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 디자인=김승종기자 ⓒ프레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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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대 식(食)이 귀했던 시절, 우리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된 거래가 외상이었다.

대형슈퍼를 찾기 힘들었던 때 우리네 어머니와 아버지는 동네 가게 주인과 친분을 맺고 소주며, 요리 반찬이며 자녀들 간식거리를 종종 외상으로 가져왔다.

밀린 외상값을 달라며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고래고래 소리 치는 동네 가게 주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시멘트 벽을 타고 집 안방까지 들어오는 일은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이미 얼큰하게 취해 외상으로 소주 한병을 가져가려는 동네 아저씨와 외상값 먼저 갚으라며 그 소주를 다시 빼앗아가는 가게 주인 아주머니 사이에서 벌어진 웃픈 실랑이도 심심찮게 목격되곤 했다. 

동네 가게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값싼 슈퍼마켓이 하나둘 생기면서 조금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형할인마트가 곳곳에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동네가게는 찾기 힘들게 됐고 외상거래도 사라졌다.

우리 사회에서 외상 거래는 아예 없어졌을까. 결론만 이야기하면 아니다. 되레 더 진화했다. 외상 거래의 개념을 파고 들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신용카드다. 당장 사고 싶은 물건을 사고 한 달 후 결제하는 시스템인 신용카드는 우리 사회에서 이젠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됐다. 현금 없는 사회에 한 걸음 내딛은 것도 신용카드 시스템 덕택이다. 현금 없이 급하게 물건을 사야할 때 활용된 외상 거래가 어떻게 보면 금융을 기반으로 시스템화된 셈이다.

빚에 대한 개념은 어떨까. 물론 지금도 많은 어르신들은 빚을 공포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 시대가 돌입하면서 빚은 하나의 자산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예를 들어 서울권 내 아파트를 대출을 통해 매입했다고 가정해보자. 2~3년 이후 가격이 두배, 세배 올랐다면 빚으로 집을 안사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판단이 된다. 

노무현정부 이전만 해도 개인은 아파트를 담보로 100% 대출이 가능했다. 대출상환 방식도 원금 대신 이자만 내는 구조였다. 만약 서울권 아파트를 전액 대출을 받아 매매했다고 가정해보자. 2~3년 후 가격이 두배, 세배로 올랐다면 당연히 집을 매입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터다. 

그 결과 부동산 재테크는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큰 관심을 끌었고 일부 다주택자들은 부동산을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이는 곧 집값 버블이란 악재로 되돌아왔다. 노무현정부에서 시작된 부동산 버블은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에서 잠시 주춤하더니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후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역시 규제 강화다. 정부는 양도소득세와 보유세 등 각종 세금을 올리기 시작하더니 집값의 40%만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대출 규제를 강화했다. 그래도 집값이 잡히지 않자 아예 대출을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에 이르렀다. 은행 대출 총량 규제를 도입해 대출 수요를 관리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이는 역효과만 났다. 당장 이사를 해야하는 전세자금대출 마저 꽁꽁 묶이면서 서민들의 자금난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결국 일부 전세대출을 대상으로 총량 규제를 완화했지만 여전히 대출 수요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 시절엔 食이 부족했지만 이제는 주(住)가 귀한 시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동네 가게가 소멸된 것처럼 그래서 외상거래가 시스템화된 것처럼 이젠 住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꿔야 한다.

실수요자 눈치를 보며 찔끔찔끔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은 이제 뒤처진 정책이 되어 버렸다. 투기세력 잡는다고 실수요자들까지 손해를 감수하는 방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이 아닌 좀 더 넓은 의미로 해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 첫번째는 '빚도 자산'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고 '부동산 재테크'로 더 많은 부를 창출하는 구조에서 탈피하는 일일 터다. 

한국은 이제 유례 없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맞고 있다. 빚을 공포로 여긴 어르신들의 조언을 귀담아 들을 때가 왔다.  [프레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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