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업계 "대기업이 얼마나 움직일지가 관건" vs "실효성 업어"

정부가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CVC) 허용안을 내놓으면서 향후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CVC란 대기업이 출자한 벤처캐피털로, 미국이나 중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창업기업에 자금을 투자하고 모기업의 인프라를 제공, 창업기업이 성장 기반을 마련하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VS와는 달리 모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에 보탬이 되는 데 그 목적을 둔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CVC ‘톱3’가 모두 미국 업체다. 구글 지주회사인 알파벳의 구글벤처스, 세일즈포스닷컴의 세일즈포스벤처스, 인텔의 인텔캐피털이 그 주인공이다. 중국의 대형 CVC로는 바이두의 바이두벤처스, 레전드홀딩스의 레전드캐피털이 있는데, 이들은 전 세계 투자규모 4, 5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일반지주회사가 CVC를 운영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 운영되는 CVC는 모두 일반 기업이며, 세계 8위인 카카오의 카카오벤처스를 제외한다면 그 규모가 영세하다. 지주회사의 CVC 운영이 금지된 이유는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를 막는다는 것이지만 실효성 없는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완화 움직임이 시작된 것. 무엇보다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CVC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에 지난 30일 기획재정부·중소벤처기업부·금융위원회와 함께 일반 지주사의 CVC 제한적 보유 추진 방안을 내놓았다. 방안에 따르면 CVC 관련 주요 규제는 ▲일반 지주사가 지분을 100% 보유한 완전 자회사 형태로 설립 ▲펀드 조성 시 결성액의 40%까지만 외부 조달 가능 ▲자본금의 200%까지만 차입 가능 등으로 기존보다 완화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CVC를 통해 자금이 벤처기업 등 생산적인 분야로 흐를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되, 안전장치를 세밀히 마련해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에 악용되는 등 부작용 우려는 해소했다"면서 "이런 규제는 전반적으로 '남의 돈' 활용을 제한하기 위한 조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막상 업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지주사와 계열사 공동 출자를 통한 CVC 설립은 여전히 금지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돈을 버는 사업 지주사가 아니라면 CVC를 자기 자본금만으로 설립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정부 측은 사익편취 방지에 더 무게를 뒀다.
 
펀드의 외부 자금 조달 규제의 경우 허용 자체에 대해서는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40%라는 한도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다. 재계에서는 CVC를 허용하는 주요 선진국은 외부 자금 조달률을 제한하지 않고 있지만, 대량 자금 투입만으로 자금 투명성이 지켜지고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자본금의 200%까지만 차입할 수 있게 한 점도 일반 벤처캐피털(VC)의 제한치 900~2000%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해외 투자는 총자산의 20%까지만 가능 ▲투자를 제외한 다른 금융업 겸영 금지 ▲총수 일가 및 금융 계열사의 펀드 출자 금지 ▲총수 일가 지분 보유 기업 및 소속 집단 계열사 등에 투자 금지 ▲출자자 현황 및 투자 내역 등을 공정위에 정기적으로 보고 등 규제가 달린 점도 불만을 사고 있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이 CVC를 별도로 두는 이유는 인수합병(M&A) 후보군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VC 활동을 통해 우량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현황을 점검하다가 사업에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M&A에 들어가 기술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스타트업들 역시 금전적 지원 이외에 투자자의 지원도 받는 CVC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잇점 때문에 세계 CVC 투자 규모는 매년 커지고 있는 추세다. 2014년 184억달러(약 21조5000억원)이던 세계 CVC 투자 규모는 지난해 530억달러(약 61조9700억원)로 증가했다. 4년 사이 시장 규모가 세 배로 커진 셈으로, 투자 건수는 2740건에 이른다.
 
한편 벤처기업들은 정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 기대와 우려를 함께 제기하고 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정민아 정책실장은 "CVC가 허용되더라도 펀드가 실제로 결성되지 않으면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며 "제한적으로나마 허용된 것은 다행이지만 앞으로 국회 논의 등 여러 가지 넘어야 할 산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정 정책실장은 "대기업이 얼마만큼 사업에 적극적인지가 스타트업 및 CVC 활성화의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프레스맨]
저작권자 © 프레스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