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적인 계기는 中 시진핑 주석 방일 연기
중일 관계에 한국도 영향···다각적 해법 모색 필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5일 한국과 중국에 대한 입국 제한 및 방역 강화를 포함한 5개 항목의 신규 조치를 발표한 것과 관련해 그 시기와 의도를 두고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한국 정부도 즉각 ‘대항조치’에 나서면서 수출규제 조치 이후 냉랭해졌던 양국관계가 더욱 더 얼어붙고 있는 모습이다. 

코로나19 사태 발발 이후, 일본내 보수 세력 들의 중국에 대한 입국 제한 요구를 무시한 채 버텼던 아베 정부가 갑작스레 크나큰 반발이 예상되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에 대해서도 입국을 제한하는 강수를 둔 배경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일본 국빈방문 연기가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언론에서는 일본 정부의 이번 발표가 사전협의를 결여한 갑작스러운 조치이며 아베 총리의 ‘정치적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정부 관료의 말을 인용해 일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대부분인 한편, 일본 언론들은 시 주석의 일본 국빈 방문이라는 중일 양국의 중요 외교 일정이 연기된 것에 주목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5일 오후, 4월 초순으로 예정된 시 주석의 방일을 양국의 합의 하에 연기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일본에서는 외국 정상 등이 국빈 방문할 시 일왕과 만남을 갖는다. 관례상 외무성은 30일 전까지 궁내청에 이를 문서로 신청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일본 정부로서는 시 주석의 방일 여부를 늦어도 3월 초 이전에 확정해 발표해야 할 상황이었다.    

스가 관방장관은 “코로나19 확대 방지를 최우선할 필요가 있다”며 연기 배경을 설명했다. 아사히신문이 지난달 29일 보도한 외무성 간부의 발언은 “방일 혹은 연기를 결정하는 공은 중국에 넘어가 있다”는 것으로, 이를 감안하면 중국 측이 연기를 요청했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시 주석의 일정 등을 고려할 때 도쿄올림픽 이후에나 방일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총리는 코로나19의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되는 와중에도 중국 최고지도자의 12년 만의 국빈 방문에 기대감을 표명해 왔다. 일본 언론이 연기 가능성을 제기하는 가운데 지난달 28일, 아베 총리는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을 만난 자리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국빈 방문은 일중 양국 관계에 있어서 매우 증요하다. 충분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성심껏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0월 이후 소비세 인상으로 인한 국내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타개책 중 하나로 중국과의 경제협력 확대를 추진해 왔다. 이는 아베 정권의 주요 지지세력인 경제계의 요구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 또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고 있다. 미중 대립 심화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이 우려되는 가운데 시 주석의 일본 국빈 방문은 국내외에 정권의 건재함을 어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중일 정부는 시 주석의 방일을 양국의 외교관계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 중일은 지난해 11월부터 양국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소위 ‘제5의 정치문서’를 준비해 왔다. 여기에는 1972년 중일공동성명, 1978년 평화우호조약, 1998년 공동선언, 2008년 공동성명과 비견되는 외교적 성과를 역사에 남기려는 아베 총리와 시 주석의 의지가 담겨 있다.  

지난 1월 말 이후, 일본 내 감염자가 증가하면서 중국인 입국금지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나왔지만, 아베 총리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입국거부 대상을 중국 전지역으로 확대했을 때에도, 중국 정부가 일본발 입국자에 대한 14일 격리조치를 의무화했을 때에도, 일본 정부는 ‘늑장대응’이라는 여론의 비판 속에서도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공들여 준비해온 시 주석의 국빈 방일에 행여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한 탓이다. 

하지만 중국 우한시에서 발원한 코로나19의 전세계적 확산은 양국의 발목을 잡았다. 중일 정상의 ‘정치문서’에 포함될 제3국에 대한 경제협력 방안과 관련해 동남아시아 인프라 투자 등 주요 현안을 논의할 실무자회의가 코로나19 사태로 잇따라 취소되는 등 준비 과정에 차질이 생겼다. 중일 정부는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쏟아질 여론의 비판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 총리의 발표 다음날, 현 상황에서 “정권이 내놓은 결론은 시 주석의 방일 연기와 중국으로부터의 입국 제한 강화를 세트로 내세우는 해결책이었다”고 분석했다. 아베 총리는 시 주석의 방일 연기와 동시에 코로나19 대책에 정권의 역량을 집중하기로 방침을 선회했고, 그간 보수세력이 주장했던 중국에 대한 입국 제한 카드를 전격적으로 꺼내들기에 이른 것이다. 

이번 한국에 대한 입국 제한 및 한국인 무비자 입국·기존 발급 비자 효력 정지 등 일련의 조치는 한일 관계의 맥락에서만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진정한 해법은 한중일 3국의 복잡한 외교관계를 토대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프레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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