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거부 사례 2000건 넘어…소방당국 대응책 마련에 부심

(도쿄=프레스맨) 최지희기자 = 힘든 투병 생활 끝에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는 환자들 가운데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여생을 마감하길 원하는 이들이 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바람을 갖는 환자들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문제는 환자 가족이 구급대의 심폐소생을 거부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총무성 소방청에 따르면 2017년 한 해에만 전국에서 무려 2천 건 이상의 거부 사례가 보고됐다. 반면 반 이상의 소방 본부가 이러한 거부 의사에 대한 대응 방침을 정해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출동 현장에서 ‘당사자 의사 존중’과 ‘소생 조치 의무’ 사이에서 혼란이 교차하고 있는 셈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심폐소생 거부 환자가 늘면서 구급 현장에서 대원들이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늦은 저녁 도쿄 도내 주택가를 달리는 구급 차량 (사진=최지희기자)

나고야(名古屋) 시에서 의사로 일하는 가미야 요시카즈(神谷悦功) 씨는 2016년 9월, 함께 살던 아버지가 자택 욕실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심폐 기능은 이미 정지된 상태였다. 간질성 폐렴을 앓고 있던 아버지로부터는 평소 “만일 심폐 정지가 오더라도 소생 조치는 하지 말아 달라. 집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는 말을 들어오던 터였다. 가미야 씨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경찰에 신고해 통보했다.

사건성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지만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은 “아직 체온이 떨어지지 않은 상황이니 구급대를 요청하겠다”며 구급차를 불렀다. 가족은 도착한 구급대원들에게도 아버지의 의사를 전달했지만 “사후 경직이 오지 않은 상황이니 규칙대로 병원으로 이송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아버지는 병원에서 사망이 확인됐고, 결국 집으로 돌아온 것은 약 6시간 뒤였다. 가미야 씨는 “두 딸들이 ‘할아버지 몸에 손대지 말라’며 울부짖었다. 구급대를 탓할 생각은 없지만 가족과 아버지의 희망을 이루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본의 대학 병원 전경 (사진=최지희기자)
대학병원 응급실. 일본에서는 작년 한 해에만 심폐소생 거부 사례가 최소 2,015건 접수됐다. (사진=최지희기자)

총무성 소방청은 2018년9월 소생 거부 사례에 대한 첫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7년 심폐소생 거부 사례는 전국 728개 소방 본부 가운데 403개 본부에서 최소 2,015건이 접수됐다. 소생 거부 의사에 대한 대응 방침을 정해두지 않은 소방 본부는 전체의 54%에 달했다. 

소방법에 따르면 구급 이송이나 심폐 소생을 구급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지만 소생 중지에 대한 규정은 없다. 한 구급대원은 “가족의 설명만으로는 생전의 의사를 판단할 수 없지 않나. 소생 조치를 거부 당해도 임무를 다해야 한다고 본다”고 의견을 밝혔다. 

관련 대책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구급대원과 의사들로 구성된 일본임상구급의학회는 2017년 4월 심폐 정지 후 소생 조치를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사전에 서면으로 남긴 경우에도 우선은 조치를 취해야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주치의와의 직접적인 연락을 통해 구체적인 지시가 내려지는 경우에 한해 중지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제언을 받아 사이타마(埼玉) 현 도코로자와(所沢) 시 등 5개 시를 관할하는 사이타마 서부소방국은 같은 해 12월에 구체적인 메뉴얼을 만들었다. 관내에서는 2018년부터 9월말까지 17건의 해당 사례가 보고된 바 있으나 모두 특별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사이타마 서부소방국 구급과는 “메뉴얼 작성 전엔 현장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보고가 올라왔었지만 지금은 해소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 일본임상구급의학회 사카모토 데츠야(坂本哲也) 대표이사는 “현재는 일부에서만 규칙이 마련되어 있는 상황”이라면서 “국가차원에서 통일된 룰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무성 소방청 검토부회는 소생 거부에 대한 대응법을 포함한 구급 업무 전반에 대해 논의 중으로, 2019년 1월 경까지 의견을 정리할 방침이다. 소방청 구급기획실은 “정리된 의견을 토대로 대응책을 검토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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