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이인영 원내대표 유감 표명에 한 발 물러서

윤종원 신임 IBK기업은행장이 취임 27일만인 오는 29일 서울 을지로 본점 집무실로 첫 출근을 하게 됐다.

기업은행 노조는 28일 윤 행장에 대한 출근 저지 농성을 정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이날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른바 ‘낙하산 인사’ 논란과 관련해 유감을 표한 데 따른 조치이다.

이 원내대표는 "어제 기업은행 노사가 상호 양보를 통해 합의안을 마련하고 업무를 정상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한국노총과 우리 당은 낙하산 근절 및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로 정책협약을 체결했으나, 기업은행장 임명 과정에서 소통과 협의 부족으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여당과 기업은행 노사의 대화가 급물살을 탄 것은 지난 22일부터의 일이다. 이 내대표는 은성수 금융위원장, 윤 행장,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 등과 만남을 가지면서 정부 여당의 입장을 전달했다. 윤 행장도 연휴 기간 동안 노조 측과 대화를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22일 윤 행장과 처음으로 만난 후 협의점을 찾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며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7일에는 은 위원장, 이 원내대표, 윤 행장과 만나 낙하산 인사 근절을 위한 협의안에 잠정 합의했다"라고 밝혔다.

기업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몇 차례의 회동을 통해 양측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자리가 계속되면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로써 2013년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14일)을 넘어서는 금융권 최장행장 출근 저지 사태는 일단락됐다.

그동안 서울 종로구 금융연수원 임시 집무실에서 업무를 수행해온 윤 행장은 내일 취임식을 가질 예정이다. 노조측은 "청와대와 여당으로부터 정책협약을 파기한 것에 대한 비공식적인 사과를 받은 상태"라며 "재발방지 대책, 기업은행장 임명제도 개선안 등이 협의안에 포함됐다. 여당의 발표를 확인한 후 노조의 최종 입장을 밝힐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 행장은 지난 2일 선임된 후 세 차례(3일, 7일, 16일)에 걸쳐 을지로 본점에 출근하려 했지만 배먼 노조의 출근 저지 투쟁에 막혀 발걸음을 돌린 바 있다. 윤 행장은 당시 "노조와의 대화를 기다리겠다"고 했으나, 노조는 "청와대와 여당의 책임 있는 사과가 먼저"라고 맞섰다.

지난 14일에는 "내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토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기업은행장은 중소기업은행법에 따라 금융위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때 금융노조와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겠다’는 협약을 맺고 이를 문서로도 남겼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된 것.

여당인 민주당 역시 기업은행장 임명에 대해 이전 정권 때와는 상반되는 입장을 취하면서 ‘내로남불’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가 IBK기업은행장으로 2013년 허경욱 전 기재부 차관, 2016년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임명하려 했을 때 민주당은 ‘관치금융’이라고 반발한 바 있다.

기업은행 노조는 이번 행장 인사를 앞두고 ▲관료 배제 ▲절차 투명성 ▲기업은행 전문성 등 3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이런 원칙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물리적 행동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한국노총이 최근 출근 저지 투쟁에 가세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노조가 극적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은 윤 행장에 대한 반대 입장 고수가 별다른 명분도, 이득도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청와대는 반장식 전 청와대 일자리수석을 신임 행장으로 검토했으나 노조측은 금융 전문성이 부족한 낙하산 인사라며 반대했다. 대안으로 내세운 윤 행장 임명마저 끝까지 거부하는 것은 무리였으리라는 분석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노조가 내세운 윤 행장 인사 철회 요구는 사실상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며 정부가 내놓을 협상 카드를 기다렸다는 추측도 나온다. 그 근거는 노조가 그동안 윤 행장이 아닌 청와대·여당과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는 것이다.

즉 투쟁의 대상은 윤 내정자가 아닌 정부와 집권 여당이며, 본인들의 목소리를 수용해 달라는 요청이 출근 저지를 통해 표출됐다는 시나리오다. 금융노조가 노렸을 것으로 짐작되는 유력한 카드는 바로 노동이사제 도입이다.

노동이사제는 근로자들을 대표하는 인사가 회사 이사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해 사업계획과 예산, 정관 개정 등 경영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특히 기업은행 노조에서는 지난 13일 대토론회를 통해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윤 행장 임명을 받아들이고 대신 노동이사제를 얻어낸다면, 노조 입장에서는 향후 이사회를 통해 꾸준히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또한 금융권 최초의 노동이사제 도입 사업장이라는 상징적인 지위도 얻어낼 수 있다.

정부로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노동이사제를 실현시키는 기회를 얻는 셈이다. 아울러 윤 행장을 둘러싼 관치금융 논란에서도 자유로워지게 된다. 따라서 추후 기업은행 노조가 정부여당과의 직접 대화에서 어떤 세부사항을 요구하고 나설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프레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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