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납치는 이미 해결된 문제”, 풍계리 핵실험장 참관에도 日제외

도쿄 메트로 마루노우치(丸の内)선 신주쿠(新宿) 역 지하도. 대부분의 행인들이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 가운데 우두커니 멈춰서 통로 벽을 바라보는 노년층이 눈에 띄었다. 시선을 한동안 붙든 것은 중학교 1학년 시절 북한으로 납치된 요코타 메구미(横田めぐみ)의 사진 열다섯 점. 메구미의 부모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이들은 전시된 사진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핸드폰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납치문제를 거론하겠다고 공언한 한편, 요코타 메구미의 아버지 요코타 시게루(横田滋) 씨는 지난달부터 건강 악화로 병원에 입원중이다. 사진전은 요코타 부부를 지원하는 ‘아사가오(나팔꽃) 회’가 납치문제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기획했다.

도쿄 메트로 마루노우치(丸の内)선 신주쿠(新宿) 역의 지하도인 ‘자유통로’에서 7일부터 13일까지 요코타 메구미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사진=최지희 기자)
요코타 메구미의 부모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사람들이 주로 발걸음을 멈춰 사진을 응시하곤 했다. (사진=최지희 기자)

납치피해자 지원 단체인 ‘구하는회’에 따르면 9일 열린 자민당납치문제대책본부 회의에서 이즈카 시게오(飯塚繁雄) 가족회 대표는 “김정은 위원장이 어떤 식으로, 언제 결재(決裁)할지가 초점이다. 우리들의 기대는 높다. 전 국민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며 지금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니시오카 츠토무(西岡力) 구하는회 회장은 “2001년부터 미국을 오갔지만 이번에는 미국 측의 감각이 전혀 다르다. 과거엔 (우리들이) ‘도와 달라’고 했지만 지금은 함께 해결하자는 자세”라며 내달 12일 열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11일 후지TV에 출연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북일정상회담에 대해 “우리들은 북경 루트를 통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면서 수면아래에서 접촉이 이뤄지고 있음을 인정했다. 아베 총리는 또한 “북일회담은 납치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은 북미회담을 성공시켜, 북일회담에서 (납치가) 해결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언급이 있은 지 하루만인 12일, 북한은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의 논평을 통해 ‘납치는 이미 해결된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논평은 “오늘의 시점에서 일본이 이미 해결된 납치문제를 또다시 꺼내들고 여론화하려는 것은 국제사회가 일치하여 환영하고 있는 조선반도평화기류를 한사코 막아보려는 치졸하고 어리석은 추태가 아닐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한 달여 앞두고 일본 내 납치문제 해결에 대한 열망이 더욱 고조되는 가운데, 북한이 일본의 이러한 바람에 공개적인 퇴짜를 놓은 셈이다.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계획 소식을 전한 산케이신문 13일자 조간 보도

희망적인 보도도 있다. 아사히신문은 12일 남북관계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북한이 공식 입장으로서 반복해온 ‘이미 해결된 문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4년 5월 두 번째로 열린 북일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에게 “납치문제는 이미 해결된 문제”라고 말한바 있다. 아사히는 북한이 기존의 입장을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북일정상회담에서 납치 문제를 놓고 얘기할 때 자신의 발언에 얽매이지 않게끔 배려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또한 12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계획에서 일본을 배제시켰다. 북한은 1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공보’를 통해 “핵시험장이 협소한 점을 고려하여 국제기자단을 중국, 러시아, 미국, 영국, 한국에서 오는 기자들로 한정시킨다”고 하면서 노골적으로 일본을 제외시켰다. 이에 산케이신문은 “외국 언론의 취재를 허용해 외화를 획득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비난했지만, 지지통신은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일본에 대화를 촉구하기 위한 움직임의 일환일 수 있다”고 전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 언론의 한반도문제 담당기자는 “미국과 잘 되면 냉전체제 종식의 남은 과제는 ‘일본’이다. 일본과 협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되도록 적은 양보로 많은 것을 얻으려고 양측이 기싸움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편 일본은 북한의 이러한 외면에 맞서 미중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이다. 복수의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은 북미정상회담 직전인 6월 8일 G7 정상회의에서의 미일정상회담 이외에, 북미정상회담 직후인 6월 중순에 트럼프 대통령이 방일해 미일정상회담을 여는 방향으로 조정에 들어갔다. 하지만 “(미국에게 있어 일본은) 과거엔 동북아의 지배인이었지만 이젠 여러 지점장들 중 하나”(국제관계전문가)인 상황에서 일본의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중국과는 지난 한중일 정상회담 당시 방일한 리커창 총리와 아베총리가 함께 홋카이도(北海道)를 방문하는 등 급격히 친밀해진 모습을 연출하며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전에 관여하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역사문제를 둘러싼 대립과 대북 인식 차로 긴밀한 중일 공조 역시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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