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맨] 오키나와현(沖縄県)나하시(那覇市)사카에마치(栄町)시장. 제2차대전 당시 이곳은 오키나와 현립 제일여고(沖縄県立第一高等女学校)였던 곳이다. 이곳의 여고생들은 오키나와 육군병원에 간호요원으로 강제동원되었고, 미군의 공격 및 집단 자결로 200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녀들은 ‘히메유리(ひめゆり) 학도대’라고 불렸고, 현재 오키나와에는 ‘히메유리의 탑’이 있어, 그들의 영혼을 달래고 있다. 그런 비극을 가진 고등학교 건물은 패전 후, 도깨비 시장으로 탈바꿈 한다. 미군 부대에서 나온 물건들이 이 도깨비 시장에서 거래되었다. 현재도 150여개의 가게가 늘어선 로컬 마켓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오키나와전에 간호보조로 동원된 200명 이상의 여고생들이 전쟁과 자결로 인해 사망했다. 사카에마치 시장은, 이 여고생들의 학교가 패전 후, 도깨비 시장으로 변하면서 생긴 곳이다. (사진=김민정기자)
사카에마치 시장은, 동대문 남대문 시장처럼 큰 시장이 아니라, 시골마을의 5일장 등이 들어서는 장터의 외곽과 같은 분위기다. 1평이 될까말까한 가게들이 옹기종기 줄지어 앉아 채소며 고기, 건어물, 반찬 등을 팔고 있다. (사진=김민정기자)<br>
사카에마치 시장은, 동대문 남대문 시장처럼 큰 시장이 아니라, 시골마을의 5일장 등이 들어서는 장터의 외곽과 같은 분위기다. 1평이 될까말까한 가게들이 옹기종기 줄지어 앉아 채소며 고기, 건어물, 반찬 등을 팔고 있다. (사진=김민정기자)

사카에마치 시장에는 정육점도 있고, 채소가게도 있으며, 건어물 가게, 옷가게, 선술집과 음식점, 그리고 작은 카페도 있다. 하나같이 규모가 작은 것이 특징이다. 1평에서 2평짜리 가게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간신히 간이 천장으로 뒤덮인 곳도 있고, 아예 밖으로 나온 노점들도 있다. 이 사카에마치 시장의 유일한 서점은 ‘미야자토 소서점’. 헌책과 새책을 동시에 취급하는. 2평이 될까말까한 협소한 책방이다. 매일 ‘미야자토 소서점(宮里小書店)’에 앉아 가게를 보는 미야자토 아야하(宮里綾羽)부점장. 그녀는 지난해 겨울, 시장에서 만난 이와 책에 관한 스토리를 풀어낸 에세이를 발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과로로 회사를 그만둔 후, 어떻게 살지 고민이 많았다는 미야자토 아야하 씨는, 한국어를 배우러 한국에 가기도 하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책을 읽으며 고된 날들을 버텼다. 현재는 작은 책방의 운영자이자 잡지의 필자로, 두 아이의 엄마로 자신만의 소확행을 찾아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사진=김민정기자)

Q 시장에 서점이라니 독특한데요?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퇴직 후, 사카에마치 시장에서 술을 마시는 걸 좋아하셔서 여기 서점을 내게 되셨어요. 아버지가 점장이고 저는 부점장입니다.

Q 하루에 손님이 얼마나 오나요?

많아야 10명쯤이요.

Q 장사는 잘 되는 편이에요?

제가 3년반 여기 앉아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장사는 잘 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어요. 어떤 손님께는 제가 좋아하는 책을 권하기도 하고, 어떤 손님은 묵묵히 책을 보다가 사가지고 가기도 합니다. 일단 여기 3년 앉아서 장사를 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같아요. 여기서 책방을 하면서 책도 냈고, 또 여기저기 글도 쓰고 있습니다.

Q 원래 오키나와 출신이신가요?

네, 대학은 도쿄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영화 회사를 다니다가 적응을 하지 못하고 다시 오키나와로 돌아왔어요.

Q 왜 서점에서 일하게 되신 건지?

대학 시절에는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도쿄에서 일을 하면서 과로를 했는지 삶에 대한 회의를 느꼈고, 오키나와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카페에서 알게된 한국인과 친구가 되어서 한국에 가서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어요. 다시 오키나와로 돌아와 일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아버지도 연구 등으로 바쁘셔서 서점을 볼 사람을 찾고 있다기에 제가 맡기로 했지요.

Q 서점 부점장이 되신 기분은?

처음 며칠은 청소를 하고, 책을 닦고, 선반을 닦고, 책에 가격표를 붙이느라 온종일 가게에만 붙어 앉아 있었죠. 맞은 편에 계시는 옷집 아주머니가 “너무 열심히는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때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오래 가게를 하는 것이 잠깐 인기를 타거나, 많이 팔리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요. 그날부터 시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장도 보기 시작했어요. 손님은 올 때도 있지만, 안 올 때도 있고, 그건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초조해하기보다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려 보기로 했지요.

Q 손님에게 책을 권하는 편인가요?

저에게 책을 권유해달라는 분들께는 제가 권유해드리고, 아니신 분들은 자유롭게 구경하다 가십니다.

Q 도쿄에서 일할 때보다 지금 더 행복한가요?

지금은 아이들도 있고, 가게도 제 나름대로 꾸려나가고 있어요. 도쿄에서 불행했다기보다, 저는 도쿄에서 직장생활에 패배한 거죠. 솔직하게 패배했어요. 지금은 이렇게 뜨거운 시장 한 복판에 앉아, 음식도 아니고 옷도 아닌 책을 팔고 있습니다. 음식과 옷과는 달리 책이 꼭 필요한 게 아닐 수도 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시장 안으로 책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 더위 속에 선풍기를 켜고 앉아 책을 파는 거지요. 그것만으로 무척 뿌듯함을 느낍니다.
 

간신히 천장만 있는 '미야자토 소서점'. 3평이 될까말까한 공간에 헌책과 새책이 나란히 자리한다. (사진=김민정기자)
간신히 천장만 있는 '미야자토 소서점'. 3평이 될까말까한 공간에 헌책과 새책이 나란히 자리한다. (사진=김민정기자)

미야자토 씨의 아버지는 오키나와 시청 직원이자, 40년간 오키나와 마츠리를 녹음하고 편집해온 연구가이며, 에세이스트로 잘 알려진 미야자토 센리(宮里千里)씨다. 미야자토 센리 씨는 학교가 파한 아이들이 편한 마음으로 찾아올 수 있는 곳을 시장 안에 만들고자 ‘미야자토 소서점’의 문을 열었다. 

미야자토 아야하 씨는 여기저기 연구자료를 모으로 다니는 아버지를 대신해 서점을 운영하며, 무가지 잡지를 만들고, 여기저기 연재를 하며 지내고 있다. “서점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여기저기서 글을 써 달라는 의뢰가 많이 들어 온다. 글을 쓰는 일도 재미난 일”이라고 말한다. 덕분에 지난해에는 사카에마치 시장에서 일하는 이들과 찾아오는 손님들의 스토리를 풀어놓은 에세이 ‘오늘의 사카에마치 시장과 여행하는 소서점’을 펼쳐냈다. 

사카에마치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녀가 시장에 들어온 일을 반가워하고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멀어지는 재래 시장에 젊은 여성이 들어와 서점을 운영하는 일은, 그만큼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서점만이 승승장구하는 시대에, 작은 재래시장의 두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헌책과 새책을 섞어 파는 일은, 아무리 보아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기에 그녀는 글을 쓰고, 때로는 토크쇼에도 나가며 꾸준히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좋아하는 책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 퇴근 시간을 지켜 아이들을 데리러 갈 수 있다는 것,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와 여유로운 시간이 흐르는 고향 오키나와의 땅에서 살고 있다는 것, 미야자토 씨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사카에마치 시장의 작은 헌책방에서 일구고 있다.

 

저작권자 © 프레스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