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 논란으로 시끄러운 요즘 ‘오너 리스크’가 거의 없는 LG 그룹 구본무 회장의 ‘작은 장례식’은 모처럼 큰 감동을 준다. 재벌들의 가업승계가 비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이뤄지고 기업 일가의 온갖 비정상적인 행태가 하등 이상할 것 없이 이뤄지는 시대,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재벌 2,3세들의 돌출행동들이 여전한 때에 조문객들을 받지 않고 가족장으로 조촐히 치러진 장례는 낯설지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고인과 일면식도 없지만 고인의 평소 철학에 깊이 감동해서 국화꽃 한 송이라도 올려놓고 조문이라도 하고 싶어’ 장례식장을 찾은 수많은 일반 조문객들이 고인의 간곡한 뜻에 따라 장례식장을 되돌아 나오면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과시적 장례문화가 일반적이라 생각하는 우리나라 정서상 조화나 근조기도 물린 장례식장이 생소할 수도 있다. 생전의 고인의 영향력과 자녀들의 현실적 힘에 비례해 장례식장 복도에 늘어선 조화나 근조기는 익숙한 장례 풍경이기 때문이다.

구본무 회장의 장례는 유해를 화장한 다음 나무뿌리에 뿌리는 수목장으로 치러져 평소 아끼던 숲의 나무로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수목장은 친환경적인 장례인 셈이다.

요즘 사람들은 절대 손해 보기를 꺼려한다. 양보의 미덕이란 찾아보기 힘든지 오래되었다. 어릴 적 부모들로부터 “네가 바보야?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해. 절대 양보하지 말고 맞지 말고 네가 먼저 때려.” 라고 주저하지 않고 가르친다. 착하면 바보가 된다고 굳게 믿는 세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故 구회장은 몸소 양보와 배려의 미덕을 실천한 사람이다. 손해 보는 게 결코 손해 보는 삶이 아니란 걸 고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많은 시민들의 애도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故 구회장의 미담중 하나인 ‘20분 룰’에서도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실천했던 사람이었구나! 를 알게 해준다. ‘20분 룰’이란 사람을 만나 식사하기를 즐겼던 구회장이 상대가 누구든 어떤 자리든 항상 20분 먼저 도착해서 상대를 기다렸다. 스스로 20분을 손해 보면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실천한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더불어 사는 삶을 몸소 실천했던 故 구본무 회장, 그의 경영철학처럼 소박한 수목장과 조촐한 장례식이 호화롭고 겉치레에 치중한 우리나라 장례문화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1998년 작고한 고 최종현 SK 그룹 회장의 화장(火葬) 역시 당시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면서 이후 화장률이 크게 확대됐다.

“대기업 총수가 죽으면 기업이 휘청거리는 오너 중심 문화에서 벗어나 평소 오너의 철학이 기업 내에서 이어져 기업문화로 뿌리내리고, 체계적인 조직의 틀 속에서 사원 하나하나가 기업의 오너란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평사원 P씨(30세)의 말이 큰 울림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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