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도둑 옹호 영화냐? 사회 비판작이냐?
일부 네티즌 "일본을 좀도둑 사회로 묘사" 관람거부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감독작 ‘만비키 가족(万引き家族)’ 포스터. 칸 황금 종려상 수상작으로 일본에서 6월 8일 개봉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감독작 ‘만비키 가족(万引き家族)’ 포스터. 칸 황금 종려상 수상작으로 일본에서 6월 8일 개봉된다.

지난 19일(현지시각), 제 71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감독의 ‘만비키 가족(万引き家族)’이 일본 개봉(6월 8일)을 코 앞에 두고 논란에 휩싸였다. 일본영화계에 21년만에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이 영화가 일본의 품위를 떨어뜨렸다고 주장하며, 관람거부를 하겠다는 이들까지 나오고 있다.

‘만비키 가족’은 ‘만비키(万引き)’ 즉 도둑질을 해서 먹고 사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가족’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혈연 관계를 가진 이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 가족은, 사회적 안전망 붕괴로 인해 어쩌다 함께 살게 되었을 뿐이다. 이 가족의 주된 수입은  할머니 하쓰에(키키 기린 분)의 연금이다.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는 오사무(릴리 프랭키 분)와 아들 쇼타(조 카이리 분)는 마트에서 벌이는 도둑질로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 아버지 오사무가 간간히 일을 하러 나가지만 먹고 살기엔 턱없는 수준이다. 엄마인 노부요(안도 사쿠라 분), 노부요의 동생인 아키(마쓰오카 마유) 역시 아르바이트로 쥐꼬리만한 돈을 벌어올 뿐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원더풀 라이프’,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등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감독이며, ‘만비키 가족’이 14번째 작품이다. 2001년 ‘디스턴스’로 처음 칸 경쟁부문에 입성했고, 2004년에는 아이를 방치한 채 도망친 부모와 남겨진 아이들의 충격적인 실화에서 모티브를 딴 ‘아무도 모른다’로 야기라 유야가 남우주연상을 탔고, 2013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이렇듯 고레에다 감독은 꾸준히 칸의 사랑을 받아왔고, 드디어 이번에 ‘만비키 가족’으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며, 세계적인 감독의 대열에 올랐다. 이번 수상은 우연히 아닌, 갈고 닦은 준비된 감독에게 전달된 최고의 찬사다.

고레에다의 영화가 이렇게 세계 최고의 영예를 안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인터넷에서는 부정적인 목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누리꾼들이 이 영화가 일본의 수치스러운 부분을 전세계에 알렸다고 손가락질 하고 있다. 누리꾼 newshin0*2*은 "<만비키 가족>은 일본의 수치를 세상에 알린 최악의 영화다. 이 영화가 흥행해서 도둑질이 성횡할 지도 모른다."고 적어, 호응을 받았다. Nek**ix*4는 “도둑질을 정당화하다니 무서운 영화다. 우리 동네 책방은 도둑 때문에 문을 닫았다.”라고 써서 이 영화를 우회적으로 비난했다. 더불어 “이 가족은 일본인이냐, 범죄를 생계로 삼은 일가가 일본인이라니 위화감이 든다.” (app**e), “아이한테 도둑질을 시키는 짓은 중국인이나 하는 짓이다.” (B**ba_mm)처럼 외국인 범죄라고 얼토당토한 설을 늘어놓는 이들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이란 나라에 도둑질 같은 일은 없다거나, 있더라도 소수이거나 범죄자는 모두 외국인이라는 주장도 서슴치 않고, 일본인이 도둑질을 한다는 내용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고레에다 감독을 용서할 수 없다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만비키 가족’은 일본 보수 누리꾼들이 아무리 부정한다 한들, 두 말 할 것도 없이 일본의 이야기다. 고레에다 감독이 밝혔듯, 부모의 연금에 의지하며 살다가 부모가 사망한 후에도 부모의 사망을 알리지 알고 연금을 타 쓰던 자식들의 실제 사건에서 힌트를 얻어 제작했다. 고레에다는 이 ‘연금사기’ 일화에 일본의 빈곤의 현장과 가족 내 폭력을 담아냈다.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여성을, 부모로부터 폭행을 당한 자녀를 등장시켜, 관객들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또한 사회적 안전망이 거의 무너진 현재 일본에서 빈곤한 이들을 지켜줄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도 동시에 질문한다. 빈곤과 폭행, 사기 행각까지 담긴 이 영화는 분명 일본인들이 보기에 달갑지는 않지만, 마냥 부정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일본의 빈곤과 차별, 사회 격차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에 기인한 엔저정책으로 일본 기업들의 이익은 매년 증가세에 있으나, 개개인의 빈곤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일본의 경제 규모는 GDP 순으로 보면 세계 3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빈곤율은 세계 35개국 중 제 7위로 매우 높은 편이다. 상대적 빈곤율이란 전국민 소득 평균의 중앙치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에 해당한다. 일본의 평균소득 중앙치의 절반은 122.5만엔.  1년 소득이 122.5만엔 이하인 이들이 전체의 약 16%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상대적 빈곤율은 1985년에 12%대에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15%를 넘어섰다. 상대적 빈곤율의 증가로 사회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기보다 빈곤을 자기 책임으로 돌리고, 배척하는 풍조가 점차 확산되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빈곤층 보호를 위한 생활보호제도를 각 지자체가 도입하고 있지만, 생활보호를 받는 이들에 대한 지나친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에는 오다와라시(小田原市)의 생활보호담당 직원이 “부정수급은 쓰레기다”라는 점퍼를 입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해 정부 조사로 현재 일본의 비정규직 비율은 37.3%이다. 즉 빈곤이 남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못 사는 이들에 대한 혐오와 자기 책임론은 물밀듯이 터져나오고 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일본의 이러한 현실을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보수적 사상을 가진 일본인들이 이 영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한다고 한들, 일본의 현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격차사회연구가인 와세다 대학의 하시모토 겐지 교수(橋本健二)는 “오늘날의 일본사회가 낮은 계급에게 과도한 책임을 짊어지게 하는 계급사회임을 인정하는 것이 빈곤이 없는 보다 평등한 사회를 실현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레에다 감독 자신은 이런 논란에 대해 “외국인은 이 영화를 봐도 일본인이 절도범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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