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부·지자체·기업들까지 '나이트타임 이코노미' 활성화 나서
'밤놀이' 부족에 외국인 관광객 오락서비스 지출비중 1% 불과 
환락가 이미지 벗고 건전한 '밤놀이'로 여행객 소비확대 노려

"밤이 되면 갈 곳이 없다"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겨냥한 '나이트타임 이코노미(밤놀이 경제)' 활성화에 일본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기업들까지 팔을 걷어 부쳤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2,869만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지만, 오히려 1인당 소비액은 15만 4,000엔으로 전년 대비 1.3% 감소했다. 유엔 세계 관광기구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쓰는 돈은 호주의 3분의 1에 불과하고, 싱가폴, 태국에서 쓰는 돈보다 적은 수준이다.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1인당 소비액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은 이유는 밤에 즐길 수 있는 놀거리, 볼거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아시아 최대의 환락가로 불리는 도쿄 신주쿠의 가부키쵸. 휘황찬란한 술집이나 카페의 네온간판으로 뒤덮여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시아 최대의 환락가로 불리는 도쿄 신주쿠의 가부키쵸. 휘황찬란한 술집이나 카페의 네온간판으로 뒤덮여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뮤지컬과 야간에도 문을 여는 미술관, 막차시간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만큼 새벽까지 운행되는 대중교통 등 외국인 관광객들이 도시의 밤을 만끽할 수 있는 뉴욕이나 런던과 달리 도쿄 등 일본 도시들의 '밤놀이'는 여전히 술집이나 나이트클럽 등 환락가 이미지가 강해 낯설고 두렵다는 인식이 퍼져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방일 외국인 관광객이 체재 중 '오락서비스'에 지출한 금액의 비중은 1% 정도에 그친다.

이른바 '나이트타임 이코노미 활성화'는 주로 술집이나 나이트클럽, 가라오케 등으로 국한된 밤(오후 8시부터 오전 3시까지) 시간대의 외국인 관광객 활동을 예술과 문화 등 다양한 영역으로 끌어들여 1%선에 불과한 오락서비스 지출 비중을 미국·유럽 수준인 8~10%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시부야 나이트투어에 참여한 외국인들이 모습 (사진=시부야구 관광협회 제공)

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시부야(渋谷)관광협회는 방일관광객을 대상으로 ‘시부야 나이트투어’를 시작했다. 투어는 밤 7시 30분쯤 모여 시작된다. 일본인 가이드를 따라 먼저 노점상에서 타코야키를 사든 외국인 관광객들은 역 주변의 이자카야 서너군데를 들러 한 잔씩 2차, 3차 하듯이 사가지고 온 타코야키를 안주삼아 사케를 마신다. 적당한 취기와 함께 게임센터에서 오락을 하거나 관광객들에게 인기인 할인점 돈키호테 등 일본의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을 거닐다가 허기가 지면 '서서초밥' 집에서 배를 채운다. 밤 10시 경 시부야의 명물인 '스크램블 교차로'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투어는 마무리된다. 참가비는 3,000엔. 마치 평범한 일본인의 퇴근 후 일상을 체험하는 듯한 이 투어는 현재 예약이 빗발치고 있다.

시부야구는 2016년부터 힙합 가수 지브라(Zeebra)를 '나이트 앰버서더'로 선정하고 정기적으로 야간 공연을 펼치고 있다. 토시마구(豊島区)는 나이트 이코노미 활성화를 위해 ‘토시마구 애프터 더 시어터 간담회’를 열고, 2020년까지 이케부쿠로(池袋)일대를 공연장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와 더불어 공연의 여운을 밤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나이트 관광서비스도 확충할 계획이다. 아시아 최대의 환락가라 불리는 신주쿠(新宿)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신주쿠구는 지난해 문을 연 가상현실 체험 ‘VR신주쿠존’ 등을 비롯해 신주쿠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보다 안심하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밤놀이' 문화 개발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기업들도 '밤놀이' 시장확대를 새로운 비즈니스 찬스로 보고 다양한 시도에 나서고 있다. 도쿄의 시나가와 프린스호텔은 바의 영업시간을 2시간 연장해 오전 4시까지 문을 열기로 했다. 덕분에 방일관광객을 포함 고객수가 전년에 비해 30%가량 늘어났다. 올해 4월부터는 볼링장의 영업시간을 연장하고, 유명 디제이를 초빙해 밤마다 이벤트를 개최하는 등 '밤놀이' 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도쿄도경마는 오는 10월 오이마치(大井町)경마장에 대형 일루미네이션을 설치하는 한편, 나이트경마도 개최해 늦은 밤에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도쿄도경마가 운영 중인 유원지 '도쿄서머랜드'도 주말 야간수영장의 개방시간을 작년보다 연장한다. 

시부야구의 여름 축제는 8월 18일, 19일 이틀간 요요기공원에서 열린다. 낮과 밤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행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갈 계획이다.(사진=시부야구 관광협회 제공)<br>
시부야구의 여름 축제는 8월 18일, 19일 이틀간 요요기공원에서 열린다. 낮과 밤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행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갈 계획이다.(사진=시부야구 관광협회 제공)

우리에게 친숙한 배우인 오타니 료헤이(大谷亮平)등의 소속사인 ‘아뮤즈’는 외국인 관광객을 타겟으로 한 쇼 ‘WA!’를 공연해 큰 성공을 거뒀다. 지난 5월까지 1년간 공연을 펼친 쇼 ‘WA!’는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퍼포먼스 그룹 ‘푸에르자 부르타’가 다이코(太鼓·일본 전통 북)와 음악, 빛, 영상, 춤을 융합해 만든 체험형 공연으로 약 20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일본에는 외국인을 위한 엔터테인먼트가 없다"라는 문제의식에서 이 쇼를 구상했다는 아뮤즈는 마지막 공연개시 시간을 오후 8시로 설정하는 등 외국인 관광객들의 높은 나이트 공연수요에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지자체도 '밤놀이' 문화 개발에 적극적이다. 치바시는 오는 8월 3일부터 4일까지의 주말 동안 실험적 성격의 '엔타메 치바2018'을 개최한다. 50개의 음식점과 50개의 퍼포먼스 그룹이 모여 펼치는 이 이벤트에는 e스포츠 대회가 열릴 뿐만 아니라 헤드셋을 착용한 채 춤을 추는 사이런트 디스코장이 미술관안에 들어선다. 치바시는 흥행여부에 따라 2020년에는 더욱 큰 규모의 이벤트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일본은 미국과 유럽 등에 비해 밤에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가 많지 않아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미국 뉴욕의 경우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공연은 밤 8시 이후에도 성황을 이룬다. 지하철도 24시간 운행해 막차시간을 신경 쓰지 않고 나이트타임을 즐길 수 있다. 영국 런던에서도 뮤지컬과 미술관을 밤늦게까지 즐길 수 있다. 주말에는 지하철을 24시간 운행한다. 영국의 '나이트타임 이코노미' 파급효과는 4조 엔, 72만 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외국인 관광객을 현재의 1.4배인  4천만 명으로 늘려잡았다. 이들의 일본 내 지출액도 8조 엔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비장의 카드가 바로 '나이트타임 이코노미 활성화'인 셈이다. 낮 관광만으로는 어림없고 밤에 외국인 관광객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 일본정부는 예술·문화시설 심야영업을 규제하는 법률·조례 개정을 모색 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나이트타임 이코노미 활성화'가 결실을 맺어 외국인 관광객과 일본인이 심야 밤거리를 자유롭게 거니는게 당연한 광경으로 여겨질 즈음 도쿄의 번화가는 더이상 환락가만의 이미지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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