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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벽 틈사이로 히키코모리의 방을 엿보다
갈라진 벽 틈사이로 히키코모리의 방을 엿보다
前히키코모리 현대미술가 와타나베 아츠시(渡辺篤) 인터뷰 
  • 도쿄=최지희 기자
  • 승인 2019.02.22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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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씨가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던 방 안 모습. 3년간의 히키코모리 생활을 마감하기로 결심한 날 그가 직접 찍은 사진이다. 그는 대소변까지 방안에서 모두 해결하는 생활을 했다. (사진=최지희기자)

(도쿄=프레스맨) 최지희기자 = “지금 이 전시회 공간에, 여러분의 옆에 히키코모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두운 조명 아래 하얀 페인트로 칠해진 직방형의 좁은 전시 공간은 어느 이름 모를 이의 방 안이다. 갈라진 흰 벽은 내가 있는 공간과 그들이 있는 공간의 경계선이다. 벽 틈으로 얼굴을 들이밀면 보이는 수많은 흑백 사진들.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공간에서 그들이 사는 방 안을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그렇게 들여다본다. 

전시된 사진들은 실제 히키코모리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방 안을 찍어 와타나베 씨에게 보낸 작품들이다. 책과 비닐봉지, 음료 캔들로 정신없이 어지럽혀진 방이 있는가 하면 단출한 가구 외엔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은 깔끔한 방도 있다. 히키코모리의 방이라 하면 쉽사리 쓰레기로 가득한 방을 떠올리지만, 다양한 인간 군상이 존재하듯 히키코모리의 방 안도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다.

히키코모리의 방이라 하면 쓰레기로 가득한 방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깨끗한 방안에서 은둔 생활을 하는 히키코모리도 있다. (사진=최지희기자)

특정 알콜 음료 캔이 잔뜩 널려 있는 방, 학술 서적이 책상 위와 방바닥에 흐트러져 놓인 방, 만화책들로 가득한 방, 전자 기타와 이불이 한데 엉켜 있는 방 등 공간을 채우는 ‘재료’도 ‘모양’도 저마다 다르다. 자신의 공간에 갇혀 가족들과 조차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히키코모리가 있는가 하면, 드물지만 이른바 ‘보통’ 사람들처럼 직장을 갖고 일을 하는 히키코모리도 있다.      

전시회를 기획한 현대 미술가 와타나베 아츠시 씨는 실제 3년간 히키코모리 생활을 겪었다. 그는 현대미술가로서 활약하고자 노력했고,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다. 마음 맞는 지인들과 함께 시민 활동에 매진하기도 했다. 

 “전시물 중에는 제 방안 사진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사진 속에 보이는 수십개의 페트병에 담긴 액체는 다름 아닌 제 소변입니다”

히키코모리 사진전을 기획한 현대미술가 와타나베 아츠시 씨. 현재는 세계를 무대로 사진전을 여는 한 편 히키코모리 커뮤니티의 운영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사진=최지희기자)

그가 유별난 벽(癖)이 있어 대소변을 방 안에서 해결한 것이 아니다. 시민 단체 활동이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미래를 약속한 파트너와는 파경을 겪었다. 마음 둘 장소를 잃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방안에 틀어박힌 생활을 3년간 하고 있었다. 

부모님에게는 ‘화장실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올 정도는 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 방안에서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식사는 모두가 잠든 밤에 잠시 빠져나와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방안으로 가져와 먹었다. 

와타나베 씨가 히키코모리 생활을 벗어나게 된 것은 갈 데까지 간 자신을 더이상 쳐다도 보지 않을 거라 여겼던 부모님이 히키코모리와 관련한 책 수십 권을 사들여 읽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부터다. 이후로 2년간의 사회 적응을 위한 회복 기간을 거쳤다. 

갈라진 벽 틈으로 히키코모리의 방을 엿보는 전시 구조는 메이저리티가 마이너리티를 바라보는 시선을 일깨워준다. (사진=최지희기자)

그는 “어느 날 갑자기 히키코모리가 되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다. 그라데이션을 그리듯 서서히 찾아와서 서서히 회복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히키코모리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 날, 그는 방안과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을 전시한 히키코모리 중 한 명은 아버지의 희망으로 법조인이 되기 위해 오랜 기간 공부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강압적이었고, 아들은 히키코모리 생활과 사회 복귀를 반복하며 점차 세상과 등지게 됐다. 그의 방안 사진에는 법률 서적들과 함께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자신을 향한 채찍질로 메모된 종이들이 시선을 끈다. 

와타나베 씨는 “누구나 히키코모리가 될 수 있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는 “마이너리티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메이저리티가 사회에서 당연한 존재라는 인식을 바꾸어야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의 가장 큰 의도 중 하나도 바로 ‘메이저리티의 자기 비판’이다. 사회의 강압과 차별 등 다양한 이유로 갈 곳을 잃고 방안으로 숨은 이들을 ‘엿보는 우리’를 비판하기 위함이다. 

사진전 관람객들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와타나베 씨 (사진=최지희기자)

전시회에는 사진을 출품한 히키코모리 당사자들이 직접 찾아오기도 한다. 과거 히키코모리들은 갇힌 공간에서 입을 다물고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와타나베 씨에 따르면 최근엔 당사자들의 커뮤니티나 당사자 매체를 통해 글로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발신’하는 히키코모리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다만 글재주가 없거나, 커뮤니티 참석조차 어려운 이들에게 비교적 낮은 허들인 ‘사진’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발신하는 장(場)을 마련한 것이 전시회를 연 또다른 목적이다. 이러한 표현은 일종의 자존감 형성으로 이어져 자연스레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와타나베 씨의 설명이다.

와타나베 씨는 “일본에만 약 150만명의 히키코모리가 있다. 히키코모리라는 단어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될 만큼 일본의 히키코모리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며 “일본 사회는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급속한 발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장애가 되거나 불편한 것들은 ‘배제’하려는 풍토가 만연했고, 민족성으로서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는 “히키코모리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다음은 당신의 차례일 수도 있다”며 “지금까지 우리가 자신과 조금 다른 이들을 모르는 사이 차별해왔다면, 이제는 의식적으로 같이 살기 위한 방안을 찾아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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