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표현방식·가격 모두 내 맘대로…이익보다 종이매체 통한 교류 중시

(도쿄=프레스맨) 최지희기자 = 어디서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이 일상이 된 시대다. 종이책을 마지막으로 손에 잡아본 지 얼마나 됐을까. 어떤 이에겐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독서 많이 하는 나라’로 손꼽히던 일본 역시 종이 출판물의 판매액은 해가 갈수록 줄고 있다. 13년 연속 전년보다 판매액이 감소하고 있다는 출판과학연구소의 통계가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요즘이다. 

다양한 종이 출판물 가운데서도 잡지의 경우 특히 판매 부진에 애를 먹고있다. 매니아 층을 즐겁게 해주던 다양한 주제의 잡지들이 줄줄이 폐간하고 있는 것은 물론, 유명 패션지들 역시 잡지 속 글이나 사진보다 덤으로 주는 부록에 승부를 거는 모양새다. 최근에는 굳건하던 만화잡지 시장마저 급격한 쇠락기를 맞이했다는 소식이 알려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스마트폰 등의 디지털 파고에 밀려 올 상반기에만 12종의 만화잡지가 발간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도쿄 메구로구에 위치한 진(ZINE) 전문점 ‘MOUNT ZINE’에서는 예술감성 충만하며 개성 넘치는 200여종의 진을 만날 수 있다. (사진=최지희기자ⓒ프레스맨)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대로 표현하는 잡지, 진(ZINE)은 그래서 지금 더욱 빛을 발한다. 진은 잡지(Magazine)와 동인지(Fanzine)를 어원으로 한 단어로, 제작부터 출판까지 모두 자비로 이루어지는 1인 출판물이다. 미국에서는 90년대 스트리트 컬쳐와 함께 진이 유행한 바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진을 만드는 ‘입문서’까지 출판되고 있을 정도로 꾸준한 팬 층을 확보하고 있다.

진은 잡지라고 하기에는 분량이 적고 크기도 손바닥 보다 조금 더 큰 정도가 주류다. 동인지가 특정 장르의 문화를 공유하기 위한 장이라면 진은 보다 폭넓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장이다. 그만큼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내용과 방식으로 표현된다. 

제작부터 출판까지 모두 자비로 이루어지는 1인 출판물 진(ZINE) 전문점 ‘MOUNT ZINE’ (사진=최지희기자ⓒ프레스맨)

도쿄 메구로(目黒)구 도리츠다이가쿠(都立大学) 역 근처에는 만든 이들의 열정과 추억을 가득 담은 진 전문점 ‘MOUNT ZINE’이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회사원이 여행 꿀 팁을 A부터 Z까지 전수해주기도 하고, 본업이 간호사이면서 셀프 카메라를 찍는 것이 취미인 여성은 진을 통해 ‘셀카 잘 나오는 법’을 소상히 알려주기도 한다. 단짝 친구와 둘이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 만든 각각의 책자는 내 안의 타인, 타인 안의 나를 표현하는 진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예술 감성 충만하고 개성 넘치는 약 200종의 진이 독자들을 맞이하는 중이다. 

근무 시간에 항상 꾸벅꾸벅 조는 상사를 보고 감흥이 일어 ‘조는 모습’을 타입별로 구분한 ‘이네무리(居眠り・주로 앉아서 조는 것) 사전’은 방문객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팔짱을 낀 채 무언가를 생각하는 척하면서 조는 타입, 양손으로 얼굴을 받치고 집중하는 듯한 자세로 잠드는 타입, 서류를 읽는 척 하면서 조는 타입 등 각양각색의 스타일이 소개되고 있다. 제작자는 뜨거운 관심에 힘입어 시리즈 2탄을 준비중이다. 사무실에서 조는 모습을 정리한 1탄과는 달리 2탄에서는 전철에서 조는 사람들을 코믹하게 그려낼 생각이다.  

‘조는 모습’을 타입별로 구분한 ‘이네무리 사전’ (사진=최지희기자ⓒ프레스맨)
‘조는 모습’을 타입별로 구분한 ‘이네무리 사전’ (사진=최지희기자ⓒ프레스맨)

처음부터 끝까지 사진으로만 도배된 진이 있는가 하면, 일기에 가까운 소소한 일상으로 페이지를 가득 채운 진도 있다. 가격은 제작자 개인이 설정한다. 300엔짜리부터 1,500엔이 넘는 것까지 다양하다. 이익을 남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에 비용에 구애 받지 않아 다양한 재질의 종이를 사용한 진을 만날 수 있다. 

진은 혼자서 만드는 책자이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그리고 만들고 난 뒤에도 타인과 함께하게 된다. ‘MOUNT ZINE’에서는 진 입문자를 대상으로 한 강의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자신이 만든 진으로 도쿄와 폴란드, 태국 등 국내외에서 이벤트를 열기도 하고, 온라인 및 오프라인을 통해 전시하거나 판매할 수도 있다. 대개 제작자의 간단한 프로필과 연락처를 진에 남기는데, 이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거나 교류가 확대되기도 한다.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도 자비 출판을 한 적이 있다. 은하철도 999로 잘 알려진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 역시 자비로 동화를 출판했다. 종이 출판물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지금도 많은 일본 사람들이 진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나를 발견하는 중이다.

저작권자 © 프레스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