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공약…금융기관 공공성 강화 계기 될 듯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근로자 추천 이사가 선임될지를 두고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최근 금융권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은 차기 사외이사 2인 중 한 명을 노조 추천 후보로 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수은 이사회 구성원은 총 6명으로 3인은 사내에서 선발하는 상임이사, 3인은 비상임의 사외이사로 이뤄져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부터 근로자 추천 이사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워 왔다. 노조도 사측과 동등하게 기업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시키자는 것이 그 취지다. 독일 등 유럽의 경우 노조 대표가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직접 발언·의결권을 갖지만 대통령 공약은 이보다 한 단계 낮춰 노조 추천을 받은 인물이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방식이다.

근로자 추천이사제는 별도의 법제화 없이도 노사 협의를 통해 도입할 수 있다. 다만 아직까지 이 공약이 실현되지 못한 것은 금융권 및 재계의 반대 여론 때문이다. 노조가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하게 되면 해당 업계의 전문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관치금융 등의 우려가 있다는 게 반대 측 주장이다.

전국금융산업노조 기업은행지부(기업은행 노조)는 지난해 2월 박창완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을 신임 사외이사로 추천한 바 있다. KB금융지주 노조도 2017년부터 3년 연속 사외이사후보를 추천해 왔으나 주주총회 과반 찬성 확보에 실패하면서 번번이 무산됐다.

수은 관계자는 "근로자 추천 이사제 도입 여부는 2년 전부터 금융노조와 논의한 사항“이라면서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사외이사 후보가 누구인지 등 세부사항은 전혀 정해진 것이 없고 노조와 의견을 조율 중이다”라고 말을 아꼈다.

수은 경영진 입장에서는 사외이사 2명의 임기가 만료된다고 해도 6명 중 4명의 의결 정족수는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신임 사외이사 선임을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기도 하다. 아울러 이 사안은 상급 기관인 기획재정경제부와의 협의를 거쳐야 하므로 간단히 결정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수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노조에서는 복수의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받고 평판을 조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추천 후보가 적임자라고 판단되면 이사 선임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게 수은측의 방침이다.

반면 노조측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은 국정과제이며 절차상 문제도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 추천 이사 선임은 금융권 노조에서 그동안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사항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월 발탁된 방문규 수은 행장이 문재인 정부의 실세로 불리는 김경수 경남도지사 직속 경제혁신추진위원장 출신이라는 점도 노조에 힘을 실어주는 요소로 평가된다. 예산 분야 관료 출신인 방 행장이 선임됐으므로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에도 문제가 없다는 것.

더구나 지난해까지 국민들의 비난을 샀던 금융기관 채용비리 문제를 해결할 열쇠도 근로자 추천이사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금융계 노동자들은 보고 있다. 금융 산업은 타 분야에 비해 공공성이 중요시 되는만큼 노조의 개입을 통해 투명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달 30일 금융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노동이사제의 불씨가 금융노동자들의 힘으로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며 "수출입은행지부가 이달 말로 임기가 끝나는 사외이사 2명 중 1명을 추천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며, 남은 것은 기획재정부 장관의 결단"이라고 강조했다.

금융노조는 노동이사제와 관련, “금융위원회가 이 제도를 집단이기주의의 산물로 몰아붙이면서 도입을 위한 최적의 시기를 보내버렸다"며 "대통령 공약이 사장될 위기에 처했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번 수출입은행의 사외이사 추천제 논의는 노동이사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이전 일종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금융노조측은 기대하고 있다. 다만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근로자 추천이사제가 제 역할을 할지에 대한 의문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노동이사제가 주주가치를 훼손한다거나 신속한 경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반론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가 근로자 추천이사제 도입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금융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프레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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