자는 직접 치료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요지다. 

금융당국은 외로운 싸움을 펼쳤다. 기업과 일부 언론에서는 금융당국이 민간기업을 길들이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 때 자리에 함께 동석한 선배도 금융당국이 민간회사를 너무 옥죄는 것이 아니냐며 모 임원에게 핀잔 아닌 핀잔을 줬다. 

그러자 모 임원이 한 말이 지금도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언론에 계신 분들은 상대적으로 기업들보다 갑의 위치에 있지 않습니까. 만약 기자께서 은퇴 후에 암에 걸려 가입한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때 가입한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소송을 건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그리고 그땐 과연 누구의 편에 서시겠습니까."

요양병원 암환자 보험금 미지급 논란은 어떤 결론을 냈을까. 합의는 했지만 승자는 없었다. 

삼성생명은 요양병원에 입원한 암환자들에게 끝내 약관에 의거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대신 보험금이 아닌 위로금으로 수위를 낮추고 불법 점거 등 농성에 따른 소송 취하 등을 내걸어 암 환자들과 합의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삼성생명 측은 "위로금을 준 일 은 없었다"면서 "다만 양측 간의 합의 내용에서 서로의 계약 조건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합의와 무관하게 삼성생명은 지난 2월 4일 금융당국으로부터 과징금과 기관경고 중징계를 맞았다. 삼성생명은 중징계 결정에 대해 항소할 수 있었지만 포기했다. 금융당국의 징계가 확정되면 결과서를 받는 날로부터 1년간 금융당국의 인허가가 필요한 신사업에 진출할 수 없다. 자회사 인수도 어렵다. 삼성생명이 중징계 리스트에 이름이 올려져 있는 기간은 내년 2월 초까지다.

삼성생명 입장에서 보면 요양병원 암환자 입원비 지급을 벌금ㆍ중징계와 맞바꾼 셈이다. 애초에 삼성생명이 금융당국 요구대로 '보험금 전부 지급'을 약속했다면 굳이 금융당국이 삼성생명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지 않았을 터다. 

금융당국은 요양병원 입원비 갈등이 시작된 이후 2015년 1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암 보험금이 청구된 1800만건을 전수 조사했다. 이중 의료 자문을 거치지 않고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400건 이상을 적발했다.

과징금ㆍ중징계 결정은 이번 전수조사를 통해 확정된 것이다.

어쨌든 세간을 이목을 집중시킨 금융당국과 삼성생명의 기싸움은 이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다시 현재 시점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삼성생명이 올해 1분기 충격적인 성적표를 냈다. 이 기간 당기순이익 267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무려 75.2% 쪼그라들었다. 영업이익도 75.7% 폭락한 3238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생명 측은 이를 두고 삼성전자 특별배당에 따른 기저효과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8.51%를 보유 중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주당 1587원의 특별배당을 실시해 6470억원의 배당수익을 챙겼다. 그런데 올해는 삼성전자가 배당을 하지 않아 특별이익이 사라지면서 수익이 대폭 감소했다. 

주가 하락도 영향을 미쳤다. 주식 하락으로 변액보증준비금 손실이 커졌다. 생명보험사가 판매하는 변액보험은 상품 특성상 증시 움직임에 따라 변액보험보증준비금도 달라진다. 증시가 오르면 준비금은 환입되고 하락하면 준비금을 더 적립해야 한다. 삼성생명의 1분기 변액보증손실금은 1770억원에 달했다. 삼성전자 특별배당을 제외하더라도 주가 하락에 따른 순이익이 전년대비 40%가량 떨어졌다.

삼성생명의 실적 추락으로 보험업계 순위도 뒤바뀌었다. 삼성생명은 수십년 연속 생보사 1위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보유한 기업이다. 그런데 올해 1분기엔 1위 자리를 교보생명(2797억원)에 내줬다. 

올해 상황도 녹록지 않다. 삼성생명이 새로운 성장 기회로 삼은 서비스가 '모니모'다. 모니모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ㆍ증권ㆍ카드 등 삼성금융계열 서비스를 한번에 이용할 수 있는 통합앱이다. 빅테크의 성장 등 급변하는 금융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달 14일 삼성금융 계열사가 승부수를 띄우기 위해 론칭한 서비스다.

삼성생명은 모니모를 통해 삼성금융 타계열사간 미가입 고객이 자사로 유입될 것이라며 적잖은 기대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앱 론칭 나흘만에 수백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모니모 서비스가 시장 기대치에 이르지 못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엔 삼성생명의 중징계가 지대한 영향을 줬다. 삼성카드가 주도한 모니모는 서비스의 중요 항목인 결제 기능을 탑재하지 못했다. 다른 주요 카드사가 결제서비스로 무장한 것과 비교된다. 이는 삼성카드 대주주인 삼성생명이 금감원 중징계 결정을 통보받으면서 마이데이터 라이선스를 취득하지 못한 까닭이다. 

암 환자들은 결국 합의를 이뤘고 당시 삼성생명을 겨냥한 금융당국 수장도 임기 만료로 교체된 상태다. 그런데 삼성생명의 중징계는 이제 시작이다. 

다시 결론을 내보면 진정한 패자는 삼성생명이 아니었을까.

이번 사건에 대한 시사점도 있다. 바로 명분이다. 보험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가입하는 상품이다. 그런데 가장 힘든 시기에 왔을 때 도움은 커녕 오히려 보험금을 외면한 채 소송전을 펼친다면 애초에 보험상품이 존재할 의미가 없다.

삼성생명 요양병원 암환자 입원비 미지급 논란 초기엔 비판의 활은 금융당국을 향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금융당국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찾기 힘들어졌다. 금융당국은 사회적 약자 편에 섰고 이는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삼성생명은 2020년(1919건), 2021년(1553건) 연속 분쟁건수 1위를 기록했다. 삼성생명이 다시 생보사의 맏형을 자처하기 위해선 이런 분쟁건수를 최소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 미국에 3조원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짓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국내에는 향후 5년간 45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한 축을 맡는 삼성생명은 이번 투자 부문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 있을까. [프레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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