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관련 제재 탄력 받을듯…기업에는 불리 
두산인프라코어 "재발 방지에 만전 기하겠다"

두산인프라코어 굴착기.(사진=두산인프라코어)
두산인프라코어 굴착기.(사진=두산인프라코어)

하도급업체의 자료를 빼돌려 경쟁업체에 넘긴 기업에 법원이 최초로 기술유용이 맞다는 판결을 내렸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6부는 지난 22일 두산인프라코어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를 상대로 “제재를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다만 법원은 “과징금 산정 시 관련 고시를 잘못 적용했다”며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3억8200만원 중 3억6200만원에 대해서는 취소할 것을 명했다. 

2018년 두산인프라코어는 굴착기 부품인 에어 컴프레셔와 냉각수 저장탱크를 공급하던 하도급업체 2곳에 관련 기술자료를 요구했다. 두산측은 이 자료를 경쟁 하도급업체에 넘겼고, 공정위는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했다. 정부가 기술유용 행위 근절을 국정과제로 제시한 뒤 나온 첫 제재 사례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이에 행정소송을 내고 “하도급업체와 거래가 유지돼 해당 업체에 손해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사업자가 자신의 이익 또는 하도급사에 손해를 입히고자 하도급사 기술을 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면 기술유용”이라고 판단했다. 

즉, 원사업자가 실제 이익을 취하거나 하도급사에 실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기술유용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것이다. 따라서 이후 판결에도 기술유용의 적용 범위가 광범위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반적으로 기술유용 분쟁에서의 쟁점은 빼돌린 자료가 실제 ‘기술자료’인지 여부다. 대기업들은 통상 하도급업체의 자료가 ‘업계에 널리 알려진 상식’ 등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반면 재판부는 두산인프라코어가 빼돌린 자료들이 ‘경제적 가치’와 ‘비밀관리성’을 모두 갖춘 기술자료가 맞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또한 “활용되지 않은, 잠재적으로 유용한 정보나 과거 실패한 연구데이터 등 정보도 경제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며 “생산·영업활동에 이용될 정도로 완성 단계에 이르지 못했어도 기술자료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원사업자와 하도급업체 간 기술자료 비밀유지 약정이 묵시적으로라도 이뤄졌다면 ‘비밀관리성’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판결문에는 또 “하도급계약에 ‘하도급업체가 승인도(기술자료)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더라도, 하도급업체에 기술자료를 요구하려면 별도의 서면을 교부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적 계약 내용보다는 기술자료 보호의 필요성을 더 크게 인정한 셈이다. 

기술유용 사건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공정위 내부 기준에 대해서도 합리성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기술자료 제공 요구·유용행위 심사지침’에 대해 “행정규칙이라 대외적으로 국민이나 법원을 구속하는 효력은 없다”면서도 “기술자료의 요건인 경제적 유용성과 비밀관리성 (존재)여부와 관련해 심사지침 내용이 기본적으로 타당하다”고 못박았다.

이를 근거로 재판부는 “원사업자가 제조 등 위탁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 기술자료가 불가피하게 필요하고, 제공 범위나 방법이 필요최소한도에 그칠 때 기술자료 제공 요구가 정당하다고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며 "현재로서는 항소보다 재발 방지가 더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이어 "관련 자료들을 추가 검토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덧붙였다. 

공정위는 현재 과징금 대부분이 취소된 데 대해 대법원 상고 등을 검토 중이다. 향후 이러한 취지로 판결이 확정된다면 공정위는 과징금 재산정 절차를 밟게 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인해 공정위의 기술유용 제재가 더욱 힘을 받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기술유용 관련 분쟁으로 소송 중인 일부 기업들은 이번 판결로 고심하는 분위기다. [프레스맨]

저작권자 © 프레스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