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MC 맞춰 글로벌 증시 요동…신흥국 자본유출 이미 진행

[프레스맨, PRESSMAN= 박현정 기자]

<사진합성=프레스맨>

한국 경제의 앞날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국내에선 경기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해외에선 미국 금리 인상과 중국 경기 둔화 등 메가톤급 악재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17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상을 결정하면 세계 각국에서 뭉칫돈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머니무브(Money Move)'가 본격화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머니무브'는 시작된 지 오래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신흥국에서 순유출된 외국인 포트폴리오 자금은 338억 달러(약 40조원)였다. 이는 분기 기준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났던 2008년 4분기(-1천194억달러) 이후 7년 만에 최대치다. 신흥국에서 외국인 포트폴리오 자금이 3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도 2008년 4분기 이후 처음이다.

국가별로 보면 3분기에 한국에서 109억 달러(약 12조8천억원)가 빠져나가 7월 이후 자료가 없는 중국과 필리핀을 제외한 15개 신흥국 중 유출액이 가장 많았다. 중국에서는 6월에만 110억 달러가 유출된 것으로 나타나 한국보다 유출 규모가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한국의 유출 규모가 상대적으로 컸던 셈이다. 한국증시가 신흥국 중 개방 정도가 높아 외국인들이 자금을 빼내기가 상대적으로 쉬운데다 중국 등 신흥시장의 성장둔화에 가장 취약하다고 여기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취약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한계점

이같은 '머니무브'보다 심각한 것은 국내의 경제성장률이다.

지난 9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지난 5월보다 0.1%포인트 낮은 3.0%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로 전망한 3.6%에 기반을 둔 것이어서 세계 경제가 올해 수준인 3.1% 성장에 그친다면 한국의 성장률은 2.6%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같은 성장률 하락의 요인으로 중국경제의 불안과 미국의 금리인상이라는 이른바 'G2리스크'에 근거한다고 분석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한계점에 근거한다.

지출 항목별 성장률 기여도를 살펴보면 총수출(2014년 기준, GDP성장률 3.3% 중 1.5%) 다음으로 높은 것이 민간소비(0.9%)다. 그러나 민간소비 증가세 역시 다양한 형태의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GDP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낮아지고 있을 뿐 아니라, 부동산 비용과 교육비 부담으로 민간소비 여력이 한계에 다다랐다. 또한, 기대수명의 연장으로 인한 노후 준비,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과 같은 인구 구조학적 변화 등으로 민간소비가 단기적으로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기 어려운 실정이다.

'독자생존' 길 걷는 유럽, 중국, 일본

이번 금리 인상 움직임은 미국 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금융위기 직후 연준이 급격히 추락한 미국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비정상적 수준까지 내렸지만, 이젠 이를 예전 수준으로 올릴 정도로 경기가 회복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것만 두고 보면 한국 경제에는 반드시 부정적인 여파만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의 경기 호전으로 대미(對美) 수출이 증가하는 등의 긍정적인 측면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벌어지는 글로벌 경제의 상황은 우호적이지 않다. 미국을 뺀 대다수 국가의 경제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아서다.

한국의 주력 수출시장은 중국, 동남아, 미국, 유럽연합(EU) 등인데, EU를 제외하고는 지역별 수출 실적이 나빠지고 있다. 이는 우리만이 겪는 일이 아니라, 전 세계 대다수 국가가 경험하는 현상이란 점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상황과 겉으로는 유사하다. 2009년 한국은 전 세계의 심각한 수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중국 경제의 성장세에 힘입어 성공적인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수출 감소세의 속사정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전혀 다른 상황이다. 수출 실적 부진은 우리의 주력 수출시장인 중국에서 시작됐고, 중국 경제는 과잉 투자에 대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한국의 수출 실적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글로벌 경기의 침체는 세계 각국이 자국 내 경기상황에 맞춰 다른 방향의 통화정책을 구사하며 생존의 길을 모색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가 도래한 것을 의미한다.

유럽과 중국, 일본, 뉴질랜드 등 주요국이 완화정책을 지속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3일 마이너스인 예금금리를 0.1%포인트 추가 인하하고 채권매입도 확대하는 부양책을 발표했다. 일본은행도 지난달 19일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시중 통화량을 확대하는 현 완화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해 작년부터 6차례의 기준금리 인하와 4차례의 지급준비율 인하를 단행했다.

국내에서 추가경정예산과 금리 인하라는 부양책이 큰 효과를 내지 못한 가운데 몰려오는 이런 대외 악재는 앞으로 정책 수단을 제약할 것으로 보여 '한국 경제'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은행의 나홀로 금리, 지속될 수 없어

결국 한국 경제 입장에서는 긍정적 효과보다는 시장 불안과 자금 유출로 인한 부정적 효과가 커질 공산이 크다. 미국 금리 인상으로 달러 가치가 뛰고 국제자금이 미국으로 회귀하면 이를 막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한국으로선 부진한 경기 상황과 천문학적인 가계부채가 금리인상에 걸림돌로 작용해 위기발생 시 대응이 어려운 처지다.

지난 11월 22일 국제금융협회(IIF)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올해 1분기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84%로 18개 신흥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선진국 평균인 74%을 넘는 것은 물론, 아시아 18개 신흥국가 평균 40%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한국은행의 자료에서도 한국 가계신용잔액은 1분기 약 1098조원, 2분기에는 약 1130조원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같은 수치는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시행된 부동산 활성화 대책이 뚜렷한 성과는 내지 못한채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진 탓이 크다.

아파트 등으로 대변되는 부동산 같은 비생산적 자산에 가계부채가 집중된 탓에 美금리 인상에 발맞춰 금리를 인상하면 차칫 가계부채 부실의 뇌관을 건드릴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 또한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시장 '시계 제로'…당국 "필요시 선제 대응조치"

세계 경제가 다시금 '가보지 않은 길'로 접어드는 만큼 당국도 긴장감을 높이며 시장 상황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국은 시장 상황이 비이상적으로 흘러갈 경우 안정화 조치 등을 통해 긴급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0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최대 위험요인은 취약신흥국의 위기가 확대되는 것"이라면서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 대비해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마련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등 정부 관계부처는 17일 미 금리 결정 후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어 시장 상황과 대응방안을 논의한다.

정부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워낙 불확실하기 때문에 예단하기 어렵다"며 "미국 금리 인상 결정 이후 시장변동성 확대에 대비하기 위해 외환건전성 관리 제도를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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