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메구로(目黒)구 도리츠다이카쿠(都立大学) 역 상권 살리기 프로젝트 취재, 그 후 

(도쿄=프레스맨) 최지희기자 = ‘상점 소개하는 가이드북이 인기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라고 가볍게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잠들기 전 엄마 팔을 베고 누워 이 가이드북을 읽어 달라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라니, 어디가 어떻게 다른 걸까. 호기심이 앞선다. 

그림책인지 가이드북인지 구분이 모호할 만큼 정성을 들인 ‘도리츠징’은 도쿄 메구로구 도리츠다이가쿠 인근 상점가를 소개하는 무료 책자다. ‘도리츠징’은 역명의 일부인 ‘도리츠(都立)’와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 ‘징(人)’이 합쳐진 말이다.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의 책자 속엔 각기 다른 붓터치와 색감으로 그려진 상점 주인들의 모습이 페이지 가득 실려 있다.   

2014년 첫 도리츠징이 발간된 이후 지금까지 총 4권의 도리츠징이 발간됐다. 사진은 창간호를 제외한 3권의 도리츠징. 맨 오른쪽이 올 가을에 발간된 최신호다. (사진=최지희기자)

도리츠다이가쿠 인근 상점가 점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가이드북 ‘도리츠징’이 도쿄 상점가를 대표하는 명물이 됐다. 도쿄도가 최근 주최한 ‘도쿄 상점가 그랑프리’에서 최우수 그랑프리상을 거머쥔 것이다. ‘도리츠징’을 계기로 발길 뜸하던 상점가를 찾는 방문객이 늘어나고, 소원했던 가게 주인 간의 교류도 늘면서 마을 전체에 활기를 가져다 준 것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도리츠다이가쿠 상점가는 인근 지유가오카(自由が丘)와 나카메구로(中目黒), 시부야(渋谷)라는 거대 상권에 둘러싸여 상대적으로 낮은 지명도에 고군분투해왔다. 개성있는 잡화점과 숨겨진 맛집 등이 곳곳에 자리해 있지만 이를 알릴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유명 상권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선 여섯 군데로 나눠진 도리츠다이가쿠 주변의 크고 작은 상점가들이 힘을 합쳤다.  
 

도쿄도가 최근 주최한 ‘도쿄 상점가 그랑프리’에서 도리츠다이가쿠 상점가가 최우수 그랑프리상을 수상했다. (이미지: 도리츠징 페이스북)

2014년 첫 ‘도리츠징’이 발간되기까지 이들 상점가의 젊은 점주들이 모여 앉아 수많은 밤을 지샜다. 물건이야 어디든 비슷하고 음식이야 맛집들이 차고 넘치는 현실 속에서 도리츠다이가쿠 상점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에 주목했다. 단순히 상점과 상품 정보를 일률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닌, 책을 손에 든 이들이 ‘이 사람, 직접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상점의 외관이나 상품 정보를 일일이 열거하는 대신 여러 일러스트 작가들이 직접 가게를 방문해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그린 점주의 모습들로 페이지를 채웠다. 여기에 상점과 점주의 소소한 이야기를 곁들였다. 

도리츠다이가쿠 인근 여섯 개 상점가의 젊은 점주들이 오랜 기간 머리를 맞댄 끝에 도리츠징이 탄생했다.  (이미지: 도리츠징 페이스북)
재즈 밴드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라면집을 경영하는 판츠 씨(오른쪽) 등 도리츠다이가쿠 상점가에 가면 그림 속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다. (사진=최지희기자)

작전은 성공을 거뒀다. 해를 거듭할 수록 입소문이 퍼져 ‘도리츠징’이 화제로 떠올랐고, 이를 계기로 상점가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새로운 가게들도 속속 들어섰다. 그리고 올 가을, 네 번째 도리츠징이 발간됐다. 총 74곳의 가게와 점주들이 도리츠징을 통해 사람들과 만났다. 

올해 도쿄도가 주최한 ‘도쿄 상점가 그랑프리’에는 총 20개의 상점가가 본선에 진출한 가운데 도리츠다이가쿠 상점가가 그랑프리의 영예를 차지했다. 일시적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단순 이벤트가 아닌 ‘지속 가능한 사업’이라는 심사평을 받았다.

재즈 밴드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라면집을 경영하는 판츠 씨, 싱어송라이터에서 플라밍고 교실 선생님이 된 미키 씨, 오랜만에 참석한 동창회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는 이자카야 점주 사와데 씨. 간판보다 먼저 떠오르는 그들의 얼굴을 찾아 ‘그 곳’에 가면, 지금 당장 그림 속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다. 

저작권자 © 프레스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