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거부 기업 속출로 인한 퇴직 도우미 서비스 인기
원만퇴직을 위한 퇴직대행서비스 주목

(도쿄=프레스맨) 김민정기자 = 도쿄에서 IT기업에 다니는 한국인 이 모 씨는 매일 극심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일은 많은데 일손은 늘 부족하다. 이 모 씨는 잔업수당을 보장받고 있지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퇴사도 고려하고 있다. 다만, 퇴사를 하겠다고 말을 할 생각을 하니 눈 앞이 캄캄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일을 하다간 건강을 해칠 것 같기도 하다. 퇴사를 두고 오래 고민했다는 이 모 씨는 “농담으로 블랙기업(사원에게 과중노동, 위법노동을 요구하고, 정신적인 압박 등을 주는 기업)이라고 말하는 동료들도 있지만, 상사도 의지할만한 사람이고 월급도 적지 않아 견딜만 하다.”고 답한다. 이 모 씨의 경우엔 양호한 편이다. 일본의 블랙기업들은 장시간 노동, 적은 급여에 정신적으로 상처가 되는 말로 직원들을 내몰거나, 또는 억지로 일하게 한다. 퇴사 처리를 해주지 않는 회사야말로 최근 들어 최악의 ‘블랙기업’으로 꼽히고 있다. 

이처럼 직원의 퇴사 처리를 해주지 않는 회사들이 증가하면서 ‘퇴직 대행 서비스’ 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퇴직 대행 서비스’는 퇴사를 원하지만 회사에 퇴사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을 때, 여러 번 회사측에 퇴사 의사를 밝혔지만, 퇴사 처리를 해주지 않을 때 대신 회사측과 상담해 퇴사를 성사시키는 서비스를 말한다.  

퇴직대행사 'EXIT'의 홈페이지. 니노 토시유키(新野俊幸)대표는 다른 나라들처럼 편하게 퇴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일본사회의 과로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퇴직대행사를 세웠다.(출처='EXIT' 홈페이지)

퇴사를 하는데도 남의 손을 빌려야 할까? 현재 퇴직 대행 서비스 회사로 각 언론들의 취재를 받고 있는 EXIT에 따르면 퇴사를 원하는 사람은 크게 세 가지 타입이 있다고 한다. 상사가 고압적이어서 퇴사란 말도 꺼내지 못하고 참고 있는 경우, 퇴직 의사를 밝혔는데 회사가 퇴사 처리를 해주지 않는 경우, 직장에 가지 않고 퇴사 처리를 하고 싶은 경우다. EXIT에서는 정규직 5만엔, 비정규직 4만엔에 퇴직 처리를 대행해 준다.  

NHK 보도에 따르면, 오사카에 거주하는 한 20대 일본인 여성은 고령자 데이 케어 센터에서 주 5회 파트타이머로 일했다. 고령자의 목욕을 담당했는데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등의 성추행이 끊이질 않았고, 회사측에 개선 요구를 했지만 회사측은 내내 여성에게 참으라고 조언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일손 부족을 이유로, 또 주변에 민폐가 된다며 퇴사를 미루라는 이야기만 오갔다. 이 여성의 경우도 4개월간 회사와 퇴사를 두고 옥신각신한 끝에, 퇴직 대행 서비스를 이용해, 즉각 퇴직처리를 받았다. “적은 급여, 성추행, 사람 귀한 줄 모르는 회사, 4만엔을 주고 이런 불합리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비싼 값은 아니다.”고 이 여성은 말했다. 

일본 민법에서는 사직서를 제출하면 2주내에 무조건 처리해야 하며, 2주 후에는 퇴사할 수 있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즉 퇴사는 일하는 사람의 권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사람을 찾아내 인수인계를 해놓고 퇴사 하라고 강요하거나, 퇴사 하면 손해 배상을 청구하겠다며 엄포를 놓은 회사도 있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전국 각지의 노동국 퇴직 상담 중, 퇴직 트러블로 인한 상담이 지난 해 3만 9천건에 달했다. 지난 10년 사이에 두 배나 증가한 수치다. 상담 내용의 대부분은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데 퇴사 시켜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퇴직대행사 EXIT의 니노 토시유키(新野俊幸)대표도 IT기업을 퇴직할 때 상사로부터 “채용에만 천만엔에 들었다.” “생각이 짧다.” 등의 이야기를 내내 들어야 했다. 상사도 인사담당자도 고압적이었다. 니노 대표는 세 번 퇴사한 경험을 살려, 퇴사를 조금 더 가볍게 할 수 있는 문화가 일본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퇴직 대행사를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퇴사하는 일이 사회에 큰 민폐를 끼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는데, 일하는 이들이 더 편하게 일을 그만둘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니노 대표는 퇴직 대행을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라고 자신한다. 과로사 등을 막기 위해서 꼭 필요한 서비스라며, 앞으로는 일을 그만둔 사람들에게 꼭 맞는 직장을 소개하는 인재 고용 서비스측과 연계할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퇴직대행사가 잇달아 문을 열면서, 퇴직 대행 가격도 3만엔까지 내렸다. (출처=퇴직대행사 'SARABA' 홈페이지)

일손 부족과 극심한 업무 압박, 장시간 노동, 오르지 않은 급여에 퇴사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까지 더해져, 탈출구조차 없는 일본의 노동시장. 기업에는 큰 개혁이 요구되고 있지만 대책 마련이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퇴직대행사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NHK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도 퇴직 대행사 출현을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EXIT의 경우엔 이미 외국 투자사측의 투자 제안도 받은 상태다. 더 쉽게 직장을 그만 둘 수 있는 문화가 일본에 정착된다면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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