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플랫폼 활용한 일자리 창출 증가…취업 장벽 낮추는 효과도

#1. 40대 후반의 여성 송모씨는 마케팅과 정책 분야의 전문가다. 그는 다양한 일을 하면서 수입을 얻는다. 자신의 전문 분야와 관련된 주제로 종종 특강을 나가기도 하고, 간혹 기업체나 공공기관에서 의뢰한 조사∙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해주기도 한다. 그는 한때 마케팅 회사를 운영한 적도 있지만, 자신이 원할 때 유연하고 자유롭게 일을 하는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 한다. 송씨는 스스로를 가리켜 ‘긱 워커(Gig Worker)’라고 말한다. 긱 워커는 이른바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시대를 맞아 자신의 여건과 환경에 맞게 임시적 혹은 일시적인 일감을 받아 근로를 제공하고 보수를 얻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2. 국내 최대 이커머스(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은 혁신적인 배송 시스템으로 자주 화제에 오르곤 한다. 고객이 주문을 하면 마치 로켓처럼 빠른 속도로 제품을 배송해주는 ‘로켓배송’이 대표적인 사례다. 쿠팡은 최근 유통업계에서 점차 인기를 얻어가고 있는 ‘새벽배송’에서도 앞서가고 있다. 새벽배송은 고객이 야간에 신선식품을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에 집까지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주부들이나 1~2인 가구 등 젊은 세대에게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쿠팡은 지난해 ‘쿠팡플렉스(Coupang Flex)’라는 새로운 방식의 배송 서비스를 선보이며 세간의 시선을 모으기도 했다. 쿠팡플렉스는 일반인들이 자신이 원하는 날짜와 시간, 지역에서 제품 배송 업무를 하고 수입을 얻을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다. 가정주부, 은퇴자, 미취업자, 자영업자 등 누구나 지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개개인의 일정에 맞춰 유연하게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일자리 시장에서 틈새시장을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취업 장벽을 낮추는 효과도 적지 않다는 평가다.

이른 새벽 쿠팡맨이 야간에 주문된 신선식품을 고객들의 집으로 배송하고 있다. (사진=쿠팡제공)
이른 새벽 쿠팡맨이 야간에 주문된 신선식품을 고객들의 집으로 배송하고 있다. (사진=쿠팡제공)

일자리 시장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평생직장, 평생직업의 시대는 이미 옛말이 된 지 오래이고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더욱이 인공지능, 로봇,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을 앞세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일자리의 형태나 일의 방식도 근본적인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인 추세다. 직업과 직장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과 태도에 얽매여 있다가는 어느 날 갑자기 도태될 위험성이 높아졌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8년 발간한 <인간기술융합 트랜스휴먼 시대에 따른 미래 직업세계 연구> 보고서에는 일자리 시장의 변화와 관련된 흥미로운 전망들이 제시돼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상위 10위 미래 이슈 중에서 발생 가능성 기준으로 1위에 오른 것이 ‘플랫폼 노동 증가와 특수고용종사자의 확산’이었다. 

상위 10위 미래 이슈에는 일자리∙경제와 관련된 항목이 4개나 포함됐는데, 그 중에서도 플랫폼 노동 증가가 첫손가락에 꼽힌 것이다. 이밖에 신(新)중년의 제2의 인생 설계 증가(5위), 인공지능과 협업하는 근로자 및 사업가 등장(8위), 국내 10대 기업의 인공지능 활용 채용 및 부서 배치 도입(10위) 등 우리들의 코앞에 다가온 근(近)미래에는 일자리 변화가 가장 큰 이슈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플랫폼 노동은 앞서 언급한 쿠팡플렉스 근무자나 글로벌 차량공유 서비스 기업 우버(Uber)의 드라이버 파트너처럼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이런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을 ‘플랫폼 노동자(Platform Worker)’라고 한다. 

<인간기술융합 트랜스휴먼 시대에 따른 미래 직업세계 연구>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팀은 “앞으로 지능화된 일자리 플랫폼을 통한 노동의 거래가 확대되면 현재의 일반적인 고용관계는 변화할 것”이라며 “취업 역량이 높은 소수는 기회가 많아지는 반면 취약계층의 일자리 안정성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 언급된 미래의 직업세계는 우리 앞에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 현실이 된 것도 있다. 모바일 등 디지털 기술 발달을 활용해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최근 플랫폼 노동이 확산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가속화에 따른 기술과 산업의 융합, 기업들의 경영방식 변화, 고용시장 재편 등으로 향후 플랫폼 노동의 확산은 대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긱 이코노미’의 확산도 일자리 시장의 구조적인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 긱 이코노미는 특정한 프로젝트나 일시적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노동력이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공급되는 경제 환경을 의미한다. 1920년대 미국의 재즈 공연장에서는 필요에 따라 즉석에서 연주자를 섭외해 공연하는 것을 ‘긱’이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비롯된 용어가 긱 이코노미다.

긱 이코노미는 개인들이 기업 등 고용주와 전형적인 근로계약을 맺지 않아도 자신의 노동력을 통해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된다. 긱 노동자는 회사에 고용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근로 여부나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성을 지닌다. 지난해 국제노동기구(ILO)는 긱 이코노미가 미래의 노동공급 방식, 일자리의 규모 및 내용, 산업구조 등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한 바 있다.

긱 이코노미는 플랫폼 노동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한국은행은 지난 1월 <글로벌 긱 경제(Gig Economy) 현황 및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우버 등과 같은 ‘디지털 노동 플랫폼(Digital Labor Platform)’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서비스의 수요자와 공급자를 직접 연계하는 운영체계로서 긱 이코노미 활성화에 핵심적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긱 노동자들이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함으로써 업무 탐색, 보수 수령, 근로시간 문제 등을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긱 이코노미의 활성화는 고용시장에도 상당한 파급효과를 미친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특정한 능력이나 기술이 적용되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뿐 아니라 노동 유연성을 토대로 비(非)경제활동인구의 노동시장 참여를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디지털 노동 플랫폼 산업 규모는 2017년 총 매출액 기준으로 약 820억달러에 이른다. 전년 대비 65%나 성장했을 만큼 빠르게 커지고 있다. 또 2018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EU 14개국 성인의 9.7%가 긱 노동에 종사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긱 이코노미와 플랫폼 노동이 글로벌 메가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고용 없는 성장’이다. 물론 경제성장률도 둔화되고 있지만, 그나마 소폭 성장을 해도 일자리 증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문제다. 게다가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주로 자영업자들이 고용에 많이 기여하는 저임금 일자리가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일자리 문제에 관한 한 아주 복잡한 상황으로 점점 더 빠져들고 있다. 기업들의 고용 부진에 따른 청년들의 취업난, 은퇴자나 고령자의 생계형 취업 문제, 경력단절 여성들의 재취업 문제 등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하나같이 무겁다. 

이런 상황에서 긱 일자리나 플랫폼 일자리의 중요성과 활용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다만 새롭게 부상하는 근로방식이기 때문에 정부나 국회가 긱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 마련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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