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계 장악한 ‘혐한 비지니스’···한편에선 “혐한 보도 자제해야” 목소리 커져

7일 오후, 도쿄 시부야구 시부야역 광장에서 혐한 감정을 조장하는 보도를 비롯한 일본 사회의 분위기에 반기를 든 집회가 열렸다. (사진=최지희기자)

“한국이 필요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지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도쿄=프레스맨) 최지희기자 = 7일 낮 도쿄(東京) 시부야(渋谷)구 시부야역 광장에는 마이크를 잡고 일본 매체의 무책임한 보도를 규탄하는 이들이 있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 약 300명에 가까운 일본 시민들이 모여 ‘우리는 같이 살아간다’, ‘한일 우호’ 등의 글이 적힌 피켓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30대 남성 참가자는 “아베 정권과 일부 매스컴이 이상할 정도로 ‘혐한’을 부추기고 있다. 일본인인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자리에 함께한 이유를 밝혔다. 또다른 직장인 여성 참가자는 “슬픈 일이지만 회사에도 한국에 대한 헤이트 발언을 서슴치 않는 사람이 있다”면서 “더이상의 상황 악화를 바라지 않는 마음에서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혐한 분위기에 반기를 든 집회는 도쿄 뿐 아니라 오사카(大阪)시 주오(中央)구 난바(難波)역 인근에서도 열렸다. 일본 시민 등 약 200명이 모여 차별적인 보도를 이어가고 있는 언론과 이에 동조하는 사회 분위기를 향해 경종을 울렸다.

지난 2일 발매된 주간포스트의 특집기사. ‘혐한’이 아니라 ‘단한(断韓・한국과 단절)’해야 한다거나, ‘한국따위 필요없다’는 등의 자극적이며 선동적인 제목의 기사를 싣고 있다. (사진=최지희기자)

이같은 움직임이 생기게 된 결정적 계기는 지난주 일본 유명출판사의 잡지 ‘주간포스트’가 ‘한국 따위 필요 없다’는 특집기사를 실으면서부터다. 일본 미디어의 혐한 보도는 어제오늘일이 아니지만, 악화된 한일관계를 틈타 ‘혐한 비지니스’가 언론 시장에서 활개를 치면서 더욱 가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주간지들은 너나할 것 없이 ‘한국 붕괴 직전’, ‘문재인 대통령은 일절 듣는 귀를 갖고 있지 않다’, ‘한국이라는 병’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들을 앞세워 독자들을 현혹 중이다.

한국 대사까지 역임한 지한파 고위외교관이었지만 불행히도 지금은 혐한 인사의 대표가 된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는 최근 혐한책 2탄인 ‘문재인이라는 재액(災厄)’을 출판해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직 외교관들로부터 “한국 대사까지 지낸 분이 이런 책을 내고 있으니 우리로서도 입장이 난처하다”는 불평이 쏟아지지만, “불황 속 출판업계에 ‘혐한’은 포기할 수 없는 소재(일본 출판업계 관계자)”라는 씁쓸한 현실이 여실히 반영된 모습이다. 

서점에 즐비한 혐한 서적들. 가장 아래 중간에 세워진 책이 전 주한일본대사 무토 마사토시가 쓴 책이다. (사진=최지희기자)

잡지 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방송사들은 뉴스 정보 프로그램인 ‘와이드쇼’ 등을 통해 매일같이 한국 소식을 메인 뉴스로 보도하고 있다. 현재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과 청문회 소식, 검찰 개혁 문제들을 실시간으로 속속들이 보도 중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전직 일본언론 기자는 프레스맨에 “한국에 대한 부정적 보도를 통해 일종의 쾌감을 느끼고자 하는 일부 시청자층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는게 아닌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한 가운데 다른 한 편에서는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언론 보도 등에 맞서 시민 사회를 중심으로 자제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속속 일고 있다.

일본 진보단체인 희망연대는 지난 달 27일 도쿄 중의원 회관에서 집회를 열고 혐한 보도에 대한 팩트 체크 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희망연대는 시민들로부터 7월 이후의 신문과 잡지, 방송을 대상으로 혐한 보도 사례를 모아 전문가의 분석을 거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신문노조연합(신문노련)도 이달 6일, 혐한 보도 자제를 호소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신문노련은 ‘혐한 부추기는 보도는 그만하자’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한일 대립 배경에는 과거의 잘못과 복잡한 역사적 경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정부 주장의 문제점이나 약점을 다루려면 ‘국익을 해친다’라거나 ‘반일 하냐’며 견제하는 정치인 및 관료들이 있지만 그런 것에 말려 들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9일 발매되는 주간포스트 광고. 한국이 필요없다며 ‘단한(断韓)’을 주장한 지난 특집과 달라진 톤이지만, 반한(反韓) 보도라는 기본 입장은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최지희기자)

한편 혐한 특집기사를 실은 주간포스트 측은 SNS 등을 통해 비판이 쇄도하자 발매 당일 사죄했다. 해당 출판사인 소학관(小学館)에 글을 기고해 온 사상가 우치다 다츠루(内田樹) 씨는 “앞으로 소학관과는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작가 후카자와 우시오(深沢潮) 씨 역시 “차별 선동”이라며 주간포스트의 연재 중지를 표명했다. 

9일 발매되는 주간포스트의 머릿기사는 “한국의 ‘반일’을 키운 일본의 ‘친한(新韓) 정치가’들”이라는 제목으로 결정됐다. 혐한을 부추긴 지난 특집과는 달라진 톤이지만, ‘반한(反韓) 보도’라는 기본 입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모습이다. 

언론의 편향된 보도로 인해 한일 정세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관계가 악화되면서 상대방을 제대로 파악할 여유가 없는 때일 수록 정확한 정보의 중요성은 한일 양국에서 더욱 커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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