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이나기시 중앙도서관, “ ‘독서 통장’으로 돈 대신 지식 쌓으세요” 

도쿄 이나기 시 중앙도서관에서 발급 중인 ‘독서 통장’. 왼쪽부터 도서 대출 날짜, 도서명, 저자명이 기재되어 있다. (사진=최지희기자)

(도쿄=프레스맨) 최지희기자 = 한 손에 통장을 쥔 채 창구 앞에 선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흡사 은행에 온 둣한 착각이 들지만, 이곳은 돈 대신 책이 오가는 곳이다. 도쿄 이나기(稲城) 시 중앙도서관에는 ‘독서 통장’을 만들어 돈 대신 마음의 양식을 저축하는 기계가 있다. 

책을 대여하고 반납하는 창구에 가면 은행에서 볼 수 있는 ATM(현금자동인출기)이 아닌 독서 통장 기계를 발견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대여를 신청한 후 기계에 ‘독서 통장’을 넣으면 출입금 내역과 잔고를 나타내는 숫자 대신 책 제목과 저자 이름이 프린트되어 나온다.

도서 대출·대여 및 반납 창구 왼편에 마련된 독서 통장 기계 (사진=최지희기자)

하나의 통장에는 총 216권의 책을 담을 수 있다. 통장 하나를 꽉 채우고 나면 특별한 스티커와 함께 새로운 통장을 제공받는다. ‘통장을 접거나 표면에 씰 등을 붙이는 것을 삼가달라’는 안내 문구는 은행 통장에서 보던 그것과 매우 비슷하다. 

‘독서 통장’을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독서통장등록신청서’ 종이에 신청 날짜, 이용자 카드 번호, 이름, 취원 및 취학 여부, 나이 등을 기록해 창구에 제출하면 통장을 만들 수 있다. 

도서관 이용증을 소지하고 있는 중학생 이하의 이용객에게는 무료로 발행을 해오고 있는 ‘독서 통장’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이나기 시 주민들에게 호평을 얻고 있었다. 아동들의 독서 생활 습관을 위해 시작됐지만 오히려 어른들에게 더욱 인기가 있는 듯 보였다. 

도서를 대여한 후 독서 통장 기계를 이용하는 이용객의 모습 (사진=최지희기자)

독서 통장을 이용하는 주민 A씨(60세)는 “그동안 읽은 책들이 어떤 것들이고, 언제 읽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좋다. 지식이 쌓이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며 독서 통장의 매력을 설명했다.   

또 다른 주민 B씨(32세)는 “빌린 책이 통장형태의 기록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며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은행 통장을 만들어 주기 전에 독서 통장을 먼저 만들어 줄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나기 시 주민들 가운데는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인구규모별(10만명 미만) 지자체들 중에서 책의 대출 권수가 항상 전국 상위권에 들어갈 만큼 독서 인구가 많다. 인구 약 9만명의 비교적 작은 규모의 도시지만 무려 6개의 도서관을 보유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앙도서관은 미나미다마(南多摩) 역 근처에 2006년 7월부터 문을 연 이나기 시의 대표적인 도서관으로 PFI (민간 자금 활용)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PFI 사업 그룹에는 서점도 들어가 있어 인기 있는 책들도 재빨리 도서관 서고로 들여놓을 수 있다.

이나기 시 중앙도서관의 어린이 도서 코너에서 책을 읽는 아이들 (사진=최지희기자)

이나기 시 중앙도서관은 어린이들이 책을 좋아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상시 마련해 놓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3월의 행사’를 알리는 달력에는 매일 하나씩 어린이를 위한 이벤트들이 계획되어 있었다. ‘엄마 무릎에 앉아 이야기하는 시간’, ‘그림책 시간’, ‘어린이 영화회’ 등 프로그램도 종류도 다양해 보였다.

도서관 직원은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하루 종일 이곳에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체재형 도서관’을 지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나기 시 중앙도서관은 널찍한 공간에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좌석도 많은 편이다. 한 쪽에는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카페까지 갖추고 있다. 

어린이용 서적 코너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림책을 붙잡고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한동안 시선이 멈췄다. 천민 자본주의의 민낯을 드러내는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일본의 한 작은 도시의 도서관과 ‘독서 통장’은 진정한 부(富)란 무엇인지를 새삼스레 생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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