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 디자인=김승종기자 ⓒ프레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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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플라스틱이 완전한 새플라스틱으로 바뀌는 시대가 곧 열릴 전망이다. 

이전까지는 일부 폐플라스틱만 재활용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열분해를 통해 어떤 종류든 새 플라스틱의 원재료가 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될 전망이다. 특히 탄소중립 정책과 글로벌 환경 규제에 따라 석유화학업계는 미래 생존을 위해 열분해를 채택, 폐플라스틱 선순환 구조 수립에 착수했다.

9일 석유화학업계와 정유업계에 따르면 LG화학과 SK지오센트릭, 현대오일뱅크 등 주요기업들이 플라스틱 열분해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하거나 시범 작동을 시작했다.

열분해란 높은 온도로 가열해 일어나는 화학물질의 분해반응을 의미한다. 플라스틱 폐기물을 무산소 또는 저산소 상태에서 고온으로 가열하면 분해돼 기체나 액체로 분해되는데 이 물질은 석유계 화합물과 거의 유사해 연료로 재사용이 가능하다. 이에 폐플라스틱을 획기적으로 재활용할 방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SK이노베이션이다. 자회사 SK지오센트릭은 지난해 9월 열분해유를 SK이노베이션 울산CLX의 정유, 석유화학 공정에 원료유로 투입한다.

원료유로 투입된 열분해유는 다른 원유와 마찬가지로 SK에너지의 정유공정과 SK지오센트릭의 석유화학 공정을 거쳐 석유화학 제품으로 다시 제작된다. 열분해유 공장은 오는 2024년 상업 가동 예정으로 연간 20만톤 규모의 폐플라스틱 처리가 가능하다.

SK지오센트릭 관계자는 "지금까지 열분해유는 염소 등 불순물로 인해 공정 투입 시 대기 오염 물질 배출, 설비 부식 등에 대한 우려로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로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며 "SK지오센트릭은 전통 화학사업 역량에 기반해 열분해유 속 불순물을 제거하는 후처리 기술을 개발 적용함으로써 열분해유를 친환경 원료유로 탈바꿈시켰다"고 설명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11월부터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원유 정제 공정에 투입해 친환경 납사 생산을 시작했다. 생산 납사는 인근 석유화학사에 공급하고 최종적으로 새 플라스틱 제품으로 재탄생한다.

현대오일뱅크는 우선 100톤의 열분해유를 정유공정에 투입해 실증 연구를 수행하고 안전성을 확보한 뒤 투입량을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투입을 친환경 제품 생산 과정으로 공식 인증받기 위한 절차도 진행 중이다. ISCC(International Sustainability and Carbon Certification)등 국제 인증기관을 통해 친환경 인증을 받고 생산된 납사는 친환경 제품인 ‘그린납사’로 판매할 예정이다.

LG화학도 지난달 오는 2024년 1분기까지 충남 당진에 초임계 열분해유 공장을 연산 2만톤 규모로 건설한다고 밝혔다.

이 공장엔 고온·고압의 초임계 수증기로 혼합된 폐플라스틱을 분해하는 화학적 재활용 기술이 적용된다. 초임계 수증기란 온도와 압력이 물의 임계점을 넘어선 상태에서 생성되는 특수 열원이다. 액체의 용해성과 기체의 확산성을 모두 가지게 돼 특정 물질을 추출하는 데 유용하다.

직접적으로 열을 가하는 기술과 달리 열분해 과정에서 탄소덩어리(그을림) 생성을 억제해 별도의 보수 과정 없이 연속 운전이 가능하다. 약 10톤의 비닐, 플라스틱 투입 시 8톤 이상의 열분해유를 만들 수 있다. 나머지 2톤가량의 부생 가스는 초임계 수증기 제조 등 공장 운전을 위한 에너지로 재사용된다.

LG화학은 이를 위해 초임계 열분해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영국의 무라 테크놀로지(무라)와 협업한다. 지난해 10월 무라에 지분 투자도 진행한 바 있으며 최근엔 무라의 기술 판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업인 KBR과 기술 타당성 검토를 마쳤다.

정부도 열분해유 사업 박차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환경부는 지난 3일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폐기물시설촉진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이달 중으로 시행된다고 밝혔다. 이에 앞으로는 산업단지 개발 시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했던 매립시설을 폐플라스틱 열분해 재활용시설로 대체할 수 있다.

올해 안으로 석유, 화학 기업이 원유를 대체해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석유제품의 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폐기물관리법 하위법령도 개정될 예정이라 열분해 사업은 더욱 탄력받을 예정이다.

환경부는 지난해 6월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핵심과제 중 하나로 열분해 등 화학적 재활용을 통한 폐플라스틱의 연료, 원료화를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정유사들의 요청으로 열분해유를 정유 공장에 넣을 수 있도록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안다"며 "사회적 기업 위주로 이뤄지던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이 환경 이슈에 대응하고 있는 대기업으로 확장되는 것은 큰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은 플랜트를 짓거나 열분해유를 시범가동 하는 등 실증단계에 대부분 머물러 있어 수익성을 논할 수는 없지만 오는 2025년엔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열분해 사업 왜?… 글로벌 규제로 석유화학정유업계 생존과 직결

화학적 플라스틱 재활용으로 분류되는 열분해 이전에 현재 가장 보편화된 방법은 물리적 재활용이다.

기계적인 파쇄, 압출 등을 통해 물리적인 상태의 재생 원료로 전환되는 방법이지만 식품용, 일상용품으로 활용되는 PET, HDPE를 제외하곤 많은 과정이 필요해 경제성이 떨어져 대부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폴리스타이렌(PS)의 경우 다른 종류의 플라스틱에 비해 부피 당 무게가 가벼워 경제성이 떨어져 폐플라스틱 선별 업체 단계에서 취급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물리적 재활용이 플라스틱 본래의 성질을 변형시키지 않고 물리적인 형태만 바꾸는 개념이지만 화학적 재활용은 폴리머(고분자) 형태의 플라스틱을 화학적 반응을 통해 최초의 원료 형태인 모노머(단량체)로 완전히 되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데 새로운 자원을 필요로 하지 않고 매립과 소각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플라스틱 재활용으로 꼽히고 있다. 플라스틱 순환 경제를 이루기 위해선 화학적 재활용 기술 개발이 필수적이며 이 중 가장 현실화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 열분해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플라스틱 사용량 증가로 인한 환경 규제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2022 교보지식포럼'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플라스틱 사용량은 코로나로 인한 택배, 음식 배달 및 포장 등의 증가로 지난 2019년 대비 2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플라스틱 생산량 역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조사에 따르면 플라스틱 생산량은 연평균 3.4% 증가하고 있으며 Pewtrusts & Systemiq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추세가 유지될 경우 오는 2040년 미세 플라스틱 폐기량은 지난 2016년 대비 2배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각국의 플라스틱 환경 규제 강화는 석유화학 기업에게 피할 수 없는 현안이다.

EU 회원국은 지난해 1월부터 재활용되지 않는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에 비례해 1kg당 0.8유로의 기부금 부담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바이든 이후 플라스틱 규제가 강화되는 분위기다. 지난해 3월 발의된 법안엔 플라스틱 생산자에게 대대적인 생산자 책임을 부과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국가 간 유해 폐기물 이동을 규제하는 바젤협약의 폐플라스틱 관련 규제도 지난해부터 강화됐다. 협약에 따라 폐플라스틱은 발생한 국가에서 직접 처리해야 하며 수입국 서면동의가 있어야만 국가 간 이동이 가능하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슈로더는 석유 기반 기업들이 현행과 동일하게 신규 플라스틱을 생산할 경우 확산되는 규제와 세금으로 인해 80%는 중기적으로 세전 이익이 11%에서 13%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위정원 교보증권 연구원은 "지난 2020년 각국에서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였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유명무실해졌다"라면서도 "주식 시장에선 미디어, 여행, 유통 등 다양한 영역에서 코로나로 막혀 있다가 다시 열리는(Re-opening)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짚었다.

이어 "플라스틱 사용 규제는 잊혀진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 있었을 뿐이다"라며 "플라스틱에 대한 규제는 필연적으로 재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석유화학업계가 플라스틱 재활용 선순환 구조를 개발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프레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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