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엔 규모 관민펀드, 총 투융자액 310억엔 중 44억 엔 손실

지난 20여년 동안 당파를 초월해 추진됐던 일본의 콘텐츠 진흥 전략 '쿨재팬(Cool Japan·매력 일본)전략’에 파열음이 들려온다. 2002년 정권을 잡은 자민당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郞) 정부가 일본의 콘텐츠에 대한 해외수출 지원을 근간으로 추진했던 '쿨재팬 전략'은 2009년 민주당 정권을 거쳐, 2013년 자민당의 아베 신조 정권으로 까지 이어지면서 콘텐츠산업을 주변산업과 일체화시켜 해외시장을 공략한다는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는 등 성공적인 전략으로서 자리매김하는 듯 했으나, 최근들어 '쿨재팬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한 민관펀드 '쿨재팬(CJ) 기구'가 손댄 프로젝트마다 거액의 손실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쿨재팬 전략' 성공에 대한 의구심의 목소리가 일본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쿨재팬 기구'의 정식명칭은 ‘주식회사 해외수요개척지원기구’로, 정부가 85% 출자해 지난 2013년 11월에 설립된 1000억엔 규모의 관민펀드다. ‘일본의 매력’을 사업화하는 것이 주된 역할로, 지금까지 29건, 투자액 기준으로는 총 620억 엔으로 이 중 정부의 투자액은 586억 엔에 달한다. 사업의 실패는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남는 셈이다. 

대표적인 투자손실 사례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 번화가에 세워진 ‘이세탄 the Japan store’ 백화점이다. ‘쿨재팬 기구’가 약 9억 7000만엔(49%), ‘미쓰코시이세탄(三越伊勢丹) 홀딩스’의 현지 자회사가 10억 1000만엔(51%)를 출자해 지난 2016년 10월에 오픈했다. 하지만 현지의 물가를 고려하지 않은 비싼 가격 책정으로 매출 확대에 고전하면서 적자가 지속되자 지난 6월 '쿨재팬 기구'는 미쓰코시이세탄 측에 지분을 매각하고 사업에서 발을 뺐다. 주식매각대금은 비공개이자 투자액을 밑도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후지TV 보도에 따르면, 불과 1년 8개월 만에 투자한 사업에서 철수한 이유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펀드 출범 초기에는 일단 투자 실적을 만드는게 중요했다"며 "해당 투자건은 당시 '쿨재팬 기구' 책임자와 미쓰코시이세탄 홀딩스 사장간의 친분 관계로 인해 투자하게 됐으나, 이후 미쓰코시이세탄 사장이 바뀌면서 투자도 마무리된 것일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영화 산업분야의 투자문제도 도마위에 올랐다. 일본의 콘텐츠를 헐리우드 영화화 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영화 기획사 ‘All Nippon Entertainment Works(ANEW)’는 ‘쿨 재팬 기구’와는 별도로 경제산업성 산하의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에서 22억 2000만엔(100%)을 출자한 회사다. ANEW는 설립 이후 7편의 영화 기획을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단 한 편도 제작되지 않았다. 이후 기구는 2017년 6월 주식 전량을 교토 한 벤처 캐피털에 투자액의 겨우 1.5%에 불과한 3,400만 엔에 매각했다. 

지난 4월 일본 회계검사원(우리나라의 감사원에 해당)의 민관펀드 투자성 조사 결과에 따르면, ‘쿨 재팬 기구’는 2017년 3월말 시점에 17건, 약 310억엔의 투융자건에 대해 약 44억 엔의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쿨재팬 기구’는 2034년까지 업무가 종료되는 것으로 법으로 정해져 있어, ‘장기적으로 1.0배 이상의 수익성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가정책의 일환이라고는 하나, 투자 회수의 목표 수준 자체도 낮을 뿐더러, 투자금액에 합당한 리턴을 얻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쿨재팬 전략’은 일본에서 지난 20여년 동안 당파를 초월해 추진된 국가정책이다. 여야는 물론 모든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추진돼 왔다. 아베 총리가 지난 8월 열린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폐막식에서 자국의 게임 캐릭터 ‘마리오’를 상징하는 붉은 모자를 쓰고 나와 마리오 코스프레를 펼친 것도 '쿨재팬 전략'과 맥을 같이한다.

한편, ‘쿨재팬’이란 용어는 원래 2002년 미국 학자 더글라스 맥그레이가 ‘국민총매력지수(GNC·Gross National Cool)’라는 개념을 도입해 일본의 문화와 콘텐츠 힘을 높이 평가하면서 사용되기 시작됐다. GNC는 한 나라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계량화한 지수로 국민의 생활양식, 미적 감각 등 문화적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후 워싱턴포스트 등 해외 언론이 잇따라 이 용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일본에서도 일반적으로 일본의 문화콘텐츠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한류'와 같은 개념이다.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문화적 매력을 상품화시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소프트파워'를 강화하기 위한 '쿨재팬 전략'을 본격 추진한 것은 2005년부터다. 이후 자민당에서 민주당, 다시 자민당으로 정권이 교체됐어도 '쿨재팬 전략'은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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