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 취소에 주주 소집도 난감…감사 등 선임 불발 우려
체온 측정 등 방역에 만전…전자투표제 도입도 적극적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둔 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감염자 발생을 막아야 하는 데다 자칫 정족수 미달로 감사 등을 선임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5일 "다수의 주주들이 모이는 자리인 만큼 방역 문제로 소집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대관 취소가 잇따르면서 장소를 잡는 일도 만만치 않다"고 밝혔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오는 18일부터 30일까지 주주총회를 진행하는 유가증권시장 기업은 총 479곳이다. 이들 중 감사 선임 등 주요 안건을 처리해야 하는 상장사들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이른바 '3% 룰' 때문이다. 3% 룰이란 상장사의 감사·감사위원 선임 시 지배주주가 의결권 주식의 최대 3%만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한 규정을 말한다.

감사나 감사위원을 뽑으려면 발행 주식 25%의 찬성이 필요하다. 즉, 대주주 입장에서는 추가 22%의 표를 확보하지 못하면 감사 선임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진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주총에서 정족수 미달로 감사‧감사위원을 선임 불발이 우려되는 회사는 238개사로 추정된다.

이에 상장사들은 주총 시즌 동안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방역에 만전을 기한다는 방침이다. 현대글로비스는 지난 4일 주총 장소까지 변경하기로 했다. 오는 19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주총은 더케이서울호텔로 자리를 옮겨 치러진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코로나19 관련 집단행사 방역관리 지침에 따라 공공기관 대관이 취소돼 주총장을 변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주총 당일에도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하고, 의심환자가 있으면 격리하거나 건물 출입을 제한할 계획이다.

참석 주주들은 입장 시 체온을 측정하고, 보건용 마스크와 일회용 장갑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손 소독제 등도 비치한다. 현대글로비스는 또한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전자투표, 서면투표, 전자위임장을 적극 활용해 의결권을 행사해주길 바란다"고 주주들에게 전했다.

앞서 삼성전자도 오는 18일로 예정된 주총 장소를 서울 서초사옥에서 경기 수원컨벤션센터로 변경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액면분할로 주주가 크게 늘자 주주 편의를 배려한 조치"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코로나 19 감염자가 사옥에 들어오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금호석유화학과 에스원의 경우에는 서울 중구 YWCA에서 주총을 열 계획이었지만, YWCA 측이 대관을 취소하면서 장소를 변경했다. 삼성중공업도 경기도 판교테크노밸리에서 자사 판교 R&D(연구개발) 센터로 주총장을 바꿨다.

25~26일 주총를 앞둔 SK지주와 SK이노베이션은 총회 장소인 SK빌딩 수펙스홀 입구에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했다. 회사측은 주총 당일 주주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발열이 의심되는 경우 출입을 제한한다고 공지했다. 주총 참석자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LG디스플레이도 20일 총회가 열리는 LG디스플레이 파주 러닝센터 입구에서 열화상 카메라나 디지털 온도계로 참석자 체온을 측정한다. 발열이 의심되는 경우 출입이 제한된다. 주주 편의를 위해 제공하던 전시장 투어와 본사‧주총장소 간 셔틀버스 운행 서비스 역시 중단하기로 했다.

전자투표제 확대도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변화 중 하나다. 사업보고서 제출에 애로사항을 겪고 있는 기업들은 지연 제출에 대한 제재 면제 신청서를 내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처음으로 전자투표제를 도입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 9개 상장 계열사에서 올해 전자투표제를 시행한다. 계열사 중 현대글로비스, 현대비앤지스틸, 현대차증권 3곳은 지난해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바 있다.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인 대구·경북 소재 기업들은 전자투표제에 더욱 적극적이다. 대구의 한 코스닥 상장 기업은 올해 처음으로 전자투표 및 전자위임장 제도를 도입했다.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전자투표를 이용하는 주주들에게 프랜차이즈 커피 모바일 기프티콘도 제공한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주총 준비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을 위해 한시적으로 행정제재를 면제하기로 했다. 중국과 대구‧청도 지역에 사업장을 두고 있거나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 재무제표 작성 또는 외부감사가 지연된 기업이 대상이다.

사무실이 폐쇄되는 등 지난해 회계연도 외부감사를 기한 내 완료하기 어려운 감사인을 위한 조치도 이뤄진다. 이 경우는 재무제표와 감사보고서, 사업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거나 지연 제출하더라도 과징금 부과 등 행정제재를 면제받을 수 있다.

화신테크기업은 임직원 중 코로나19 밀접 접촉자가 발생하면서 지난달 27일부터 사업장 휴업에 들어갔다. 사업보고서 제출 등에 차질이 생긴 화신테크측은 금융감독원(금감원)에 제재 면제 심사를 요청했다. 주요 종속회사가 중국에 소재한 골든센츄리도 지난 4일 사업보고서 등 서류 지연 제출에 대한 제재 면제 심사를 신청한 상태다. [프레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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