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올림픽 앞두고 더욱 뜨거워진 日 왼손잡이 용품 시장

일본의 대학 내 문구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왼손잡이용 가위. 일반 문구점 등에서도 왼손잡이용 물품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최지희 기자)
일본의 대학 내 문구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왼손잡이용 가위. 일반 문구점 등에서도 왼손잡이용 물품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최지희 기자)

일본에서 왼손잡이로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왼손잡이의 수는 통상 나라와 인종을 불문하고 세계 인구의 10% 정도로 알려져 있다. 왼손잡이가 겪는 일상에서의 불편함은 실로 다양하다. 노트에 필기를 할 때, 가위나 커터칼을 사용할 때, 컴퓨터 마우스를 조작할 때, 냉장고 문을 여닫을 때. 식사 자리에서 오른손잡이와 부딪히지 않도록 왼편 가장자리를 찾아 앉아야 할 때. 세계의 왼손잡이가 겪는 불편함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본의 왼손잡이 사정은 한국보다 좀 더 나은 듯하다. 한국에서는 1999년 출범한 ‘한국왼손잡이협회’가 2000년대 중반 문을 닫았다. 소수 존재하던 왼손잡이 용품 사이트도 수지 악화로 자취를 감춘 이후 이렇다 할 전문매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일본에서는 영국왼손잡이협회가 1992년 제정한 ‘세계 왼손잡이의 날(8월 13일)’을 기념하는 것 이외에도 자체적인 왼손잡이의 날을 만들 정도다.

일본에서는 2월 10일을 왼손잡이의 날로 기념한다. 2월 10일에서 숫자만 딴 ‘0210’을 일본어로 발음하면 ‘레(0).후(2).토(10)’로, ‘왼쪽’을 의미하는 ‘레프트(Left)’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이 날을 ‘왼손잡이의 날’ 혹은 ‘왼손잡이 상품의 날’로 정했다. 세계 왼손잡이의 날과 별도로 기념일을 만든 것은 8월 13일이 일본 최대 명절인 오봉(お盆·한국의 추석에 해당)과 겹쳐 기념활동에 지장이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이같은 일본에서 최근 왼손잡이 용품 시장이 다시금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2020년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이 개최되면 세계의 왼손잡이들이 몰려들 것으로 보고 이를 기회삼아 각종 문구 및 조리기구 업체들이 상품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것. 이들 상품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는 유명 문구 메이커 지브라(ZEBRA)의 '사라사드라이(SARASA dry)’ 볼펜이다. 일본의 왼손잡이들에게 '신의 볼펜'이라 불리며 2016년 2월 발매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약 600만 여개가 팔렸다. 

600만개가 팔린 사라사 볼펜으로 필기하는 모습 (출처=지브라 홈페이지)
600만개가 팔린 사라사 볼펜으로 필기하는 모습 (출처=지브라 홈페이지)

브랜드명 '사라사'에서 느껴지는 일본어 어감 그대로 수성 잉크임에도 순식간에 마르는 것이 특징이다. 지브라에 따르면 초속건성(超速乾性) 성분을 배합하여 왼손잡이가 글씨를 쓸 때 손에 잉크가 묻어나거나 종이에 번지는 단점을 극복했다. 고객인 왼손잡이가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과 불만을 제품개발에 응용한 좋은 사례로도 꼽힌다.  

2016년 지브라가 ‘왼손잡이로서 불편한 점’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사용 시 칼날의 방향이 반대가 되는 가위나 커터칼, 매일 사용하는 문구류에 불편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필기구 가운데서 왼손잡이들이 가장 불편하다고 느낀 것이 바로 ‘볼펜’으로, 수성 볼펜들은 잉크의 건조 속도가 느린 탓에 손에 묻어나거나 글자가 번진다는 점이 불만으로 지적됐었다.

지브라가 2016년 3월 전국의 왼손잡이 약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앙케이트 결과. (출처=지브라 홈페이지)
지브라가 2016년 3월 전국의 왼손잡이 약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앙케이트 결과. (출처=지브라 홈페이지)

지브라의 홍보담당자는 아사히신문에 “왼손잡이 시장은 꽤 크다”며 시장 확대 가능성을 전망했다. 지브라는 문구 메이커인 ‘프라스(PLUS)’ 등 9사와 함께 작년부터 왼손잡이 용품 제조에 더욱 주력하기 위한 ‘레프트21프로젝트’에 돌입했다. 프로젝트에 참가중인 조리기구 메이커 ‘노노지(nonoji)’는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용 스푼과 포크를 판매하고 있다. 좌우대칭형이 아닌 사용자 맞춤형으로 음식 재료 등을 다루기 쉽도록 만든 제품들이다. 업체는 수년 전 전국 초등학교 100곳에 스푼 등을 보냈더니 모두 “10% 정도는 왼손잡이용으로 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레프트21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한 것은 가나가와(神奈川)현 사가미하라(相模原)시의 작은 문구점 ‘기쿠야(菊屋) 상사’다. 이곳은 ‘왼손잡이를 행복하게 하는 가게’로 잘 알려진 곳이다. 기쿠야 상사의 우라카미 히로오(浦上裕生) 사장 역시 왼손잡이다. 25년 전, 자신과 같은 왼손잡이 동생이 오른손잡이용 커터를 사용하다 다친 것을 계기로 당시 가게를 경영하던 부모가 왼손잡이용 코너를 설치하게 되었다. 우라카미 씨는 1998년 가게를 물려받으면서 취급 품목을 더욱 늘였다. 

현재 이곳은 “왼손잡이용 물건이라면 뭐든 있다”고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될 정도로 다양한 품목을 갖추고 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도 있을 정도다. 우라카미 사장은 “ ‘왼손잡이들이 이런 점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서로 이해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적의 하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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