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대한항공 샅바싸움 넘어 노조·시민단체 공방

대한항공 소유의 서울 종로 송현동 부지에 대한 매입가를 놓고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이제는 서울시와 대한항공간 '샅바싸움'을 넘어 노조와 시민·환경단체간 공방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한쪽에서는 "비싸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헐값"이라고 반박한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달 28일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를 공원화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매입가를 4671억원으로 책정했다. 이는 대한공항이 제시한 최소 6000억원에 한참 못미치는 수준이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 공원화'를 둘러싸고 지역사회와 업계의 논란이 뜨겁다. 

서울시는 지난 4일 발표한 '북촌지구단위계획 결정 변경안'을 통해 송현동 부지의 매입가를 4671억원으로 책정하고, 오는 2022년까지 2년에 걸쳐 분할지급키로 결정했다. 

그러자 송현동 부지의 소유주인 대한항공은 "재산권이 침해당했다"며 펄쩍 뛰었다. "서울시의 공원계획 발표로 긴급한 유동성 확보에 중대한 악영향이 발생했다"면서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민원까지 접수했다. 

여기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서울환경운동연합(서울환경연합) 등 시민·환경단체와 대한항공 노조까지 가세하면서 논란은 점점 커지고 있다. 

대한항공 노조는 지난 11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매입 당시 사정을 고려하면 부지보상비가 지나치게 낮다"고 지적했다. 송현동 부지를 살 때는 인근 실거래가와 비슷한 3.3㎡(1평)당 2541만9300원에 거래했는데, 팔려고 하니 부지 용도가 바뀌어 시세의 절반으로 깎였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2008년 삼성생명에 2900억원을 주고 송현동 부지를 샀다.  

노조는 "대한항공이 송현동 부지를 경쟁입찰을 통해 매각해야 2만여 노동자의 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며 "서울시가 공권력 남용해 민간 기업 사업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항공은 송현동 부지 등을 매각해 내년 말까지 자금 2조원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 4월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자금 1조2000억원을 지원받기로 하면서 한 약속이기도 하다. 

노조는 "송현동 부지 매각은 유동성 위기에 놓인 대한항공이 자산을 확충하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이를 통해 직원들도 생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의 생각은 다르다. 송현동 부지는 공원으로 조성됐을 때 잠재력이 굉장히 높은 곳이라고 보고 있다. 북촌과 인사동 등 유동인구가 많은 시가지와 인접해 있고, 인근에 경복궁과 창덕궁, 국립현대미술관 등 사적과 문화시설들이 자리하고 있어서다. 

서울환경연합 측은 "뛰어난 역사·문화적 가치와 잠재력을 지닌 송현동 부지에 대한 이해 없이 사익만을 쫓는 대한항공의 태도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송현동 부지의 숲 공원화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또 대한항공은 지난 2015년 송현동 부지에 관광호텔 건립을 추진하다 시민들의 반대로 포기한 바 있다. 

서울환경연합 측은 "국내 1위의 국적 항공사를 운영하는 기업이 편협함을 버리지 못하고, 공원 결정으로 사유재산권이 침해받았다며 제기한 민원은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대한항공이 민원을 제기한 권익위는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부당한 처분을 받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중앙행정기관이지 재벌기업의 불로소득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며 "서울시의 공원계획 발표로 송현동 부지 매각이 받은 영향은 토지라는 사회적 공공성이 강한 사유재산을 소유한 대한항공이 감당해야 할 제약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헌법재판소(97헌바26 전원재판부)는 도시계획법에 대한 결정에서 '토지재산권은 토지의 강한 사회성 내지는 공공성으로 인해 다른 재산권에 비해 더 강한 제한과 의무가 부과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공원을 비롯한 도시계획시설의 지정으로 개발 가능성의 소멸과 그에 따른 지가 하락, 토지 수용 시까지 토지를 종래의 용도대로만 이용해야 할 현상유지 의무 등은 토지소유자가 감수해야 하는 사회적 제약의 범주라고 명시한 것이다. 

서울환경연합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공원녹지의 필요성이 점점 부각되면서 선진국들은 공공녹지를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수도인 서울의 1인당 도시 숲 면적이 고작 4.35㎡에 불과"며 "이는 세계보건기구의 권고치인 1인당 9㎡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고 설명했다.

왕실의 정원을 개방해 만든 대표적인 도시공원이 있는 영국 런던의 경우 오는 2050년까지 도시 전체 면적의 50%를 녹지화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중이다. 일본도 인구감소와 도시의 형태변화, 늘어가는 재난발생에 대한 대책으로 시가지별 녹지비율을 확대하고 있다.
 
서울환경연합 관계자는 "도시 곳곳이 빼곡하게 개발돼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특성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도시를 식히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도시 숲이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데 하등 도움 될 것 없는 국가정상회의장과 국제전시장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궁궐의 외원(外苑)이었음에도 왕실이 무너져 내린 후 타국을 위해 사용되며 시민들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던 송현동 부지에 열린 공원화의 길은 지역 사회와 주민들이 중심이 돼 만들어낸 값진 결과"라며 "이런 공원화의 바람을 무시한 채 보상액 상향만을 꾀하는 재벌기업의 기만극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했다. [프레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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