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민영방송 각사 일제히 톱뉴스로 다뤄···전문가 “아버지처럼 언론 활용 탁월”

7일 오후 총리관저에서 결혼 보고 회견을 갖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와 다키가와 크리스텔(이미지: FNN 뉴스 화면 캡쳐)
7일 오후 총리관저에서 결혼 보고 회견을 갖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와 다키가와 크리스텔(이미지: FNN 뉴스 화면 캡쳐)

(도쿄=프레스맨) 최지희기자 = 지난 7일 오후, 일본의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 중 하나로 꼽히는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38) 중의원의원이 인기 여성 아나운서 다키가와 크리스텔(滝川クリステル・42)과 ‘속도위반’ 결혼 계획을 밝혔다. 이들이 결혼 보고 회견을 한 곳은 다름아닌 총리관저. ‘소리반(総理番)’이라 불리는 총리전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만면에 미소를 띈 커플의 결혼 보고 ‘회견’은 전국에 생중계됐다.

“총리관저라는 곳에서 말씀드리게 되어 매우 송구스럽지만 저도 드디어 결혼하게 됐습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스가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과의 면담을 끝내고 나온 고이즈미 의원 입을 열자 카메라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졌다. 자민당 소속으로 대표적인 ‘포스트 아베’ 주자의 한 명인 고이즈미 신지로는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한 총리로 익숙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의 차남이다.

고이즈미 의원은 스스로를 ‘정치 바보’라 칭하며 미혼의 ‘훈남’ 이미지를 앞세워 각종 여론조사에서 현직인 아베 총리와 차기 총리 적합도에서 1위를 다툴 만큼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정치인이다. 그의 형은 안방 극장을 달구는 유명 배우 고이즈미 고타로(小泉孝太郎)다.

이들의 급작스런 결혼 보고는 이날 방송 각사를 통해 생중계됐으며 저녁시간대 방송의 톱뉴스로 다뤄졌다.(이미지: FNN 뉴스 화면 캡쳐)
이들의 급작스런 결혼 보고는 이날 방송 각사를 통해 생중계됐으며 저녁시간대 방송의 톱뉴스로 다뤄졌다.(이미지: FNN 뉴스 화면 캡쳐)

상대인 다키가와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후지 TV 아나운서로 활동하다가 프리랜서로 전향한 뒤 현재 방송MC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13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출석해 도쿄 올림픽 유치에 공헌하면서 스타덤에 오르기도 했다.

이날의 회견 전모에 대해 보도한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이들의 총리관저 방문은 사전에 언론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 관저에 이들이 등장하자, 총리 및 관방장관을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내빈을 체크하기 위해 대기중인 기자 10여명이 몰려들어 방문 용건을 물었다. 고이즈미 의원은 “(관방)장관을 만나러 왔다”, “(용건은) 나중에 얘기하겠다”고 답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기자들 사이에선 즉시 ‘혹시 결혼 보고 아니냐’는 추측이 쏟아졌다. 이후 긴급회견을 대비해 상주중인 언론 각 사의 카메라 기자들이 속속 집결했다. 면담을 끝낸 후 나온 고이즈미와 다키가와는 자연스레 기자들이 모인 곳으로 결어왔고, 현장에서 결혼을 발표하는 ‘회견’이 시작됐다.

방송국들은 급히 이들의 결혼 보고 회견을 생중계했다. 고이즈미 의원에 따르면 6일과 9일은 ‘원폭의 날’에 해당돼 “이런 날 사적인 발표를 하는 것은 피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7일로 결정했다고 한다. 면담 당일 오전에 직접 스가 관방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이같은 일련의 행동을 두고 “모든 것이 치밀한 계산아래 이뤄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마이니치방송 프로듀서이자 도시샤(同支社)여자대학 준교수 가게야마다카히코(影山貴彦)씨는 “주간지에 결혼보도가 나오기 전에 각 방송사의 와이드쇼 시간을 노리고 일제히 정보를 발신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그는 “극장형 결혼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나 본다. 아버지인 고이즈미 전 총리와 아들이 모두 언론을 이용하는 법이 탁월하다”고 덧붙였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정치 스타일은 ‘극장정치’로 통한다. 정치적 난관에 부딪히면 자신과 상대를 관객(국민)앞에 대비시킨 뒤 절묘한 시점에 선택을 강요하는 승부수를 던지는 스타일 때문이다.

차기총리적합도 조사에서 1위를 다투는 고이즈미 신지로 자민당 의원(이미지: 고이즈미 신지로 오피셜 사이트)
차기총리적합도 조사에서 1위를 다투는 고이즈미 신지로 자민당 의원(이미지: 고이즈미 신지로 오피셜 사이트)

이같은 ‘극장정치’에 탁월한 매개가 되어준 것이 주로 낮시간대에 방영되는 민영방송사의 와이드쇼(뉴스와 토크쇼의 중간 형태)였다. 이를 통해 해당 시간대의 주요 시청자층인 주부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어냈다.

정치와 미디어 관계에 정통한 오사카 이와오(逢坂巌) 고마자와(駒沢)대학 준교수는 의원이 관저에서 결혼 보고를 하는 것은 “일반적인 사회 예의로서 허용될 수 있다”고 봤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7일 밤 민영 방송국의 보도 채널이 일제히 톱뉴스로 이들의 결혼 발표를 다루는 등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9월 내각 개편을 할 방침으로 조정 중인 가운데 “관저에서 총리에게 결혼을 보고할 수 있는 입장이라고 어필하고 싶은 고이즈미 의원과, 그의 인기에 편승하려고 하는 정권의 PR을 언론 스스로가 담당하고 있는게 아닌가”라며 우려했다.

저작권자 © 프레스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