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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그시절 일본에서 곱창 팔던 용길이네 이야기 '야키니쿠 드래곤'의 정의신 감독을 만나다
[인터뷰] 그시절 일본에서 곱창 팔던 용길이네 이야기 '야키니쿠 드래곤'의 정의신 감독을 만나다
  • 도쿄=김민정 기자
  • 승인 2018.07.21 10: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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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야키니쿠 드래곤' 포스터. 한일의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일본에선 6월 24일 개봉 후 흥행성적 10위권 이내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에서 6월 24일에 개봉한 영화 ‘야키니쿠 드래곤’이 흥행성적 10위권 내에 머물며 선전 중이다. 한국에선 11월쯤 개봉 예정이다. '야키니쿠 드래곤'은 10년 전인 2008년에 초연된 연극으로 정의신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다. ‘야키니쿠 드래곤’은 일본에서 상연 당시 연일 매진을 이뤘고, 제16회 요미우리연극대상, 제8회 아사히 무대 예술상 등 그해 연극계의 상을 모두 휩쓸었다. 

제2차대전 때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의 전쟁에 동원되어 팔을 하나 잃은 용길이는, 4.3사건으로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도망쳐온 영순과 결혼해, 세 딸과 아들 하나를 키운다. 국유지에 사는 이들 가족은 언제 쫓겨날지 모를 판잣집에서 소의 내장을 팔며 근근히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길은 막내 아들을 일본의 사립 중학교에 보낸다. 공부에 대한 열망, 일본에서 부디 성공해서 잘 살아가라는 그만의 의지인 것. '야키니쿠 드래곤'은 용길이네 가족의 인생을 담은 한 편이다. 

1957년 효고현(兵庫県) 히메지(姫路)에서 태어난 정의신은 일본영화전문학교(현 일본영화대학)에서 영화를 배운 후, 영화 회사인 ‘쇼치쿠(松竹)’를 거쳐, 극단 ‘신주쿠 료잔파쿠(新宿梁山泊)’의 극본가로 알려진 후, 1994년에 일본 최고의 희곡가에게 주어지는 ‘기시다 희곡상(岸田戯曲賞)’을 수상하면서 연극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1993년에는 영화 ‘달은 어디로 떴나(月はどっちに出ている)’로 ‘키네마 준보(キネマ旬報)각본상’을 수상했다. 상복이 많은 그는, 그 후로도 꾸준히 연극과 영화계에서 활동 하면서 단단한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그야말로 성공가도를 달려 연극계의 1인 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로 우뚝 섰다. 영화 ‘야키니쿠 드래곤’으로 또 한번 일본 열도를 웃고 울린 정의신을 만나 보았다.

Q ‘야키니쿠 드래곤’이 벌써 10년전에 무대에 오른 작품입니다. 일본에서는 총 3번, 한국에선 2번이나 재상영됐는데 감회가 어떻습니까?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야키니쿠 드래곤'이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 영화 제안을 받았는데, 도중에 영화화가 중단되었어요. 재상연을 했을 때 또 한 번 영화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영화를 찍었고, 올해 개봉을 했지요. 영화화 되기까지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Q 연출가로 오래 활동하셨는데, 연출가와 영화 감독의 차이가 있다면?

딱히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영화는 2차원이다 보니까 화면 속에 모든 것을 담아야 해서 그 부분은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영화도 연극도 기본적으론 ‘인간관계’죠. 인간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 면은 똑같습니다.

Q 한국의 배우와 일본 배우들이 함께 출연하고 있습니다. 캐스팅은 직접 하셨나요?

한국쪽 캐스팅은 제가 했습니다. 한국 연극인들과 상의했지요. 아버지(용길) 역으로는 김상호 씨가 머리도 벗겨지고 얼굴에 애교가 있다고 다들 추천을 해주셨어요. 김상호 씨, 이정은 씨에게 부탁을 했더니 흔쾌히 승낙해 주었습니다. 일본 배우들은 세 자매 역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 큰 언니 역부터 선정했습니다.

Q  전주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공개되었습니다. 기분이 어떠셨나요?

무척 감동했습니다. 3,000명쯤 관객이 있었는데, 저는 맨 앞에 앉아서 영화를 봐야 했어요. 사실 영화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뒤에 계신 관객분들 반응만 신경쓰였습니다. 웃고 울고 하는 그런 것들을 저는 등으로만 느꼈지요. 마지막 부분에 아버지가 우는 모습에서 다들 서서 박수를 쳐주셨어요. 저도 일어나서 뒤돌아 왔더니 모든 관객이 일어서서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기뻤습니다.

연극계에서도 영화계에서도 극작가로 승승장구 중인 정의신 감독 (사진=김민정기자)

Q 영화 속에서 아버지가 “간장집 사토 상한테 이 집을 샀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정의신 작가 아버지의 실화에서 힌트를 얻으셨다죠?

우리 아버지의 실화입니다. 저는 효고현 히메지 성곽 바로 아랫마을에서 자랐어요. 그곳은 땅이 없는 사람들이 대충 판잣집을 짓고 사는 곳이었죠, 저희 아버지도 거기에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해방 후에 그 땅을 간장집 사토한테서 샀다고 하셨어요. 그치만 국유지의 땅을 살 수는 없지요. 땅문서가 있냐고 물으니 없다고 하셨어요. 2차대전 후 복잡한 틈을 타서 말로만 약속을 하고 거기 살기 시작한 것이지요. 지금 그곳은 히메지성 공원으로 세계유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농담으로 저희 집은 세계유산이라고 자랑을 하기도 합니다.

Q 영화 캐릭터 중 정의신 작가와 닮은 캐릭터는? 

딱히 없어요. 저는 5형제 중 4째로 자랐습니다. 여자 형제는 없었어요. 모두 상상 속의 인물입니다.

Q 상상 속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생동감이 있고, 현실감도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일이 재미있어요. 그래서 오랜 생각 끝에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Q ‘야키니쿠 드래곤’, ‘들에 피는 꽃처럼’ 그리고 ‘적도 아래의 맥베스’를 정의신 재일동포 3부작이라 부릅니다. 재일동포 이외의 극도 쓰는데 재일동포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기록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사람들이 웃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그래서 재일동포 이야기가 아닌 연극도 많이 만들고 영화도 적극적으로 만들지요. 하지만, 더불어 저의 뿌리도 소중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일동포도 벌써 5세, 6세 시대에 접어 들었어요. 100년 후면 재일동포란 개념도 없어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때 이곳에 재일동포라 불리던 이들이 울고, 웃도, 고민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며 살았던 그 역사를 기록하고 싶어요.

Q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다는 것이지요?

역사의 중심적인 인물들은 아니지만, 분명히 역사의 일부인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연극으로 무대에 올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고 웃고 눈물 흘리는 일들이 지속되면 연극적인 가치, 기록의 가치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Q ‘야키니쿠 드래곤’을 보는 관객들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연극을 보러가도 모든 관객이 울고 웃으며 정의신의 세계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런 반면, 헤이트 스피치(한국인 혐오)를 일삼는 이들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안타깝게도 헤이트 스피치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처럼요. 자신의 울분, 이 사회의 불이익 등을 약자를 향해서 터뜨리는 일은 큰 문제입니다. 헤이트 스피치에 갔더니 평범한 샐러리맨도 있었고, 임신을 한 여성도 있었어요. 사람을 차별하는 것으로 사회에 대한 분풀이를 하는 사람들은 역사를 모르고, 재일동포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야키니쿠 드래곤’을 보고 역사 인식을 다시 가질 수 있다면 헤이트 스피치가 그나마 줄지 않을까 싶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된장국을 끓이고 가볍게 식사를 한 후, 글을 쓰기 시작한다는 정의신. 그의 연극은 매번 티켓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인기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책상 앞에 앉아 글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관객을 웃길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울릴 수 있을지, 무엇보다도 어떻게 하면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할 이들의 평범하지만 필사적인 삶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지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끄적이고 또 끄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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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언니 2019-08-05 01:39:24
무대극은 재상'영'이 아니라 재상'연'이라고 하는 겁니다. 국어사전 좀 읽어요, 제발. 먹물쟁이 나으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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